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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가 목적지와 여정을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구도나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와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을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기불교ㆍ유식불교ㆍ밀교ㆍ천태불교ㆍ조사선의 관점에서 불교의 궁극적 목표와 여정을 탐색한 세미나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가꾸는 밝은 사람들’(소장 박찬욱)가 12월 1일 개최한 제 4회 학술연찬회는 ‘불교와 상담’을 위해 실험적ㆍ합리적ㆍ실용적 차원에서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논한 자리였다.
□ 열반과 해탈은 불교의 이상과 실천을 대변하는 것 - 초기불교
임승택 교수(경북대)는 ‘초기불교의 깨달음과 실천’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불교의 궁극 목표를 깨달음과 열반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내용을 살폈다. “최근의 초기불교 동향이 다원주의적 관점과 방법론을 수용하고 있다”고 말한 임 교수는 “깨달음에 관한 어느 의견을 수용하더라도 사성제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성제는 불교의 가장 원초적인 실천론이다. <전법륜경>에 따르면 고성제는 모든 것이 고통임을 말하며, 집성제는 그것이 갈망에 의한 것임을, 멸성제는 갈망에 대한 남김 없는 버림을 말한다. 도성제는 거룩한 여덟가지의 길이다.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삶, 바른 노력, 바른 마음지킴, 바른 삼매의 팔정도를 뜻한다.
임 교수는 “사성제의 세번째 항목인 고멸성제는 열반을 가리킨다”면서 “고성제와 고집성제의 체계는 무상ㆍ고ㆍ무아에 대한 통찰 수행을 위주로 하는 일반 제자들의 실천영역에 속하는 이지적 능력을, 고멸성제와 고멸도성제의 체계는 열반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의도하는 선정수행 위주의 신비주의적 흐름에 상응되는 심리적 안정을 뜻한다”고 역설했다.
열반은 ‘행복한 상태로서의 열반’과 ‘부정적 개념으로서의 열반’으로 나누었다. 그는 ‘행복한 상태로서의 열반’을 “선정 체험을 중시했던 신비적 경향의 수행자들에게 친화적인 열반의 모델”로 봤다. 이것이 붓다 자신의 체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보였다. 반면에 ‘부정적 개념으로서의 열반’은 욕망ㆍ분노 등의 번뇌가 소멸된 상태로 한정된 이지적 능력에 배대했다. 임 교수는 열반을 행복한 상태로 규정할 경우 궁극적 경지를 일시적이고 주관적 체험의 영역에 한정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다는 지적 등을 들었다. 그는 열반의 성취에는 아무런 초경험적 인식도 필요치 않다는 칼루파하나 교수(하와이대)의 견해를 빌어 열반의 부정적 개념에 손을 들었다.
임 교수는 열반에 대한 다양한 유형들이 갖는 의의를 “제자들을 위해 붓다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가장 불교적인 것이며 초기불교 전체의 이상과 실천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 <섭대승론>은 통합적 불교 수행론 - 유식불교
김성철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는 ‘유가행파의 수행도’를 통해 <섭대승론>의 가행무분별지를 중심으로 유식의 수행에 대해 설명했다. 가행무분별지는 <섭대승론>의 3종 지혜론 중의 하나다. 3종 지혜론은 견도 즉 초지에서 발생하는 최초의 해탈적 통찰로 견도에서 끊어야할 번뇌를 끊는 근본무분별지와 근본무분별지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수행도의 성격을 갖는 가행무분별지, 근본무분별지를 획득한 후 새롭게 얻는 청정한 세간지를 칭하는 무분별후득지를 뜻한다.
김 교수는 “가행무분별지는 본질적으로는 분별을 동반한 지(智)이나, 근본무분별지의 원인이라는 의미에서 문훈습과 여리작의(의언)가 포함된 무분별로 명명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문훈습(聞薰習)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진실에 눈뜰 수 있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뜻하고, 여리작의(如理作意)는 ‘현명한 고찰’로 이해된다.
앞서 임승택 교수가 열반을 설명했던 긍정, 부정의 열반 개념에 이어 김 교수는 “<섭대승론>이 의언(意言)을 매개로 ‘부정적-지적’ 계통의 수행법과 ‘긍정적-신비적’ 계통의 수행 모두를 통합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 삼밀수행은 즉신성불의 성취를 위한 것 - 밀교
경정 정사(진각종 교육원장)는 ‘밀교의 수행차제와 증과’ 발표에서 최고 진실을 일체지지로 표명하는 밀교의 수행차제와 그 증과를 정리했다. 경정 정사는 “보리심이 밀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며 보리심의 생명적 파악이 금강살타의 개념”이며, “금강살타의 전체적인 인식에서 비로자나불의 교설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비로자나불의 정연한 활동상이 만다라이며, 만다라를 수행 관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삼밀수행”이라고 발표해 밀교의 교리와 수행차제가 보리심-금강살타-비로자나불-만다라-삼밀수행임을 보였다.
삼밀수행은 중생이 신구의(身口意)로써 부처의 신구의를 상징하는 진언, 인계, 형상을 결인, 염송, 관상의 방편으로 부처와 합일하는 수행법이다. 경정 정사는 밀교 수행의 증과를 “중생이 현생의 몸으로 성불하는 즉신성불을 성취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 법화는 돈점(頓漸)을 포섭하는 가르침 - 천태불교
천태학에서는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어떻게 설명할까? 이기운 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는 ‘법화 천태학에 있어서 인생고의 해탈과 불도의 완성’을 통해 천태학의 해탈과 불도를 위한 수행법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오셔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열어 보여 깨달음에 들게 했다”는 ‘일대사인연설’을 시작으로 “개권현실(開權顯實)의 취지에서 중생에게 사제와 십이인연법, 육바라밀법을 주어 생사고를 제거하여 불도를 이루게 했다”는 논지를 펼쳤다. 개권현실의 권(權)과 실(實)은 방편과 진실을 뜻하며 흔히 달(진실)을 가리키는 손가락(방편)에 비유된다. 개권현실은 즉 방편이 열림과 동시에 궁극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법화경>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를 위해 제시하고 있는 수행법은 “개권현실의 교의에 의해 삼승법으로 중생들의 인생고를 벗어나게 하고 일승법으로 구경의 불도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었다. 또 “천태의 수행은 점차지관ㆍ부정지관ㆍ원도지관의 삼종지관을 실천하는 점(漸)과 돈(頓)을 아우른 원교 실상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 일념을 수행하면 자신이 부처 - 조사선
월암 스님(벽송사 주지)은 ‘조사선의 수행과 깨달음’ 발표에서 조사선을 “일념을 수행하고 일념을 깨닫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물고기가 용이 되어도 몸에 있는 비늘은 변하지 않고, 범부가 성인이 되어도 인간의 모습은 바뀌지 않는다”는 옛 조사스님의 말씀을 인용한 스님은 “이 말은 곧 번뇌가 보리이며, 생사가 그대로 열반이고, 중생이 바로 부처이며, 깨닫기 전이나 깨달은 후나 자리이타의 보현행원이 변함 없음을 강조한 말”이라고 풀이했다. 한편 스님은 선수행자들에게 “수오일여(修悟一如: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의 실천을 통해 선의 생활화를 이루자”고 당부했다.
밝은 사람들의 이번 학술연찬회는 지난 봄 고ㆍ집성제에 이어 멸성제와 도성제를 논의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초기불교ㆍ유식불교ㆍ밀교ㆍ천태불교ㆍ조사선은 그 궁극적 목표를 밝힘에 있어 표현과 모습은 다를지언정 부처가 되기를 궁구하는 목표는 한결 같았다. 어느 가르침이, 또 어떤 수행법이 우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참석자들은 2500여년 불교의 흐름 속에서 일법만화(一法萬化)하고 만법귀일(萬法歸一)한 부처님의 현묘한 가르침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