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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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중 사흘만 수행 못해…‘나’ 비우려 노력”
현각 스님, 리처드 기어를 만나다
숭산 스님의 푸른 눈 상좌로 알려진 현각 스님(43), 그가 세계적인 영화 배우 리처드 기어(58)를 만났다. 리처드 기어는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사관과 신사’ ‘귀여운 여인’ ‘시카고’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현각 스님도 저서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고 한국 선불교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리는 중이다.

둘은 서양인이라는 것 외에 미국의 전통적인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으나 성인이 된 후 불교의 매력에 빠져 수행 중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은 불교를 공통분모로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현각 스님은 출가자의 모습으로 한국 선불교를 경험했고, 리처드 기어는 재가자의 모습으로 티베트 불교에 심취돼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이며 현대 문명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뉴욕에서 불교TV의 주선으로 지난 9월 12일 뉴욕 맨허튼 리처드 기어의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이 서양인 불자들의 30분간 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할까?

눈푸른 이 두 불자의 대담을 듣다보면 한국 불교가 세계속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는 듯하다. 11월 13일 방영된 두 사람의 만남을 다룬 불교TV 특집대담 ‘리처드 기어 현각을 만나다’의 내용을 정리했다.

▲불교와의 만남
현각: 불교의 매력에 빠져 수행 하다 어느 순간 스승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숭산 스님을 뵙고 그분의 시자로 살면서 집중 수행을 시작했다. 100일 안거, 90일 안거 등 선불교 스타일대로 수행하며 ‘나’라는 존재를 오롯이 헌신한 채 그것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어: 나는 그리스도교적 환경에서 자랐다. 특히 개신교중 감리교도인 아버지는 목사나 다름없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에 나는 아버지와 다른 종교이지만 자신의 정신을 탐구하는 종교인 불교에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됐다. 내게 있어 불교는 자연에 의지하는 농부의 엄숙함과도 같은 가르침이었다. 그 엄숙함이란 나는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는 마음, 나는 햇빛을 만들 수 없으며, 그저 주시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선불교의 특성이라 생각한다.

▲선불교에서 티베트 불교로
현각: 리처드 기어, 당신은 본래 선불교에 입문했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쳐내면서 화두를 참구하며 사고(思考)가 일어나기 이전 마음의 본성을 직접 바라보는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당신은 티베트의 가르침에 이끌렸다. 티베트 가르침의 무엇이 당신을 선수행에서 히말라야 불교로 이끌었는가?

기어: 선불교가 좋았던 것은 매일 일상생활 속에서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이었다. 그러한 수행법을 선불교의 엄격한 스타일로 경험하니 수행하는 습관이 붙게 됐다. 수행을 하다보니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바라본다는 것은 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달라이 라마를 인도에서 만났고, 그 순간 나는 커다란 자비심을 느꼈다. 물론 선수행에도 있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자비심을 매우 분명하게 강조한다. 모든 중생의 고통을 마주함은 바로 무아를 성취하는데 매우 직접적인 방식이다.

예를 들어 남의 고통을 마주하려면 모든 감정이 다 개입된다. 감정, 상호연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공유한다. 그것이 공(空)을 더 궁극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는?

현각: 나는 선승으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불교를 만났고 특히 유럽에서 티베트 불교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목격했다. 불교의 많은 전통 중에 나라를 잃어 특별한 후원도 없는 티베트 불교가 환영 받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어: 가장 큰 요인은 달라이 라마다.

현각: 달라이 라마 한 개인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보는가?

기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달라이 라마는 그 어떤 사람과도 그 사람의 차원에서 소통이 가능한 분이다. 그는 소통에 있어 매우 지혜롭고 자재하다. 이것은 위대한 스승만이 갖춘 품성이다. 우리 시대에 많은 스승과 불교의 스승들이 있지만 그 누구와도 그렇게 지극히 단순하고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그는 대단한 학자고 명상가다. 사람들에 대한 직관이 발달했고 유머감각도 탁월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알고 있지만 그에게는 어떤 자만심이나 자존심의 흔적이 없다. 어디서든 거기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마음을 쓴다. 이것이 그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점이고, 사람들 역시 그런 마음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냥 마음으로 아는 것으로 지적인 앎이 아니라 단지 느낄 뿐이다.

달라이 라마는 당신이 영어를 모른다 해도 그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진정 알 수 있는 그런 분이다. 그의 유머, 극도의 단순ㆍ소박함이 중요한 장점이며 불교의 개념에 대해서도 그보다 더 잘 설명할 사람은 없다.

현각: 내가 최근 독일에 갔었는데 편의점에서 슈피겔지 표지에 실린 달라이 라마 사진이 보였다. 기사를 봤더니 달라이 라마가 최근 독일을 방문했다고 하고, 그곳의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와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종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44%가 불교, 41%가 그리스도교라고 했다. 또 “당신이 따르고 싶은 종교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독일출신 교황이 2위를 차지했었다. 유럽 철학의 중심에 있는 독일인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매료됐다는 것이 놀랍다.

기어: 실은 지난 몇 년 동안 독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동일한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해왔다. 종교ㆍ정치 할 것 없이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항상 답은 달라이 라마였다. 다른 이가 달라이 라마 수준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습득하기란 지극히 어렵고 극히 드물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가르침에 속한 많은 스승들을 접했지만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은 천년에 한번 있을 희유하고 복된 일이다.

▲티베트 불교와 인류
기어: 나는 진실과 정직, 실제함과 안정됨을 이유로 티베트 불교가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티베트 불교안에는 탄트라 전통과 다른 것들이 녹아 있다. 그리고 환생을 거듭하며 승원전통과 비승원전통에서 교육을 받으며 맥을 이어가는 선지식들이 있다. 다시말해 티베트 불교는 다양한 불교의 가르침이 면면이 전부 살아있고 법맥이 끊어지지 않는다.

다만 티베트의 정치적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가고 오는 것이고 그런 변화는 우리 삶의 현실이니까. 하지만 불법의 진리는 불변하다. 현 세계의 역동성으로 볼 때 석가모니불의 불교는 점점 약해지다가 미륵불이 출현하면서 그의 불교로 이어질 것이고 그의 영향력은 우주에 엄청난 파장으로 번질 것이다.

현각: 그러니까 불법의 가르침이 중요하고 티베트가 불법으로 가는 깨달음의 배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인가?

기어: 물론이다. 분명 불법은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이 세상을 풍요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의 문화, 하나의 종교, 하나의 사고, 무엇이든 하나에만 의존한다면 분명 우리는 더 가난해질 것이다.

▲서양에는 아직도 낯설은 불교

현각: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것은 시카고종교회의를 기점으로 할 때 100년이 넘는다. 처음에 일본 불교가 전해졌고 후에 티베트 불교가 왔다. 분명 우리 사회에는 불교가 깊이 스며들어 지금은 문화의 일부가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난폭하고 물질적이고 낭비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 것인가? 선을 닦는 수행자로서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낫게 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의 문화권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선물을 전해 받은 우리는 과연 변화했는가?

기어: 불교는 아직은 새로운 종교다. 스즈키 선사를 통해 선불교가 먼저 전해졌고 이후 티베트스님들이 왔지만 한동안 티베트 불교에는 번역자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은 티베트의 가르침을 정확한 서양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 점에서 선불교는 티베트 불교보다 우수했다. 1860년대에 이미 미국과 교류를 시작한 일본이기에 선불교를 전파함에 있어 언어의 장벽은 높지 않았다. 그래도 불교는 서양에서 너무나 어렵다.
나는 서양사회에 성숙되지 못한 불교를 이유로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데 “아, 난 알아, 이루었어”, “난 불법을 이해해”라고 느끼는 착각을 경계한다. 나는 지난 30년간 공(空)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나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어린애다.

▲수행은 곧 삶-리처드기어 30년동안 사흘만 수행 못해
현각: 나는 티베트불교는 잘 모르지만 켄세 린포체의 책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다. 초심이라는 것, 생각 이전의 그 마음, 모르는 마음, 이것을 공(空)이라 할 때 당신에게 공(空)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또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초심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기어: 내게는 자비심이 그런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자비심을 일으키려 해도 어느 정도는 ‘나’가 없는 ‘무아’의 경지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문제를 내 문제로 느끼려면 어떻게든 자기 문제를 잊어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 자기 문제를 잊는 순간이 바로 공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끊임없이 타인 혹은 어떠한 상황과 부딪치고 긁히는 것이다. 또 그것으로 인해 감정과 사고가 일어난다. 그런 것들이 일어날 때 우리가 무아에서 일어난 자비심으로 그를 감싼다면, ‘나’를 소중히 여기는 집착이 줄어든다면 그런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 적어도 맑은 마음의 나라 안에서 마음의 본성 안에 살 수 있다.

현각: 그렇다면 당신은 일상의 삶에서 그런 상태로 향하기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하는가?

기어: 나는 반드시 매일을 수행으로 시작한다. 수행을 통해 나의 참마음이 보편적이며 전혀 개인적이지 않다는 동기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남을 돕기 위해서라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30년동안 단 사흘만 수행을 못했다.

내가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여기 있다는 마음을 내면 즉시 모든 성자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어깨에, 그리고 머리에, 즉시 느껴진다. 그런 광대한 긍정적 에너지와 연결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도움이 된다.

나의 수행은 항상 서원으로 시작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수반된 가능성을 인정하고 모든 중생을 돕겠다는 서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행을 통해 얻은 작은 공덕이라도 모든 중생을 위하겠다는 회향을 한다.

수행을 하며 느끼는 것은 세상 속에 사는 것이 수행이고 그런 수행이 무한한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세상 속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가능성들에 대해 약간의 조절기능만 갖추면 족하다. 그리고 한 순간 “아, 내 생각은 이리로 가고 있구나!” “아, 내 감정이 그리로 향하고 있었구나!”하는 그것을 알아보고 그것이 부정적이면 좋게 전환시키고, 긍정적이면 더 확장시킬 수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매우 중요한 수행이다.

또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것 역시 무아를 닦는 강력한 수행이다. 인내심 역시 혼자 있을 때보다는 가정에서 훨씬 더 닦을 기회가 많다.

▲사홍서원
현각: 사홍서원이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묻고 싶다. ‘첫째, 중생이 수도 없지만 모두 건지오리다.’ 이것을 당신은 어떻게 실천하는가?

기어: 동기가 중요하다. 언젠가 달라이 라마가 기도에 대해 법문할 때 “기도는 극히 복잡하고 어렵다. 이를테면 이 우주에 있는 수많은 중생을 어떻게 구하겠노라고 기도하겠는가?”라고 물으며 “무엇보다도 우선 그냥 서원을 말하라”고 했다. “먼저 그 말을 믿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말하라. 그러다 보면 마지막에는 너의 마음이 그 생각으로 꽉 차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이것은 피아노 치는 것과도 같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피아노를 치고 싶은 본능이 생긴다. 처음부터 모차르트를 칠 수는 없지만 그냥 치기 시작하고 서서히 감이 온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모두 정각을 이루어 부처가 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

우리의 모든 동기를 이것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불자가 아니라서가 아니고,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행복을 향하고 고통을 멀리 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것을 그런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냥 서원을 말하라. 머지않아 당신의 마음에 속속들이 스며들 것이다. 우리는 단지 끊임없이 되뇌이기만 하면 된다.

현각: ‘둘째, 번뇌가 끝이 없지만 전부 끊으오리다.’ 이것을 어떻게 일상속에서 실천하는가?

기어: 성숙이 관건이다. 그 무엇도 단 하나도 우리가 집착해야 하거나 항상하는 것은 없다. 약간만 훈련하면 사고와 감정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훈련을 조금만 더 하면 그런 사고와 감정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현각: ‘셋째, 법문이 한이 없지만 모두 배우오리다.’

기어: 우리는 하나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무아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관건이고, 감정적으로는 인내심이다. 나와 남을 향한 인내심 그리고 자비심.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혹한 경우가 많다. 나는 수행을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자신에게 관대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현각: 마지막으로 ‘불도가 드높지만 기어이 다 이루오리다.’ 이 서원은 당신에게 매일 무엇을 하게 하는가?

기어: 불법이 개념화되었다면 그건 분명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피아노 연습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필요하다.

피아노가 무엇인지, 내 손가락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마음이 어떻게 배어나올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떻게 동기가 부여되는지, 자신만이 아니라 남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 노래가 피아노에서 나올 때, 나의 생명력이 몸에서 나올 때 그것이 남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알아야 궁극적으로 전 우주가 함께 공명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다.

▲불자로서의 당부
기어: 사람들은 다르마, 카르마, 또는 다른 불교용어, 예를 들면 공(空) 등을 이해한다고 착각한다. 누구라도 “아, 이젠 알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게 스며들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다. 내 생각엔 그런 일은 몇 세대가 더 지나야 가능할 일이다.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편한 길, 값싼 길을 찾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도가 될 수 없다. 험한 길을 찾아야 한다.
정리=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7-11-23 오후 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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