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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태안 땅에 들어서려면 마스크 2개쯤은 필수로 챙겨야 한다. 대기 중의 기름 냄새가 역하게 부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군은 그야말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던 관광명소였다. 그러나 지난 12월 7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건이 일어나면서 ‘검은 바다’로 변모했다. 원유 1만 500톤이 새어 나간, 사상 최악의 사고에 ‘환난상휼’에 익숙한 우리 국민이 모두 발 벗고 나섰다. 이는 불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대는 12월 11일부터 기름유출 사고지역 오염 방제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피해지역에 조계종 재난복구대책위원회를 설치, 계획적인 자원봉사자 동원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12월 12일 선발대를 파견, 현재 상황을 살피고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봉사대 도착시 원활한 봉사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실질적인 자원봉사 파견은 첫날은 12월 13일이었다. 이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소속 봉사단원과 개인 봉사활동 신청자, 조계사 신도들이 주축이 된 긴급재난구호봉사대 100여명이 피해 현장에 투입됐다.
12월 13일 긴급재난구호봉사대가 구호작업에 나선 곳은 태안군 신두리 해수욕장. 봉사대는 이날 아침 7시에 서울에서 출발, 10시쯤 신두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신두리 지역 오염 상황은 이미 많이 정리돼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갯벌에 남은 기름 찌꺼기와 모래밭에 침투한 기름 닦아내기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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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날씨는 먼저 도착해있던 다른 봉사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는 무엇보다도 시속 14~16미터에 달하는 강풍 때문이었다. 이날 봉사대에 지급된 물품은 방제복과 비옷, 고무장갑, 마스크 2개, 작업용 장갑 한 켤레, 고무장화 등이었다. 기름으로 오염된 지역이기에 봉사자들 개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선발대로 현장을 지휘하던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이용권 사무국장은 “기름 냄새가 강력하니 반드시 마스크를 쓰라”며 “원래 튼튼한 장정도 하루 6시간 방제작업을 한 후 이틀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라며 단단히 채비를 갖추고 봉사활동에 임해줄 것을 당부했다.
기름 오염물을 제거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부직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부직포 자체가 기름을 잘 흡수하는 성질을 갖고 있어 기름 오염 부분에 부직포를 가져다 누르면 부직포가 기름을 먹게 된다. 이렇게 하면 모래, 바닷물 등의 유출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현수막을 이용한 방법이다. 현수막이 PVC재질, 즉 비닐의 일종인데 이 역시 기름 흡착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전국에서 수거된 불법 또는 게시 시간이 지난 현수막들이 대거 태안으로 공수됐다. 현수막도 부직포와 마찬가지로 기름 오염 부분에 펼쳐 놓고 발로 꾹꾹 눌러주면 기름이 현수막에 달라붙게 된다.
마지막 방법은 삽 또는 쓰레받기를 이용한 방법이다. 이미 손쓸 수 없게 된 모래 등에 깊이 흡수된 오염 물질은 이렇게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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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봉사활동에 나선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소속 봉사자 박명환씨는 “요즘 몸이 조금 좋지 않지만 텔레비전에서 연일 나오는 태안지역 피해 상황을 보니 봉사활동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기름 제거에 나섰다.
또 대학입학 준비에 한창 바쁠 ‘수험생 부대’ 은정ㆍ아란ㆍ누리ㆍ지윤이(정희여고 3)는 여고생답게 활발하게 현장을 누비며 봉사대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은 “이렇게 힘든 작업을 여러 분들이 하고 계시는 현장에 와서 뜻 깊다”면서 “너무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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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현직 경찰인 송강일씨 등도 “이런 현장을 그냥 모른 채 지나칠 수 없어 급하게 봉사대에 합류했다”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 외에도 봉사대에 합류하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낸 직장 여성과 기말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 대학생, 자가 차량을 이용해 구호 물품을 날라준 불자 등 수 많은 봉사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태안의 거센 바람에도 기름 제거 작업은 계속될 수 있었다.
이날 불자 봉사대 말고도 문화관광부, 근로복지공단, 경기지방소방지구대, 각 지역 군경 등의 관공서 관련 직원들과 현대건설 등의 기업체 봉사자 약 2000여명이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오염 방제 작업을 펼쳤다.
이미 5일간 현장을 지휘해 온 현대건설 배도환 현장소장은 “나도 불자여서 그런지 불교 자원봉사자들이 더욱 반갑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불자 봉사자들이 기름 제거 작업에 동참해줬으면 좋겠다”고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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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쪽에서는 “지난 며칠간 기름떡이 형성돼 있었는데 그 때 봉사단이 파견됐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며 긴급재난구호봉사대의 한 발 늦은 파견에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전체 오염 제거작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 봉사자는 “전반적으로 봉사 체계가 없는 것 같다”면서 “방제복 등도 개인 봉사자에게는 지급되기 어렵고 1박 2일 등 장기 봉사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봉사자는 삽으로 모래를 파 올려 보여주며 “이미 모래 속에 기름 층이 형성됐다”면서 “처음부터 확실한 방법을 가지고 와서 현장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이미 지층 속에 묻혀 있는 기름은 어찌할 것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태안ㆍ서산 주민들은 신음하고 있다. 이곳 숙박업소들의 피해도 어민들의 시름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갯벌에서 서식하던 생물들과 먹이사슬로 연결된 수많은 생명은 또 어떤가.
이제 피해 확산지역이 안면도 등으로 늘어날 것 같지 않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고 있지만 유출된 1만 300여톤의 기름 가운데 12월 13일 현재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제거한 기름은 1200톤도 되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불자들은 물론 온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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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일본 후쿠이지역의 유조선 기름 유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전역의 봉사자들이 다른 약품은 일체 사용하지 않고 수건으로만 바위 등에 흡착된 기름을 닦아내 10년 만에 다시 청정해역으로 가꿔놓았다.
우리도 할 수 있다. 태안지역 봉사 열기, 그리고 한국인의 상조(相助) 문화가, 불자들의 자비 정신이 합쳐진다면 겁날 것이 무엇 있을까. 지금까지도 잘해왔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편 12월 14일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700여명의 봉사자들이 태안 오염지역을 방문, 기름 방제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태안지역 봉사 문의: (02)723-5101, (02)2011-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