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 종합 > 기획·특집 > 신년특집
[신년특집] 글자말고 ‘의미’를 읽어라
“소리내어 꾸준히 읽으면 내용 파악하며 ‘음미’ 가능”
수십 년째 신앙생활을 해오고 계시거나 불교교양대학을 몇 년째 다닌 분들에게 불교 이야기를 좀 해보시라고 하면 입도 떼지 못하는 것이 불교계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시중에는 불교입문서가 넘쳐나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떤 책을 어떨 때 읽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 불교출판계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여 시작한 것이 바로 불교서적읽기 모임입니다.

‘읽기’ 익숙하면 ‘토론’을
사람들은 ‘독서모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번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립니다. 사실 수많은 독서모임들은 정해진 책을 일주일 혹은 며칠 내로 각자 다 읽은 뒤에 모여서 책의 내용에 대한 자기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책 한 권의 내용에 대한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말한다는 것은 저자만큼의 관심도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고도로 준비가 잘 된 독자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일단 책을 읽자! 우리 모임은 말 그대로 소리 내어 책을 읽기로 하였습니다. 불자들이 길게는 수십 년 법문을 듣고 경을 읽었어도 제 입으로 불교용어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 것은 듣기에만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책의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 불교용어들을 제 목소리로 소리 내고 불교를 말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우선 자기가 책을 읽을 때는 그야말로 글자를 읽느라 온통 신경이 쏠려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읽을 때는 회원 대부분이 책의 내용에 대한 집중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습니다.

또한 책 읽는 다양한 사람들을 4년 째 대해 오다보니 책 읽는 그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일상생활에서의 태도, 지위 등을 얼추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타인과의 교제가 원만하고 활발한 성격의 사람은 책을 읽을 때 매우 안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극적 성격이거나 완벽주의자의 경우 놀랍게도 책을 읽을 때 너무나 더듬거리고 심지어는 완전히 틀리게 읽기도 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단어를 건너뛰는 것은 예사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런 것들을 지적하지는 않습니다. 본인이 자신의 책 읽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스스로가 진단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한 달 정도 참여하면 그 이후 책 읽는 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매끄러워집니다. 조금 더 꾸준하게 하면 해당부분의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고 음미하면서까지 읽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책을 15권정도 읽고 나면 슬슬 자기의 의견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토론은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책은 책일 뿐
시중에는 부자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아주 많습니다. 억만장자가 되는 법, 주식으로 부자 되는 법, 부동산으로 재테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로 인해 정작 부자가 되는 사람은 그 책의 저자와 출판사뿐입니다. 책 속에 돈이 들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그 책을 사서 읽는다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책 속에는 부자 되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을 뿐이므로 책을 읽은 뒤에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을 한번 실천해보아야 합니다.

불서 읽기 모임을 하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말은 “글자에 집착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라는 비난입니다. 그렇다고 깨달음이 좌복 위에 있는 것도, 매일 돌리는 염주 속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은 다 방편입니다. 방편은 그 사람을 목적지에 다가가게 하는 것(upadaya)을 말합니다. 일부 스님과 불자들이 불교서적을 경원시하는 이유는 책을 그저 책으로 보지 않고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불교서적을 읽으면서 그 속에 불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책의 내용을 음미하고 책에서 권하는 대로 살아보는 그 속에서 자기의 본 모습을 만나는 것입니다. 책은 그저 책일 뿐입니다.

또한 모든 책의 내용이 다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저자가 아무리 위대한 수행자나 학자라 할지라도 상식에 어긋나거나 심한 비약이나 억지주장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들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 또한 참으로 좋은 공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것인가에 몰두하거나 어떤 사항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됩니다. 물론 불교 상식을 얻는 효과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책은 잘 쓰여야 합니다. 잘 만들어져야 하고 많이 팔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책의 생명은 ‘읽힘’에 있습니다. 내 돈을 주고 샀건 법보시로 거저 얻었건 책은 읽혀야 합니다. 보현행원품 중에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최고의 법공양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뭘 말씀하셨는지 알아보려면 책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실천해보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되 그 책을 잘 활용하면 불교라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어느 사이 살갑게 느껴질 것입니다. 수행의 하나로 책읽기를 권합니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7-12-31 오전 8:24: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5.1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