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무렵 가뭄을 해갈하고자 태현 스님과 법해 스님이 각기 비를 청했던 사실이 나온다. 먼저 태현 스님은 대궐 안의 물이 말라 재를 올리는데 맑은 물을 올리지 못하자 법문을 하면서 향로를 받들고 있었더니 잠깐 새 우물물이 높이 솟았다고 한다. 그 이듬해에 왕은 법해 스님을 모셔 <화엄경> 강의를 청했다. 그러면서 태현 스님이 우물물을 솟게 한 사실을 언급했다. 법해 스님은 “작은 일인데 그리 칭찬하느냐”며 <화엄경> 강독을 했고 그 순간 동쪽의 못이 넘쳐났다. 그 물은 내전 50여칸을 떠내려 보냈다. 또 멀리 감은사에서는 한낮에 바닷물이 넘쳐 불전의 계단 앞까지 찼다가 저녁 때 물러갔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스님의 유식불교관에 대한 논문이 발표됐다. 남무희(국민대 강사)씨는 ‘<삼국유사> 의해편 현유가화엄조에 보이는 일연의 유식불교관’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야기가 실린 <삼국유사>의 의해편 현유가해화엄조을 인용해 일연 스님의 유식불교관을 정리했다.
남씨는 일연 스님의 유식불교관에 대한 관점을 <삼국유사> 의해편에 기록된 분량의 차이에서 시작했다. 의해편은 <삼국유사>의 다른 어느 편보다 신라불교사상과 관련 깊은 승려들을 모은 부분이다. 남씨는 일연 스님은 “다른 승전에 전하거나 따로 전기가 있는 경우에는 그런 자료에 없는 내용을 중심으로 의해편을 구성했다”는 종래의 학설에 주목하면서 <삼국유사>에 수록된 사실은 물론 다른 자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점다는 점을 지적했다. 특히 “태현 스님과 함께 유식불교인 신라 법상종을 대표하는 진표 스님의 경우 ‘진표전간’, ‘관동풍악발연수석기’, ‘심지계조’를 통해 충분히 언급되고 있다. 태현 스님에 대해 기술한 ‘현유가해화엄’조는 상대적으로 소략돼 있다”고 역설했다. 소략된 것은 물론 “은근히 유가와 화엄을 비교하고 화엄을 유가의 우위에 놓기 위해 ‘현유가해화엄’조를 <삼국유사> 의해편에 수록했을 것”이라는 것이 남씨의 견해다. 태현 스님에 관한 기록이 소략된 것은 “화엄과 유식의 미묘한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누락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씨는 유가와 화엄의 대립과는 별도로 “미륵과 아미타를 모시는 태현계 법상종의 법맥이 궁예에게 전해져 궁예의 몰락과 함께 쇠퇴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편찬 당시의 불교관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 남씨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