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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사홍서원-베풀며 살겠습니다!
내 이웃의 손 잡으며 살겠습니다
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원장 묘전 스님은 가족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비복지타운 가족들의 미소는 묘전 스님을 비롯한 복지사들의 정성과 어우러져 베풂의 삶으로 이뤄지고 있다.

선재는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이 생겼습니다. 사홍서원의 첫 머리는 왜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衆生無邊誓願度)’로 시작되는 걸까요. 일체 중생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구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것을요. 그들을 다 구제하고 나서야 선재가 영원한 보리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니 조급해집니다. 어리석은 선재는 묻습니다. 중생이 모두 구제될 때 까지 ‘나’라는 존재는 잠시 잊어둬야 하는 것일까요.

선재는 이 답을 구하기 위해 12월 27일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에서 운영하는 경기도 이천 승가원자비복지타운(원장 묘전, 이하 자비복지타운)을 찾았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수 많은 보살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을 찾으면 선재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이 시설에는 현재 장애인 181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시설 내 ‘복지마을’에는 중증장애인 51명, ‘자비마을’에는 경증 및 정신지체 장애인 130명이 살고 있지요.

선재는 들어서면서부터 놀랍니다. 장애인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인 선재가 들어서도 경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접촉을 좋아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감화됐는지 선재도 마주쳐 오는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봅니다. 포근합니다. ‘아, 왜 내가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지었을까!’ 선재는 스스로를 꾸짖습니다.

선재를 자비복지타운까지 안내한 박찬우 복지사가 넌지시 이야기합니다.

“우리 가족들 원래 이래요. 사람 되게 좋아하거든요. 얼마나 순수한지….”

멀리 진주에서 올라온 박 복지사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습니다. 아, 장애인 가족들이 그렇게 얼굴이 밝은 이유를 알고는 무릎을 칩니다. 복지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 돼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경기도 이천에서도 교통이 별로 좋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탓에 자비복지타운 직원들은 2일 근무, 2일 휴무 체제로 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주일에 4일 이상은 꼼짝 없이 옴짝달싹 못하는 산골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시설에 온지 이제 7개월 됐다는 신현정 복지사는 척 보기에도 앳돼 보입니다. 하지만 신 복지사는 나이가 자신보다 배나 많은 가족들에게까지 ‘엄마’ 역할을 해냅니다. 응석이 심한 가족의 등을 두드릴 줄 알고 침을 흘리는 가족들을 봐도 그저 닦아줄 뿐 개의치 않습니다. 신 복지사는 자비복지타운이 자신에게 더 없이 좋은 곳이라 합니다.

“저는 여기를 극락이라 생각해요. 우리 가족들을 잘 돌볼 수 있으니까요. 가끔 운동장에서 가족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정말 행복해집니다.”

원장 묘전 스님이 공양을 마치고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날 감기에 걸려 몸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가족들을 볼 때마다 손을 잡고 한 마디씩 건넵니다. 밥은 먹었느냐, 음식 가리지 마라, 절대 배 곯고 다니지 마라…. 스님의 말은 그대로 가족들의 미소로 돌아옵니다.

봉사자 모임 분당어머니회에서 자비복지타운 가족들을 위해 놀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자비복지타운은 예전 이름인 ‘소쩍새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강원도 치악산 국립공원 내에서 구멍뚫린 무허가 비닐천막으로 집을 삼고 생활했던 장애인들의 사연은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지요. 소쩍새마을이 자비복지타운이 되기까지 스님이 고생한 것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부지 확보서부터 “혐오시설이 들어선다”며 막아서는 지역주민 설득까지 스님이 도맡았습니다. 그 때 스님은 설성면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람들과 10년 넘게 같이 지냈어요. 만약 이사람들이 정말로 위험하다면 제가 먼저 도망쳤을 거에요. ”

겨우 주민들의 마음을 돌려 어렵사리 시작된 공사는 2006년 9월 준공, 소쩍새마을 장애인들이 이사올 수 있게 됐습니다.

자비복지타운 직원들은 그런 스님에 한 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희정 복지사는 “스님께서 모두 내려놓으시고 우리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 다른 복지사들도 자연스레 따라하게 된다”고 귀띔해줍니다.

선재는 자리를 옮겨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있는 자비마을로 가 보았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 생활하는 영희 할머니(62ㆍ가명)가 보입니다. 할머니는 신장에 고무관을 꽂아 소변을 해결합니다. 할머니도 답답하겠지만 보는 사람도 안쓰럽습니다. 그런 상황이라도 할머니는 선재가 다가가자 환한 웃음으로 맞아줍니다. 손도 잡습니다. 김미선 대리가 선재에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조건 가족들에게 베풀기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힘들 땐 이렇게 가족들 손에서 희망을 얻습니다.”

바깥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복지사들에게 일거리를 떠안겨 주는, 와병중인 장애인인지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존재 자체로 복지사들의 마음에 희망을 주는 셈입니다. 복지사들만 이들에게 ‘베푸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마음을 베풀고 있는 모양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분당 어머니회’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큰 시설이다 보니 봉사자들도 많습니다. 선재가 방문한 날에 만난 분당 어머니회는 매달 1회씩 이곳을 찾아옵니다. 소쩍새마을 시절부터 4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분당 어머니회는 올 때 마다 간식과 함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짜오기 때문에 기다리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회장 김윤남(47)씨는 자원봉사를 다니다 현재 사회복지 공부까지 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아유, 여기 가족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어요. 다 우리 이웃인데 구분할게 뭐 있나요. 우리가 배워가는게 또 얼마나 많은데요.”

분당 어머니회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생각이 강하게 스쳐갑니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가족’이라 부르는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 자연스러워 그저 흘려들었지만 정말로 이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말투에서 확인됩니다.

그것은 김세미 복지사의 말에서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습니다. 가끔 가족 중 한 명이 없어져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힐 때가 있다고 합니다. 자비복지타운이 아무리 넓어도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 궁금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족을 잃어버린 복지사들은 애가 탑니다.

“가족이 없어지면 찾는게 당연하잖아요. 우리 가족들은 그냥 호기심이 많은 것 뿐인데 사람들이 무서워하잖아요. 어디서 또 맘 상할 이야길 듣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요.”

선재는 문득 이렇게 다양한 가족들이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낍니다. 때로는 가족이 서로를 힘들게 만듭니다. 가족들끼리 늘 사이 좋게 지낼 수도 없지요. 하지만 그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많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도 181명 장애인 가족, 50여명의 직원 가족들이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참 빠듯합니다. 요즘은 경제가 어려워선지 후원금도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난방을 위해 기름보일러를 가동하다 보니 한달 난방비가 1500만원이 넘었답니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 움직임이 거의 없어 실내 온도를 따뜻하게 맞춰야 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묘전 스님은 요즘 고민입니다. 시설은 번듯해졌는데 이제는 쌀 걱정, 생필품 걱정에, 기름값 걱정까지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스님은 요즘 체면, 계급장 다 떼어 놓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식구들을 이끌고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어리석은 선재는 차마 그들에게 중생을 왜 건지려 하느냐는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중생을 건지려고 함이 아니라 그저 식구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마음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위함이 없이 위하라, 다함없이 다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의미를 이제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 칭찬 받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언니…. 모두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할 줄 아는, 막힘 없는 우리 이웃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에서 말하는 ‘베풂’도 있는 것이 아닐까요.

승가원 자비복지타운 모습.

중생을 모두 구제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 분명합니다. 모든 관계 속에서 그 모든 중생을 구원하고 나서야 보살이 되겠다고 발원하는 것은 얼마나 원대한 서원입니까.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를 다시 되뇌어봅니다. 이는 수 많은 ‘나’가 만들어 낸 인연의 끈 속에서 함께 이뤄질 때 의미있다는 것을, 어리석은 선재는 자비복지타운 가족들을 보면서야 깨달아 갑니다.

그래서 선재는 다시 발원합니다. 세상 속에서 내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야말로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의 시작점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김강진 기자 | kangkang@buddhapia.com
2008-01-01 오전 8: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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