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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세 때 해인사로 출가한 정영 스님은 조계종 원로의원 등을 역임했다.
현대판 무문관을 처음 세운 것으로 유명한 정영 스님은 1965년 말 서울 도봉산 천축사에 이어 1990년대 초 대자암에 무문관을 세워 무문관의 명맥을 잇는데 큰 공헌을 했다.
영파당 정영 대선사 행장 |
정영 스님은 1923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하였으며 일본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만공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로 출가. 상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43년 해인사 칠불암 대승사 미래사 보문사 등 전국 제방선원에서 수십안거 성만. 1954년 비구 정화운동 당시 동산 효봉 청담 스님 등과 정화 앞장.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교무부장 재무부장 역임 해인사 총무 천축사 봉은사 망월사 갑사등 주지역임 후 30년 동안 계룡산 대자암에 칩거 수행정진했다. 대자암 조실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1964년 천축사에 한국불교 처음으로 무문관 선방을 개설한 스님은 대자암에 1993년 윤3월 두 번째 무문관인 삼매당과 시민선방인 시방당을 개설 한국불교의 수행 풍토를 일신시켰다. 운구식 12월 27일 저녁 6시 대자암에서 수덕사로 영결식 (조계종 원로회의장) 12월 28일 오전 10시 수덕사 다비식 12월 28일 문도대표 능엄스님 (041)857-5880 (대자암) |
<관련기사>
“생사고해 끊고 확철대오”
을유년 동안거 결제날인 11월16일 새벽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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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명은 아직도 저산 너머에 숨어있다. 정신을 깨우려 냉수에 얼굴을 씻고 대중들과 같이하는 마지막 예불을 올리려 큰 법당에 들어섰다. 생사를 가르는 그날까지 쉼 없이 정진해 깨달음을 얻어 불타(佛陀)의 ‘크나큰 자비(大慈)’를 실천하겠노라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가다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無門關)에서 음력 시월 보름(11월 16일) 동안거 결제에 맞춰 구참수좌 25명이 3년 결사에 돌입했다. 지난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오전 10시, 무문관 3년 결사를 부처님께 고하는 동안거 결제법회가 시작됐다. 법회에는 결사를 시작하는 수좌들과 사중 스님 등 30여명, 그리고 신도 100여명이 동참했다.
법회 말미에는 대자암 조실 정영 스님이 손수, 25명 수좌들이 일대사를 해결하고 3년 결사를 무사히 회향할 것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집전했다.
오후 2시, 수좌들은 시방당(十方堂)에서 결사에 들어가기 전, 방사 이용의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대자암 삼매당(三昧堂)과 부여에 있는 제2무문관(옛 매화초등학교)으로 향했다.
이들은 2008년 10월까지 오직 깨달음을 위해 일체 외부와 단절한 채, 새벽 3시 일어나면서부터 밤 10시 잠들때까지 쉼없이 정진한다. 정영 스님은 이튿날인 17일 오후부터 각 방사의 출입문을 밖에서 잠궜다. 스님은 3년간 수좌들 가운데 확철대오한 이가 나올때까지 ‘문 없는 문(無門關)’ 수행을 지도하고 점검해 줄 예정이다.
“반드시 생사고해 끊고 확철대오 할 것”
이날 정영 스님은 수좌들에게 “본래의 마음자리를 깨닫는 것은 생사를 걸고 매달릴 만큼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얻기 어렵다”며 “이번 2차 결사에 들어가는 스님들 가운데 큰 깨달음을 얻어 온 세계에 불법을 널리 펼칠 명안종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표명했다.
지난 1차 결사에 이어 2차 결사에 다시 도전하는 서범 스님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생사고해를 끊고 본래면목을 확인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삼매당 3층에 입방한 비구니 석원 스님도 “부처님의 6년 고행과 달마 스님의 9년 면벽에 비하면 3년은 짧다”며 “반드시 3년 안에 깨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38세 비구부터 68세 비구니까지
대자암은 40년 전 서울 천축사에서부터 이어져 온 무문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이다. 지난 8월 21일 정영 스님의 주관으로 결사에 들어갈 수좌 21명을 선발했었다. 그러나 선발에서 떨어진 입방 희망자들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해 제2무문관에 4칸의 방사를 더 마련해 25명이 입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번 결사 동참자들은 38세 비구부터 68세 비구니까지 평균 법랍 20년차 내외의 비구, 비구니 구참 수좌들로 대자암 삼매당에 12명, 부여 제2무문관에 13명이 입방한다. 이 가운데 8명은 2002년 시작한 제1차 3년 결사에도 참가했던 이들로, 서울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수행을 회향한 관응·제선 스님의 뒤를 잇는다.
한편, 대자암은 무문관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있어 불자들의 후원 동참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 우체국, 310623-02-033475 문판오(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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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암, 수좌 25명 목숨 건 무문관 수행 돌입
조계종 5대 총림을 비롯한 90여개 선원 2100여명의 스님이 일제히 을유년 음력 10월 보름 동안거 결제에 들어간 가운데, 계룡산 갑사 산내암자 대자암(大慈庵) 무문관도 구참수좌 25명이 생사를 건 3년 결사에 돌입했다.
대자암은 11월 16일 오전 10시부터 2002년 시작한 제1차 3년 결사에 이은 제2차 3년 결사를 부처님께 고하는 동안거 결제법회를 30여명의 스님들과 신도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했다. 법회를 마친 사부대중들은 결사에 참가하는 스님들의 견성과 건강을 기원했다.
이어 오후 2시 정영 스님과 참가 대중들은 시방당(十方堂)에서 3년 결사에 들어가기 전 방사 이용의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2008년 10월까지 3년간 오직 깨달음을 위해 오전 3시~오후 10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가행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정영 스님은 이튿날인 17일 오후부터 각 방사의 출입문을 밖에서 잠그고, 3년간 수좌들의 ‘문 없는 문(無門關)’ 수행을 지도ㆍ점검한다.
이날 대자암 조실 정영 스님은 법문을 통해 “본래의 마음자리가 어디인지를 확인하고 깨닫는 것은 생명을 걸고 부지런히 캐지 않고서는 얻기 어렵다”며 “이번 2차 3년 결사에 들어가는 스님들은 방일하지 말고 정진해 시방세계에 불법을 호령할 명안종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입방자들 가운데 지난 1차 결사에 이어 2차 결사에 다시 도전하는 서범 스님은 “이번에는 반드시 생사고해를 끊고 본래면목을 확인 할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고, 삼매당 3층에 입방하는 비구니 석원 스님도 “부처님의 6년 고행과 달마 스님의 9년 고행에 비하면 3년도 짧다”며 “반드시 3년 안에 깨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대자암은 40여 년 전 서울 천축사에서부터 이어져 온 무문관의 전통이 살아있는 곳으로 8월 21일 조실인 정영 스님의 주관으로 결사에 들어갈 수좌 21명을 선발했었다. 당초 21명을 선발했지만 입방 희망자들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한 정영 스님이 제2무문관에 4칸의 방사를 더 마련해 25명이 입방할 수 있게 됐다. 이날 입방을 위해 모인 수좌는 대자암 삼매당(三昧堂)에 12명, 부여 제2무문관(옛 매화초등학교)에 13명. 2차 결사 참가자들은 38세 비구부터 68세 비구니까지 평균 승랍 20년차 내외의 비구, 비구니 구참 수좌들로 짜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