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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하시는 일 열심히 따라하는데요, 뭐. 스님께서 큰 그림 그리시고 저는 가지를 맡고 있을 뿐입니다.”
15년 전, 처음부터 스님과 함께 해 온 세월을 이렇게 정리하는 방씨. 그러나 그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스님을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 사회복지대학원 수료까지 했을 정도라면, 스님 못지않게 수화를 하면서 연화복지원에서 수화강의까지 맡고 있다면 그의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참 야무지게 봉사하는구나 싶다.
인터뷰 도중 청각장애인 순미(42ㆍ가명)씨가 방씨를 찾아왔다. 이유는 순미씨가 요즘 고등학생 딸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다.
“가끔 스님에게 털어놓기 힘든 사는 이야기 같은 거, 청각장애인분들이 와서 하고 그러세요. 아무래도 제가 편하잖아요.”
방씨가 그렇다고 광림사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4년 전부터 매월 둘째 주 일요일이면 세곡동 군법당 호국연화사에 나가고 있다. 허름한 법당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는 그는 연합포교사인 남편 임희광씨와 남편의 포교사 동기들까지 함께 법당을 지키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떡볶이, 잡채 등 군인들이 좋아할만한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20명이던 군인이 60명으로 늘어났으니 말이다.
“애들이 지나가면서 ‘야, 그 음식 잘하는 보살님 오늘 또 안 오신데?’라고 그러더라고요. 참 기분 좋죠.”
처음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법당을 찾았을 뿐이었던 군인들이 제대할 때 즈음에는 “저 이제 <반야심경> 욀 수 있어요”라고 말할 때, 방씨는 그야말로 뭉클했단다.
여기다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광명보육원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의 고향은 그래도 광림사다. 오랜 세월동안 청각장애인들을 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했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요즘 방씨는 연화원 장애인들과 함께 꽃배달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전국 어디에나 주문이 들어오면 예쁘게 꽃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것이다. 장애인 교육ㆍ지원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후원에만 의존하자니 한계가 있어 만든 사업이다.
“이 일은 사실 청각장애인들의 자립과도 관련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수익을 창출해서 이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지요.”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쉬는 날은 많아야 한 달에 사나흘이다. 그래도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그저 즐겁단다.
“청각장애인들이 긍정적이고 밝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하는 일에 많은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그저 제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언제까지든 계속 봉사를 하려는 마음뿐입니다. 다른 분들도 봉사를 겁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