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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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불교-한 순간도 ‘불교’밖에 나간적 없어
권기종 동국대 명예교수(원각불교사상연구원장)
권기종 동국대 명예교수(원각불교사상연구원장)
내 인생에 있어서 불교를 떼어 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불교학을 전공해서 불교대학의 교수로 정년을 마치고 지금도 불교의 한 연구원의 책임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40년 경북 안동의 한 불교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어머니의 등에 업혀 절에 가서 자고 온 기억을 갖고 있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된 일이지만, 선친은 그냥 절에 다니는 신도의 수준을 넘어 불경과 불서를 읽으시는 요즘 말로 하면 다소 수준이 높은 불교신도였다.

나는 초등학교(당시 소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천자문을 선친께 배웠고, 그 후 <동문선습> <명심보감> <소학>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선친께서 “이 책을 한 번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내 놓으시는 책이 바로 <초발심자경문>이었다. 나는 이 <초발심자경문>을 선친께 배웠다.

이것이 내 불교인생의 시작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어머니의 등에 업혀, 또는 걸어서 절에 간 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모르고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이 <초발심자경문>의 배움이야 말로 내 인생의 큰 충격이며 불교공부를 하게 되는 전환점이기도 하다. <명심보감>이나 <소학>은 그 내용이 윤리적인 교훈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즉 선(善)을 행하고 악은 행하지 말 것이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라는 등 지극히 단순한 교훈으로 큰 의미로 마음에 다가오지는 않았다.

여기에 비해 <초발심자경문>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주인공, 즉 너 자신아 나의 말을 들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서 도(道)를 이루었는데 너는 어찌하며 아직도 괴로움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가…”라는 등의 가르침은 전혀 앞의 것과는 그 내용과 차원을 달리한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불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그 당시에 구할 수 있는 불교 책들을 구해 읽었다. 예를 들면 <심전개발> <팔상록> <장수왕과 장생타자> <보덕각시> 그리고 <부모은중경> 등의 책들이었다.

여기서 선친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선친의 불명(佛名)은 ‘성산(惺山)’이셨으며, 보살계를 받으셨고 여러분의 큰스님들을 찾아뵙기도 하셨으며, <부모은중경>을 번역해 보급하시기도 하였고 몇 개의 사원 건립에 화주가 되기도 하셨다. 당시 안동 포교당은 의성 고운사 말사였으며, 당시 고운사 주지이신 서재균 스님이나 안동 봉정사 주지셨던 김광문 스님, 대구 남산동 정혜사 주지(지금의 법호는 알 수가 없다)스님과도 깊은 교류가 있으셨다. 또한 지금의 진각종(당시 심인불교)의 종조이신 손규상님을 대구 남산당 심인당에 찾아가 만나기도 하셨다. 그 후 동산, 청담, 관응, 자운 스님 등도 뵈었다고 하셨으며, 선친의 말씀으로는 관응 스님이 경북 예천포교당에 계실 때 법문을 들었는데, 설법을 잘하시더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또한 전주 연화사에서 자운 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으셨다고도 하셨다. 만년에는 집에서 계시는 시간보다 절에 가서 계신 시간이 더 많으셨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한국전쟁 당시 전염병 창궐로 어머니를 잃었고,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른 사람보다 빨리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출가를 결심했고 출가에 앞서 선친의 허락장을 받아 절로 갔다.

이미 <초발심자경문>을 끝마치고 상당한 불교적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6개월의 행자기간을 거쳐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후 3여 년간 강원에서 소위 이력(대교과 졸업)을 마쳤다. 이력을 마치기까지는 통도사강원, 중앙학림, 포충사, 동화사강원을 거쳐 해인사강원에서 지관 스님 강하에서 졸업하였다.

그간에 가르침을 주셨던 스님으로는 운허 스님, 관응 스님, 월운 스님, 지관 스님 등 네 분의 스님이 계시다. 비록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스님으로 법정 스님을 들 수 있다.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운허 스님께서 한국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하실 때 인환 스님, 법정 스님 등이 이 편찬 작업에 종사하셨고 내가 이 편찬 일에 참여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다. 그 후 법정 스님과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출간한 <불교성전> 편찬과 불교종립학원연합회에서 간행한 중고등학교 불교교과서 편찬에도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성전 편찬 시에는 서경수 교수님도 함께 일했고, 중고등교과서 편찬에는 목정배 교수도 함께 일했었다.

이후 대학을 거쳐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는 이기영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셨다. 당시 나는 불교학과 학생이었고, 이기영 교수님은 인도철학과 교수셨다. 불교학과 학생이 인도철학과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신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러나 대학원에 문의한 결과 지도교수로 모시는데 규정상 하자가 없다고 했다. 이후 과정을 마치고 논문심사를 할 때는 다소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이기영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불교공부를 하고 오셨으며, 새로운 방법으로 불교학을 접근하고 연구하셨기 때문에 나에게는 학문적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 후 박사과정에서는 선학과의 지관 스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으니, 이 역시 불교학과 학생이 다른 학과인 선학과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신 일이다. 처음에는 불교학과 장원규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셨으나, 장 교수님이 정년하시고 행방이 묘연하여 할 수 없이 지도교수를 변경한 것이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한국불교백년사편찬부에서 근대불교백년사 편찬사업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때 편찬실장은 인하대학교 사학과에 재직하다가 정년하신 정광호 교수였고, 나보다 뒤에 들어와 함께 일하던 연구원으로는 현재 월간 <불교>의 주간으로 있는 송금엽 선생이었다.

그 후 나는 동국대학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의 교법사로 가게 되었다. 이때 불교종립학교연합회라는 기관이 설립되고 불교에서 설립한 초ㆍ중ㆍ고등학교의 불교교육을 체계화 하려는 일환으로 교법사 선발시험을 보게 되었고, 이 시험에 합격했다. 나와 함께 합격한 사람으로 김봉식(前 홍제중학교 교장), 서윤길(동국대 명예교수), 박명순(前 명성여고 교장), 김재호 선생 등이 있다.

이전에도 불교종립 중고등학교에서 불교학을 가르치는 교사가 있었지만, 자격제도가 없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교법사 제도를 마련하고 불교종립학원연합회장 명의의 자격증이 주어졌으며, 나는 그 자격증 번호 1번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학교를 떠나 군법사로 가게 되었다. 군법사 제도는 불교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하지만 막상 군법사 제도가 실행되자 사실상 불교종단에는 적합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무렵(1968년)에는 불교대학을 졸업한 군법사의 자격자는 승단 내에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승단 밖에서 적임자를 선발하여 제1기 5명이 임관하기 이르렀다. 나는 그 중 한 명으로 임관하여 1군사령부를 거쳐 주월사령부, 육군본부에서 전역했다. 당시 월남전에는 군법사의 활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래서 다섯 명의 군법사 김봉식, 이지행(前 대원회 법사), 권오현(前 불교방송 전무), 장만수, 권기종 중 네 명이 파월되고 한 명이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제2기생을 배출시켰다. 나는 주월사령부의 근무를 마치고 육군본부에 남아 있던 김봉식 법사와 임무교대를 했다. 이어 백마부대(9사단)에 있던 권오현 법사가 육군본부 법당으로 전입하면서 함께 육군불교장교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초대 회장에는 정승화 장군이 추대되었다.

그 후 4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는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에서 한글대장경 출판사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글대장경의 번역ㆍ출판사업은 불교종단의 노력보다는 운허 큰스님(역경원장)의 원력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만 해도 조계종단은 말로만 포교ㆍ역경ㆍ도제의 삼대 사업을 이야기했지, 역경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질 여력이 없었다.

나는 1974년부터 불교학과 강사가 되어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1977년에는 전임강사가 되었다. 전임강사 즉 교수가 되면 동국대학교의 정각원 교법사의 보직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정각원장은 지관 스님께서 맡고 있었다.

그 후 동국대학에서 총장비서실장에서부터 신문사 주간, 총무처장, 불교대학장 등 많은 학내의 보직을 맡았고 밖으로 불교학회장도 역임했다. 2006년 2월 말로 정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로서 천태종 원각불교사상연구원으로 원장직을 맡고 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12-27 오후 2: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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