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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ㆍ일 삼국의 문화적 이질성을 융합한 새로운 개념 창출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동북아 네트워크 국가 건설을 통한 공존과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는 11월 15~16일 동국대 예술극장에서 ‘동아시아 문화정체성 확립을 통한 한중일 협력방안 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한ㆍ중ㆍ일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이어령 前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조강연을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어령 前 장관은 ‘동 아시아의 융합문화 만들기’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삼국은 정치와 경제적 접근이 아닌 문화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며 문화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화는 바이러스처럼 전파되며 시간과 공간을 기준으로 시대의 동질성과 지역문화로 표현된다.
문화라는 용어에 대해 그는 “현재 우리에게 통용된 문화의 개념은 ‘문치교화(文治敎化)’가 아닌 서양의 ‘경작하다’는 의미의 컬처(Culture)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며 이것의 개념을 고치기 보다는 “있는 모습 그대로 긍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세아라는 명칭은 16세기 후반 마테오 리치가 처음 사용한 말로 고대 희랍의 헤카타이오스에 의해 유래됐다. 헤카타이오스가 최초로 그린 세계지도에는 유럽과 아세아의 구분뿐이며, 동서 축이 아닌 남북을 축으로 유럽은 북쪽에 아시아는 남쪽에 그려져 있다.
콜호넨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아세아와 유럽은 각각 해가 뜬다는 ‘아수(asu)’와 해가 진다는 ‘에레브(erebu)’에 그 어원을 둔다. 현재도 동남아, 서남아 등 지역권별로 아시아를 부르는 호칭이 아세아 중심이 아닌 서양을 중심으로 한 방향의식임을 알 수 있다.
“아세아라는 지역과 명칭은 있으나 정작 아세아는 없다”고 주장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인용해 희랍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동북아 문제에 접근해야 함을 전제했다.
“동북아 아세아의 각국이 서로 자신의 우월성만을 주장하면 또 다시 패권주의의 제물이 돼 역사상의 비극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공존과 공생을 강조한 그는, 그 방법으로 유럽연합(EU)과 같은 동북아 네트워크 국가건설을 제안했다. 그가 삼국이 하나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제시한 것은 매화와 용이었다.
“목련은 중국인만이 으뜸으로 여기고, 벚꽃은 일본인만이 최고로 치지만 매화는 그렇지 않다. 중국에서 시작된 매화는 천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함께 지내온 친근한 나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용(龍)을 “소수민족들에게 토템의 대상이던 다양한 짐승들을 하나로 융합시킨 아이콘”이라고 말한 이 前 장관은 용의 이미지를 사슴의 뿔, 낙타의 머리, 소의 귀, 호랑이 발에 독수리 발톱, 토끼눈에 몸통은 악어의 형상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자기와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조화의 아이콘은 봉황이나 현무, 주작에도 해당된다.
이 前 장관은 더 나아가 동양의 용과 서양의 키메라를 비교했다. 용이나 봉황 등이 조화를 이룬 모습인데 반해 흉측한 괴물로 묘사되는 키메라는 모든 문화 문명이 이항대립체제(binary opposition)로 발전해온 서양과 동양이 다름을 보여주는 예다.
이런 조화와 융합의 전통이 동양에서는 종교로도 나타났다. 이 前 장관은 “유교ㆍ불교ㆍ선도 등이 용처럼 습합되어 함께 삼교일치(三敎一致)한 것”이라 표현하면서 그것에 문화(종교) 충돌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슬기롭게 미래를 준비할 열쇠가 있음을 보였다.
“한ㆍ중ㆍ일 동북아 삼국이 대륙과 반도와 섬이라는 서로 다른 지리적 환경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면서도 서로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문화적 관용주의를 실현해 왔다”고 설명한 그는 동북아 삼국의 하나된 미래가 결코 요원하지만은 않다는데 무게를 두었다.
동북아 균형을 위한 한반도의 역할론에 대해 이 前 장관은 반도의 지리적 특성을 강조했다. “중화사상으로 대변되는 강대한 대륙문화와 대동아공영으로 표현되던 강력한 해양문화 속에서도 한국은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고 평가한 그는 삼국의 무역균형을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로 설명했다. 실제로 삼국의 무역은 한국은 중국에 흑자를 내고 일본은 한국에 흑자를 내며 중국은 일본에 흑자를 내는 가위바위보의 구조로 이뤄져있다.
이어령 前 장관은 조정자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가마솥에 비유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이 불이고, 일본이 물이며 한국은 물과 불을 상극이 아닌 상생으로 이끈 가마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중화사상과 일본의 대동아공영의 우를 막고 공존ㆍ공생의 길로 가려면 한중일 삼국이 각기 가위바위보 하는 균형관계론이 필요하다”는 이 前 장관은 동북아 힘의 균형자로서 한국의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공부(工夫)’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배우다(Learn)의 의미지만, 중국에서는 시간(틈)의 의미로, 일본에서는 생각한다(thinking)는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예를 든 그는, “창조는 평범한 기술의 비범한 결합”이라고 설명하며 삼국의 문화적 이질성에서 새개념을 창조할 것과 가위바위보를 통해 공존ㆍ공생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중국을 대표해 기조강연을 한 지앙리펭 소장(중국 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은 ‘21C 한중일 협력방안 고찰’을 통해 삼국을 이익공동체라 규정하고 ▲공고한 정치적 기초를 통한 정치적 신뢰 구축 ▲공고한 경제기초를 통한 경제적 상호이익 생산 ▲공고한 문화적 기초를 통한 문화의 상호 접촉 ▲공고한 민간기초를 통한 국민간 상호존중을 주문했다.
일본을 대표한 기조강연에 나선 마루야마 코이치 교수(일본 복강여학원대학)는 ‘한·중·일 공통문화의 재인식과 현대적 의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한중일 삼국의 경계선이 하나의 띠를 넘을 정도로 좁고, 이것을 넘어 상호 왕래하는 것이 간단하고 용이하다는 의미의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중국말을 예로 들어 한중일 3개국이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문화를 설명했다.
이번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함께 고민한 결과가 한ㆍ중ㆍ일 모두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공존과 공생을 위한 한중일 각계 전문가들의 실험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