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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 비 사이로 멀리 산 아래의 등불만 비치는 산길을 오르면서 선재동자의 구도심을 떠올렸습니다. 그 머나먼 험난한 길을 잠시도 좌절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직 한마음으로 53 선지식을 찾아 나선 선재동자의 구도심에 비한다면 너무나 나약한 나그네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안개와 비, 어둠에 흔들리는 미약한 구도심으로 보리암의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려는 마음 자체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러나 가락국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 왕후의 오빠인 장유 선사가 일곱 왕자와 함께 수도하고, 원효 스님이 초막을 짓고 수행했다는 보리암을 뒤늦게나마 참배한 것은 그동안의 구도행에 대한 참회와 재발심, 서원을 새롭게 한 계기가 되었음에 분명합니다.
108배와 관음정근으로 보리암 참배를 마치고 금산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선재동자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화엄경>의 한 구절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신심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 모든 선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도(道) 열어보이도다.”
부처님께서는 <화엄경>에서 ‘믿음’에 대해 설하실 때 발바닥으로 광명을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수행의 길을 떠날 때 먼저 발바닥이 땅에 닿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신심(信心)이 불과(佛果)에 이르는 수행의 바탕임을 보이셨건만, 선재는 작은 신심으로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반신반의하며 수행을 게을리하였음을 참회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믿음은 수행의 출발점인 동시에 도달점이라고도 하셨고, 신심이 깊어져서 원만하게 되면 곧 열반을 얻고 부처가 되며, 부처로 나투게 된다(信滿成佛)고 하셨음을 다시 한 번 상기했습니다.
선재동자는 부처님 법을 설하는 문수보살을 믿고 부처님 세계를 믿었기에 문수보살의 가르침대로 당당히 구법의 길을 떠났습니다. 가끔씩 선지식의 방편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계에 부딪혀도 문수보살과 선지식을 굳게 믿었기에 구도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생을 바쳐온 기나긴 구도여정의 막바지에서 또 다시 맨 처음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져도 낙담하거나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믿음의 뿌리(信根)’가 그만큼 깊어서 한결같았기 때문입니다. 선재동자가 다시 문수보살을 찾았을 때, 문수보살이 선재의 신심을 칭찬하면서 지혜와 신통을 얻게 하고 보현행의 도량에 들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재동자는 보현보살의 행원을 믿어서 보현보살과 평등하게 되고, 해탈과 자재함이 부처님과도 평등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선재동자처럼 신심을 내는 이들은 누구나 부처님의 공덕을 얻게 되니 의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썩지 않는 공덕의 종자이니 보리수를 생장케 하며 수승한 지혜 증장케 하고 온갖 부처 시현하도다”하신 <화엄경>의 가르침을 깊이 믿고 받아지녀 불퇴전(不退轉)의 에너지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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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는 불ㆍ법ㆍ승 삼보(三寶)에 대한 대신심은 수행과 삶의 생명력임을 믿습니다. 이제 선재는 삶의 생명력을 구도의 원력으로 승화시켜 ‘부처님의 열 가지 발원(如來十大發願)’대로 정진하며 살겠습니다.
선재는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를 영원히 떠나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한 생각 일으켜 지은 성냄의 지옥도, 한 생각 일으켜 지은 탐욕의 아귀도, 한 생각 일으켜 지은 어리석음의 축생도를 영원히 떠나서 ‘부처 아들(佛子)’다운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재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하루빨리 끊겠습니다. 특히 탐욕 가운데 윤회의 근원이 되는 갈애(渴愛), 그 갈애의 핵심인 음욕을 반드시 극복하겠습니다. 탐ㆍ진ㆍ치 삼독이 모두 자성에서 일어난 헛된 망상임을 깨달아 번뇌가 보리와 둘이 아님을 알되, 말 그대로 번뇌ㆍ망상에 물들지 않고 살겠습니다. “진여자성(眞如自性)은 이 참부처요, 사견삼독(邪見三毒)은 이 마왕이니, 올바른 소견으로 삼독심을 없애면 마왕이 변하여 부처된 것이로다” 하신 육조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선재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더라도 항상 부처님과 그 가르침, 불교공동체 등 삼보(三寶)에 대해 듣기를 원합니다. 부처님의 전생과 일대기를 본받아 완전한 인격체가 될 것이며, 부처님의 가르침 배우기를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겠으며, 불교공동체의 불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포교사업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아울러 불ㆍ법ㆍ승의 자성삼보(自性三寶)에 귀의하겠습니다. “불(佛)이란 깨달음이고, 법(法)이란 마음이 올바름이며, 승(僧)이란 마음이 청정함이다”하신 육조 스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겠습니다.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그릇되고 어둡지 않고 욕심을 줄여 만족함으로써 재물과 색(色)을 떠나겠습니다. 마음이 올바름에 귀의하여 그릇된 소견을 내지 않아서 남과 나를 따지는 일도, 탐욕과 애욕에 빠지는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정함에 귀의하여 온갖 지저분한 것과 애욕에 물들지 않도록 하여, 스스로의 자성에 귀의하겠습니다.
선재는 항상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열심히 닦기를 원합니다. 몸과 말과 생각으로 범하는 나쁜 짓을 방지하고 덕행을 실천하는 계학(戒學), 선정(禪定)을 닦아 마음의 흔들림을 그쳐 고요하고 평안한 경지에 이르는 정학(定學), 번뇌없이 평정된 마음에서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는 혜학(慧學)을 남김없이 닦겠습니다. 아울러 “마음자리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계(自性戒)이고, 마음자리에 산란함이 없는 것이 자성정(自性定)이며, 마음자리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혜(自性慧)라” 하신 육조 스님의 가르침대로 늘 회광반조(廻光返照)하며 자성의 삼학을 닦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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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선재는 보리심(菩提心)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합니다. “보리심은 깨달음의 마음이자 깨달음을 향한, 그리고 이미 깨달은 마음”임을 믿습니다. 일체 중생을 위해 성불하기를 열망하는 대승불교도의 초발심(初發心)인 보리심을 발하는 순간, 그리고 보살행을 완성하기 위해 서원을 세우는 순간, 선재는 이미 보살임을 확신합니다. 보리심이 첫 깨달음의 마음을 뜻할 뿐 아니라, 십지(十地)에서의 깨달은 마음을 의미한다고 믿기에, 보리심은 영원히 저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선재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을 친견하기를 원합니다. 한량없는 무한한 생명인 아미타불을 친견하여 최후의 깨달음을 증득하기 위해 스스로의 본래 자성은 이미 한량없는 무한한 생명임을 믿습니다. “유심불토(唯心佛土)는 마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날 수 있는 곳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따로 있는 바가 없고 오직 자심(自心)에 의지한다. 이 마음을 알면 바야흐로 유심정토에 나지만, 경계에 집착하면 반연을 따라 경계 가운데 떨어지게 된다”고 한 영명연수 선사의 가르침대로 ‘내 성품이 아미타불이요, 내 마음이 정토임(自性彌陀 唯心淨土)’을 믿습니다.
선재가 크게 깨달은 후, 선재의 몸이 먼지처럼 많고 많은 곳에 두루 나투기를 원합니다. 언제 어느 곳이든 고통 받는 중생이 있는 곳이라면 천백억 화신으로 나투어 그들을 구제하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선재는 모든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여 모두 함께 성불하기를 원합니다. 부처님의 ‘자각각타 각행원만(自覺覺他 覺行圓滿)’하신 가르침 그대로, 스스로 깨닫고 타인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며, 깨달음의 실천을 원만히 성취하도록 전심전력하겠습니다.
삼세의 모든 불ㆍ보살님과 조사스님, 대덕, 선지식께서 선재의 발원이 마침내 이뤄지도록 도와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