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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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내 안에 불심 있다
“가정ㆍ직장에서 짬짬이 수행하세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수행이 가능하다. 12월 26일 퇴근을 한 직장불자들이 조계사 불교대학을 찾아 배움에 매진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불교공부나 수행을 하고 싶다”는 불자 대부분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쓰면서도 자신의 신행생활을 열심히 꾸려 나가는 불자들은 나름의 ‘시(時)테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출근 전 20분, 점심시간 30분, 낮잠을 줄인 40분이 깨달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가정과 직장에서 적은 시간이지만 짬짬이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자 주>

“하루 종일 집안일하고 거기다 남편 출근에 아이 등교 뒷바라지까지 하다 보면 잠시 앉아 있을 틈도 없어요.”

“집에서 신행생활을 하냐”고 물으면 많은 주부들이 이렇게 답한다. 물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사활동은 주부들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지만 하루 단 10분만이라도 자신의 수행을 위해 시간 낼 수는 없을까? 해인사 율주 종진 스님은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한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라며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자신의 믿음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부처님에게는 ‘수행하는 시간’이 따로 있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물론 걷고 말하고 먹는 행동 모두가 부처님에게는 수행이었다는 것이다. 종진 스님은 주부들에게 먼저 “올곧은 신행생활을 하겠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믿음이 굳어지면 마음을 한 마음으로 모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저절로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시간을 활용하는 비법이라고 종진 스님은 말한다.

그렇다면 실제 가정에서 신행활동을 이어가는 주부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주부불자들은 한결같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 지속적으로 정진하라”고 조언한다.

주부 정금옥(60)씨는 매일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08배를 한다. 잠을 줄여 수행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씨는 “108배를 하는 순간만큼은 잡념이 거의 들지 않고 절하는 그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108배를 마친 후 10분 정도 독경하고 나면 하루를 살아갈 든든한 힘을 얻습니다. 낮 시간을 내기 어려운 주부들이라면 새벽잠을 30분만 줄여보세요.”

주부 하경옥(58)씨는 불교공부를 하리라 마음먹고 난 후 틈나는 대로 경전을 손에 쥐었다. 처음엔 술술 넘어가던 책장이 어느새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곤 마음을 바꾸었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가 되면 무조건 하던 일을 멈추고 책상 앞에 앉아 경전을 읽자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2주 정도 습관을 들이니 청소하다가도 자연스레 “경전 읽을 시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일 하는 시간도 자신의 ‘경전 읽는 시간’에 맞춰 분배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하씨는 “평소 읽고 싶었던 불서나 마음에 새기고 싶은 자신만의 ‘소의경전’을 정해 일정시간만큼 매일 읽으라”고 조언한다. 오전ㆍ오후 20씩만 투자하면 한 달에 불서 2권 쯤은 거뜬히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주부들에게는 사경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주부 박민자(37)씨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30분 전부터 사경을 한다. “사경하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집안일에 시달리던 것도 잊게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도 정리할 수 있게 되거든요. 내 마음이 편안해진 상태에서 자녀를 맞으면 아이들이 꼭 부처님처럼 보여요. 아이들에게 괜히 신경질 내던 버릇도 없어졌답니다.” 박씨는 결혼 초 극심했던 시댁과의 갈등도 이제는 한결 나아졌다고 말한다. “부모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대하면 용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반듯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니 자녀들도 따라하게 되고, 어른들이나 이웃도 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 불교를 접했거나 혼자 신행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든 불자라면 경전공부모임이나 신행모임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행모임 여여회 회원 이옥자(70)씨는 평소 집에서 법문을 자주 들으려고 노력한다. “법문을 자주 읽고 듣다보면 저절로 그 가르침이 훈습(薰習)된다”는 이씨는 경전테이프를 종일 틀어놓고 듣는다.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 여여회 모임에 참석해 도반들과 함께 공부한다. 큰스님 가르침을 듣다보면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도 풀 수 있고, 법회 후 3~4일 후까지 법문 내용을 되새겨보려 노력하게 된다.

20여년 가까이 가정법회 겸 신행모임인 여여회를 이끌고 있는 이란 회장은 주부들에게 ‘가정에서 성불(成佛)하라’고 말한다. 불교공부를 하기 위해 무조건 먼 곳의 사찰을 찾아가거나 법회에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부인이자 부모로서 제자리를 지키는 가정에서부터 자신의 수행을 시작하라는 것이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 회장은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주부들일 수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시간에 끌려 사는 경우가 많다”며 “젊을 때부터 몸에 수행하고 공부하는 습관이 배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회장은 여여회 회원들에게 “공부의 시작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습관들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공손히 합장 인사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는 것부터 시작하면 몸가짐이 저절로 다듬어지고 이것이 공부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지요.”

불교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먼저 몸과 마음가짐을 정갈히 한 후, 매일 일과 후 일기를 쓰듯 사경을 하거나 시간을 정해두고 경전을 읽는다. 잠시 짬이 날 때마다 경전을 찾아 손에 쥐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전을 읽지 못했거나 사경을 하루 걸렀다고 “수행을 못했다”며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 회장은 “집안을 쓸고 닦는 모든 것이 수행”이라고 말한다. 어떤 마음으로 집안일에 일하느냐에 따라 수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의차명상연구원장 지장 스님은 “음식을 만들고 먹고, 차를 마시고, 청소를 하는 모든 일이 다 수행이다”고 말한다. “수행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부들이라면 가사 후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차 한 잔을 통해 자신을 고요히 살피다 보면 삶에 의해 멍들고 짓눌린 마음을 치료하고 언제 다시 찾아올 지도 모르는 내부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부들이 하루 두세 잔은 마시게 되는 차나 음료를 이용하면 쉽게 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 차명상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 한 잔 이면 충분하다. 우선 주위를 정돈하고 앉아 음료가 든 잔의 질감과 온도, 향을 천천히 음미한다. 처음에는 차나 찻잔 등 외부의 감각을 느끼다가 천천히 그것을 느끼는 자신을 살핀다.

지장 스님은 “찻잔을 들고 있거나 차 마시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자신을 통찰할 수 있으면 차 마시는 전체 행위 동안 자신을 통찰할 수 있게 된다”며 “차명상을 통해 자신을 통찰할 수 있으면 밥 먹고 청소하고 운동하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자신을 통찰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수행은 일상생활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이나마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그 순간이 수행의 시작이며, 삶 자체가 수행이 되는 것이라고 수행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12-27 오후 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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