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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발표된 ‘묵서지편’ 판독 순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1월 23일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목간학회(회장 주보돈) 정기발표회에서 최연식 교수(목포대)는 “묵서지편 중 1038년 <서석탑중수형지기> 순서가 잘못 정리돼 문서의 전후관계가 뒤바뀌어 중수기록이 잘못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복원과정에서 잘못 정리된 문서조각들 순서로 인해 생겼던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최 교수는 “결국 본래 하나인 문서가 두개의 문서로 나뉘어 이해됐고 중수 작업 순서도 잘못 이해됐다”고 지적했다.
1966년 출토돼 2007년 10월 판독해서 발표된 ‘묵서지편’은 1024년 <현종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기>와 <현종15년 불국사무구정광탑중수형지기>, 1038년 <정종4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와 <정종4년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 추기>, <정종4년 불국사석탑중수보시명공중승소명기>의 4개 문서로 알려져 있었다.
최 교수는 “1038년 <불국사서석탑중수형지기>와 <추기>가 별도가 아닌 하나의 문서다. 이들 문서에 기록된 작업은 같은 시기에 한차례 행해진 중수작업”이라고 말했다.
‘묵서지편’에 기록된 ‘무구정광탑은 다보탑, 서석탑은 석가탑’이라는 남동신 교수(덕성여대) 학설이 봉안물 관련 기록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다보탑 중수기록이 왜 석가탑에 들어 있었을까?
최 교수는 “석가탑 중수를 위해 14년전 있었던 다보탑 중수기록을 참고하기 위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무구정광탑중수기가 석가탑으로 옮겨졌다는 해석에 따라, <무구정광다라니경>도 그랬을 것이라는 유추는 어렵지 않다. 이 경우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신라시대 것이라는 기존 학설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발표 후 가진 토론에서 최초 판독 작업에 참여했던 이승재 교수(서울대)는 무구정광탑을 다보탑으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무구정광다라니경>이 석가탑에서 나왔다는 것은 서석탑을 무구정광탑이라고 인식됐다는 명확한 증거다. 이런 증거를 외면하고 무구정광탑이 다보탑이라는 주장은 무리”라고 반론했다.
이번 연구는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의 자료 공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학계에 오픈 소스 개념이 이어져 한국목간학회와 같은 불교학ㆍ서지학ㆍ미술사학 등 학제간 연구활동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묵서지편’ 판독을 둔 최 교수와 이 교수의 상반된 주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5월 개최예정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일단락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