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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관장은 어르신들에게 앉아서 인사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자 노인복지 마음가짐의 근본이다.
“저는 ‘몸짓’이 어르신들을 대하는 기본 태도라 생각해요. 말도 상냥해야겠지만 한 번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눈을 마주치는 것보다 중요한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좋다. 자연히 점심 시간도 어르신들과 함께 보내는 일이 잦다. 어르신들에게만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다. 관장 스님, 부하 직원까지 두루 그를 좋아한다.
“회사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저희 복지관은 직원들 사이가 참 좋아요. 저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그것이 관리자로서의 역할 중 하나라 생각하고요.”
물론, 그도 엄격할 때는 엄격하다. 꼼꼼하고 반듯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복지 CEO 자질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연마해온 결과다. 2005년 수연 스님으로부터 받은 ‘원경(員憬)’이라는 법명처럼 그는 둥글둥글 깨달아가고 있다.
2000년 일산노인복지관이 개관하면서부터 일해 온 그는 사실 처음부터 불교신자는 아니었다.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과 인연을 맺으면서 불교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렇지만 사회복지와 첫 인연을 맺게 해 준 계기는 불교 안에 있었다.
“고3때 법정 스님의 <텅 빈 충만>을 읽으면서 참 감동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나누는 삶,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그는 원래 체육학도였다. 체육대학에 진학한 스무 살 어느 날, 문득 회의가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사회복지 공부를 위해 체육대를 1학기만 다니고 그만 뒀지요.”
체육대에 다닐 때는 고민에 휩싸였던 그가 복지를 선택한 후에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다니 역시 사람은 자기 갈길이 다 따로 있는 모양이다.
범인(凡人)이 실생활 속에서 ‘무소유’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할 터. 김 부관장은 “조금 덜 가지고 나누면 충분히 행복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이런 그의 생각에 가족들의 지지도 전폭적이다. 그의 아내도 중증장애인시설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할 터.
“우리 아이들은 제가 학교에서 학부모 강연하는 것을 정말 자랑스러워해요. 저는 그것이 고맙고요.”
그는 요즘 원고를 하나씩 쓰고 있다. 사회복지 현장의 에피소드가 주 내용이다. 사회복지사로 정년을 마칠 때까지 그는 계속 이 작업을 하고 싶단다.
“초년생 복지사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습니다. 노인복지의 경우, ‘노인’을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인자한 인상만 생각하면 낭패를 봅니다. 현장의 생생함이 담긴 책을 써서 조금이라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