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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부처님 어깨에 내려 앉은 먼지는 어떻게 청소해야 할까? 자칫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만 앞서 물걸레로 불상이나 불화를 닦아 낭패를 본 경험이 사찰마다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성보(聖寶) 문화재를 올바로 청소하는 법을 배워보는 ‘소제(掃除)법회’가 12월 9일 서울 봉은사(주지 명진)에서 처음으로 봉행됐다.
소제란 비로 쓸고 버림을 통해 깨끗하게 한다는 뜻으로, 전통적으로 부처님오신날이나 초하루법회 같은 큰 법회를 앞두고 사찰에서 행해왔다. 하지만 정기적인 법회의 형식으로 소제가 진행되지 않아 그간 사찰 성보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청소 및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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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문화부(부장 수경)가 사찰문화재 보존을 위해 처음으로 봉행한 이번 소제법회는 문화재 관리에 대한 잘못된 점을 개선하고 문화재 보존과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9일 오후 1시 봉은사 법왕루에 모인 봉은사 스님과 신도들은 소제의식을 봉행했다. 소제의식은 삼귀의와 신중청(神衆請), 거목(擧目), 향화청(香花請), 다게(茶偈), 반야심경, 불설소재길상다라니(佛說消災吉祥多羅尼),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을 외는 순서로 진행됐다. 도량을 청소하기에 앞서 사찰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보호해달라는 뜻에서다.
본격적인 청소에 앞서 문화부장 수경 스님은 “소제가 먼지를 털고 때를 닦는 것이라면, 수행은 마음의 때를 털고 닦는 것”이라며 “비질을 하며 마음의 번뇌ㆍ망상을 떨쳐냄으로써 도량청정이 곧 마음청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소제의 의미를 밝혔다.
주지 명진 스님은 “일전에 한 신도가 영산전 불상을 물걸레로 닦아 얼룩진 예가 있었다”며 “다행히 이번에 조계종 문화부가 성보관리요령을 알려주는 기회를 마련해 부처님을 청정하게 잘 보존할 수 있게 됐다”고 소제법회 봉행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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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법회에 동참한 봉은사 국장 스님들과 신도 100여 명은 4개 조로 나뉘어 대웅전과 판전(板殿), 사천왕상, 범종을 맡았다. 소제에 앞서 장갑과 마스크, 앞치마를 착용하고 다양한 크기의 붓과 청소기, 마른 걸레 등의 청소도구를 챙겼다.
대웅전 소제는 불단의 공양물과 촛대를 치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붓으로 불상의 먼지를 털고 옆에서는 청소기로 먼지를 흡입했다. 큰 붓으로 대강 쓸고 난 후 작은 붓으로 부처님의 머리인 나발(螺髮)과 옷주름을 세세하게 털어냈다. 사찰 입구의 사천왕상에도 소제의 손길이 미쳤다. 빗자루로 거미줄을 제거하고 전각의 유리도 깨끗이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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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판전은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청소의 시작을 알렸다. 판전의 끝자락에 쌓인 묵은 먼지를 털고, 주련과 문살 위의 모래먼지를 깨끗이 털었다. 대강의 청소가 끝난 후 판전에 모셔진 불상의 좌복을 제거했다. 불상 아래 깔아두는 좌복은 습기를 흡수하고 수평을 이루지 못해 불상을 손상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세 시간여에 걸친 소제가 끝난 뒤 선불당에서 회향 법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머리에 먼지를 뒤집어 썼지만 얼굴 표정은 더 없이 환하다. 봉은사 내의 9개 전각을 관리하는 모임인 전각부의 최무애지 보살은 “평소 전각 청소를 하며 먼지가 많아 안타까웠는데 올바른 소재 방법을 배워 여법하게 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화국장 수경 스님은 “사찰 소제법회는 성보를 깨끗하고 여법하게 관리하는 것과 함께 소제 때 마다 성보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각 사찰마다 정기적으로 소제법회를 봉행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