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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사홍서원-배우며 살겠습니다
진리의 가르침에 항상 귀 기울이겠습니다
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2007년 12월 24일. 불교인재개발원 교육관에서 열린 성철스님 백일법문 강좌

선재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해 12월 24일 저녁 서울 인사동 불교인재개발원(이사장 허경만)에서 열리는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대중강좌에 다녀왔습니다. 2007년 12월 3일부터 2008년 2월 18일까지 열리는 강좌입니다.

불교인재개발원 교육관을 찾아 걸었습니다. 겨울밤 차가운 공기는 선재에게 입김을 호~ 불며 종종 걸음을 걷게 합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 거리에 사람은 사람대로 차는 차대로 빽빽합니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을 보니 선재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다들 들떠있는 날인데 오늘 강좌가 쉬는 것은 아닐까? 강좌가 있더라도 많은 분들이 참석 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런 저런 망상에 시간은 흐르고 불교인재개발원 교육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시간은 오후 6시 30분. “오늘 강좌 열리나요?”라고 묻는 선재에게 황금빛 프로그램 매니저(24세. 불교인재개발원)는 밝게 웃으며 “당연하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차가운 밤거리를 걸으며 잠시 꾀가 났던 선재는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교육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선재는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시작인 강좌인데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와있습니다. 협소한 공간임에도 강좌 들으시는 분들이 모두 40명으로 알고 있는데 얼핏 세어보니 30명은 족히 넘었습니다.

“차가운 겨울날, 다른 사람들은 놀기 바쁜데 어떤 분들이기에 이렇게들 열심이실까?” 자리에 앉아계신 한 분 한 분 바라보니 다들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평범한 분들입니다. 오순도순 가져온 간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 중에는 젊은 누나와 형도 있었습니다. 선재는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교육관 한켠의 성철 스님 백일법문 현수막을 쳐다봅니다.

성철 스님은 8년 장좌불와, 10년 묵언으로 납자들의 귀감이 되셨던, 우리 곁에 왔던 부처입니다. ‘가야산 호랑이’라 불렸던 스님은 공부를 제대로 않는 납자들을 시쳇말로 박살을 내셨다지요.
법전 스님(조계종 종정)이 풋내기 수좌 시절 당신이 깨달은 줄 잘못알고 인가 받으려 성철 스님을 찾아갔답니다. 성철 스님과 몇 마디나 건넸을까? 법전 스님은 마당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곁에 있던 한 수좌는 양철통으로 물벼락을 맞았고, 그 옆 스님은 사정없이 뺨을 맞았습니다. 또 다른 스님은 머리에 향로를 뒤짚어 써 재 범벅이 됐습니다. 그러고 성철 스님은 바람처럼 나가버렸습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공부를 열심히 안한다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그리 엄하셨던 성철 스님도 오늘 교육관에 모인 분들을 보면 환하게 미소지으실 것 같습니다.

백일법문(百日法門)은 중도를 핵심으로 근본불교부터 중관ㆍ유식 등 사상, 그리고 중국과 한국 선종사상과 오늘날 선문이 나아갈 길까지 두루 언급돼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사 방장으로 주석할 때 그 해 여름 안거 동안 하루 2~3시간씩 거의 100일 동안 사부대중을 위해 법문한 내용을 모은 이유로 백일법문이라 불리게 됐다고 합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분들을 보니 한 분 한 분이 모두 지혜의 후광을 두른 보살입니다.

이윽고 일묵 스님(해인사 백련암)의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목탁소리가 울리고 다들 정중하게 스님께 예를 올렸습니다. 강좌는 근본불교에서 연기와 중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중도를 따르는 수행이 팔정도 가운데 정념(正念)이고 이것은 바로 바로챙김(sati)입니다. 무명은 사성제에 대한 무지로 이는 곧 연기에 대한 무지를 뜻합니다. 연기를 정확히 모르면 영원히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성제의 내용은 바로 연기를 설명한 것입니다.”

강좌를 듣는 분들의 자세가 사뭇 진지합니다. 조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잡담하거나 딴청 부리는 사람도 하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교육관의 뜨거운 열기는 창문을 뿌옇게 만들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강좌 중 늦게 도착한 분들이 한분씩 살며시 들어오더니 이내 빼곡하게 자리가 다 찼습니다. 다들 숨이 가쁘게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강좌에 늦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만큼 몸도 바삐 온 듯합니다.

강좌가 끝나자 중간에 들어온 중년의 한 신사분이 “차도 사람도 너무 많아 늦었다”며 강좌의 처음부분을 놓친 것을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선재가 가서 여쭈니 그 분은 구로동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서의석 거사(49세, 서울 구로동)였습니다. 서 거사는 20여년 불교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사업체를 운영하기도 바쁜데 주말도 아니고 평일 저녁 짬을 내 멀리 찾아와 강좌를 듣는 이유를 묻자,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면 번뇌가 사라져 마음이 편하고 행복을 느낀다”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분은 어떨까 싶었습니다. 마침 일묵 스님에게 차 공양을 올리려 했는데 아들 차에 두고 내려 안타까웠다는 아주머니가 있어 물었습니다. 박명희 보살(53세, 서울 양재동)은 “행복하고 싶고, 자유롭고 싶어 불교를 배운다”고 명쾌하게 말해줬습니다.

<범망경> 보살계본은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이 모두 부처의 종자를 갖추고 있음에 마땅히 그것을 바로 알라며 주신 가르침입니다.
“사람 몸을 한번 잃으면 일만 겁 지나도 다시 받기 어렵다. 젊은 시절이 멈추지 않음은 마치 달리는 말과 같아 금새 사라진다. 사람 목숨이 무상함은 산위에서 내리붓는 폭포수보다 빠르다. 오늘은 살았다하나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고달프게 지내 뒤에 크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대중은 각자 한결같은 마음으로 이 계에 의지해 법답게 수행하고 마땅히 배워야 한다”며 대승보살이 수지해야할 계를 설하셨습니다. 10종과 48종으로 나눠 자기 성품의 본래 자리를 찾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를 설한 그 내용에 바로 ‘배우는 사람의 자세’가 있습니다.

▲스승과 벗을 항상 공경하라.(보살경계 1) ▲스승을 만나면 정성껏 예를 갖추고, 간절히 가르침을 청하라.(보살경계 6) ▲언제 어디서든 진리의 법을 설하는 곳이 있거든 듣고 배워라.(보살경계7)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움을 청하라.(보살경계 22) ▲이익을 탐해 배우지 말고 중생을 위해 대승사상을 배워라.(보살경계 24)

선재는 피어나는 환희심에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범망경> 가르침을 실천하는 보살입니다. 평일 일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분들, 허기를 면하기 위해 준비한 음식을 법우와 나누던 정겨운 모습. 강좌 전 일묵 스님에게 예를 올리던 그 분들의 경건함. 강좌 중 한 글자, 한 마디라도 더 배우려는 열의 가득 찬 눈망울. 정성스레 차 공양을 준비했으나 올리지 못한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던 아름다운 마음까지.

하지만 이분들과는 달리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분 중에는 아무리 법문을 듣고 경전을 보아도 진전이 없음을 한탄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미 늙어 배우기에는 늦었다거나, 업장이 두터워 부처님 법문을 기억 못하는 것이라 원망도 합니다. 잠시만 생각해 보세요.

부처님 법을 착실히 배워 깨달았다면 깨달은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사실건가요? 밥 먹고 일하고 잠자고,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냥 살아갈 뿐입니다. 때문에 잊고 또 잊어도 죽을 때까지 열심히 배우면 됩니다. 어렵게 배운 부처님 법문을 잊어 그 공덕이 없다 생각한다면 두텁다는 업장도 착각으로 본래 없는 것입니다. 공덕이 없는데 하물며 업장인들 있을까요?

과거 선재는 문수보살을 따라 110개의 성을 지나 53선지식을 참례했었습니다. 수백년이 걸렸습니다. 선지식 한 분을 찾아가는데 12년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가서는 불과 몇 시간 법문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미륵보살이 손가락 튕기는 사이 수백년 걸려 여러 선지식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한순간에 잊어버리기도 했었지요. 다시 문수보살을 찾아가라는 미륵보살의 가르침에 조금의 억울함이나 의심도 없이 문수보살을 찾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운 것은 모두 잊고 오로지 믿음만이 남았습니다. 그때 문수보살이 멀리서 오른손을 펴 선재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가르침을 줬습니다. 결국 오롯한 믿음 하나로 선재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중생이 부처이고 부처가 중생이듯 여러분이 바로 선재입니다. 여러분의 부단한 배움이 불망념지(不忘念智)로 이어져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한 이치를 체득하시길 합장 발원합니다.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8-01-01 오전 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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