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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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 스님 초청, 간화선 담선법회 현장을 가다

“염기념멸(念起念滅)을 위지생사(謂之生死)니 당생사지제(當生死之際)에 부진력제기화두(復盡力提起話頭)니라……나무 아미타불.”

11월 18일, 김천 직지사 만덕전. 조계종 포교원(원장 혜총)이 주최한 ‘간화선 수행법에 대한 담선법회’에 500여 사부대중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삼귀의와 포교원장 인사말에 이어 이어 청법가가 끝나자 전국선원수좌회 대표인 혜국 스님(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이 나옹 선사의 화두참구법을 게송으로 읊으며 ‘법의 문(法門)’을 연다.

“한 생각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이름 하여 생사(生死)라 하니, 이러한 생사에 당하여서 다시금 힘을 다하여 화두를 들지어다. 화두가 순일하면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다하나니,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다하는 곳을 이름 하여 고요함(寂)이라 한다.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는 것을 무기(無記)라 하고,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있는 것을 이름 하여 신령(靈)하다 하니, 이러히 고요하면서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 무너짐도 잡되지도 않아서 이와 같이 공을 들이면 며칠 못가 이루어지리라.”

1시간 30분가량 이어진 설법과 문답을 통해 혜국 스님은 때론 자상하게, 때론 역설적으로, 때론 고함을 지르며 재가자들의 마음밭(心地)에 법의 비가 스며들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법문의 요지와 문답 내용을 요약한다.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가 <원오심요(圓悟心要)>에서 윤상인(倫上人)에게 주는 편지 글을 들어 법문을 시작하겠다.

“어느 것이라도 마음을 두기만 하며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생긴다.”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 후학을 살리는 말씀이다. 부처님이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이 파안대소한 염화미소(拈華微笑) 이후, 조사선이 전해져 온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부처님께서 우리가 당신과 똑같은 부처임을 보여준 게 가장 큰 은혜인 것이다. 꽃 한 송이 든 것은 수미산이 좁쌀 속에 들어가는 도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리,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자리를 바로 일러 준 것이다. 부처님께서 지구라는 별에 참선법을 남겨주신 것은 인간 최상의 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알음알이와 분별심을 내어 그 도리를 알려고 하면 하늘과 땅처럼 멀어질 뿐이다.

가섭과 같은 조사스님들은 말 한 마디에 곧바로 깨달았건만 지금 수행자들은 법문을 듣고도 바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지금 관문을 뚫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마음에 집착이 많기 때문이다. 만약 벗어나서 무심한 경지에 이르기만 하면 모든 망령된 생각과 더럽혀진 습기가 다 없어지고 지견과 알음알이의 장애가 모두 사라질 것인데,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남전(南泉) 스님은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고 하였다. 그러나 생각을 일으켜 평상(平常)하기를 기다린다면 벌써 어긋나버린다.”


요즘 사람들은 수미산이 좁쌀 속에 들어가는 도리를 말하면 이해가 안 간다며, 구름 잡는 소리라고만 한다. 그러나 조사스님들이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밝혀 온 것은 크나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바로 허공성을 체득하지 못하는 건 마음과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참선에서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저 허공성을 제대로 못 보면 시ㆍ공간이 끊어진 자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세상 만물을 먹여 살리는 이치를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생각이 움직인 것을 마음이라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 찻그릇처럼 비워진 무심이 본래 마음이다. 빈 그릇, 허공성에는 뭐든지 다 들어갈 수 있다. 번뇌ㆍ망상을 비워버리면 텅빈 그릇, 무심경계가 된다. 무심경지에 이르면 망념과 습기가 없어진다. 다른 종교는 아담과 이브가 따먹은 과일로 인해 인류에게는 원죄(原罪)가 있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무심경지에 이르면 백천만억 겁(劫)에 지은 업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본다. 지옥도, 극락도, 인간세상도 내가 만든다. 내가 지은 업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도 화두참선을 해야 한다.

내가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동안 장좌불와를 했다고 소문이 났지만, 정작 제대로 공부 맛을 본 것은 2개월 남짓이었다. 나머지 기간은 실체 없는 번뇌ㆍ망상과 처절한 싸움을 했다. 번뇌ㆍ망상이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무수한 과거생 동안 지은 허깨비 같은 업의 소산임을 알고는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참다운 무심에 들 것인가. 한 방울 물이 바다에 떨어지면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 낙동강, 섬진강, 백마강이 바다로 들어가면 이름조차 없어진다. 허공에서는 모든 게 하나이다. 진실하지 못하고 하심하지 못하는 아상(我相)을 가진 내가 참나로 돌아갈 때가 화두 드는 순간이다. 번뇌ㆍ망상은 내가 걸어온 길이다. 너다 나다, 있다 없다, 옳다 그르다, 예쁘다 밉다 하는 관념으로 지은 것이 번뇌ㆍ망상이다. 평상심이든 깨달음이든, 그 무엇이든 생각을 일으켜 구하거나 바라면 어긋나고 만다. 한 생각 일으킨 망상을 지우려면 모르는 곳,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한 것이 무심에서 나온, 실상을 곧바로 일러준 말이다. 이것을 못 알아먹으니까 “왜, 뜰 앞의 잣나무라 했을까?” 하고 화두를 들게 되는 것이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몰라서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화두를 드는 것이다.



문1 : 근기와 수준에 따라 좋고 나쁜 화두가 있습니까?
: 좋고 나쁜 화두란 따로 없다. 각자의 성질과 업에 따라 적합한 화두가 있을 뿐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무자(無字)’ 화두를,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를 들 것이다. 이 몸뚱이가 참나가 아님을 알고 참나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발심이 될 때 선지식을 찾아가면, 근기와 인연에 맞는 화두를 간택 받을 것이다.

문2 : 1년 전부터 ‘만법귀일 일귀하처’ 화두를 들었는데, 잘 안됩니다. 어떻게 화두를 챙겨야 할까요?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면 의문이 길어져 잘 안 되는 수가 있다. 만공 스님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가 무엇인가?’ 이렇게 화두를 들라고 한 적이 있다.

문3 : 바람이 잠잠해지면 파도가 쉬게 된다 하셨는데, 어떻게 바람을 잠잠하게 합니까?
: 바람은 욕망이자 업이다. 내 몸속에서 바라는 바를 화두로 바꿔야 한다. 파도는 망상의 세계요, 바다는 참 마음의 세계다. 욕망이 멎어야 파도가 쉬게 된다. 그러나 망상인 파도가 그대로 바다이자 보리이다. 그 놈이 바로 부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문4 : 모든 화두의 목표는 같은가요?
: 1700공안은 같다 다르다, 옳다 그르다를 넘어서 직접 깨달아서 맛을 봐야 안다. 화두의 본래 장치는 마찬가지이지만, 같다 다르다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문5 : 번뇌ㆍ망상을 망아지에 비유하고, 화두를 말뚝에 비유하는데 옳습니까?
: 이치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이 말 또한 30 방망이 감이다.
김천=김성우 객원기자 | buddhapia5@daum.net
2007-11-20 오후 1:17:00
 
한마디
tathata “내가 태백산 도솔암에서 2년7개월 동안 장좌불와를 했다고 소문이 났지만, 정작 제대로 공부 맛을 본 것은 2개월 남짓이었다.” 혜국스님께서는 공부맛을 본 것이 2개월 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혀가 길어서 2개월이나 걸리는가요? 바른 공부맛은 찰나에 있으며 그 찰나에 맛본 경험이 모든 것을 떨쳐버립니다. 그런데 2년 7개월 동안의 토굴 생활에 2개월이나 맛보는데 걸렸다니! 저런 공부 경험은 신심이 지극할 때, 식정이 맑아지고 식정이 맑아진즉 법리에 약간 눈을 뜬 경계인데 그런 연후에 옛사람의 언구를 대하면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고, 애써 의리로 가까이 하려는 습이 나오는데 어찌 그런 것을 공부 맛이라 하리오. 그러나 참으로 공부맛은 시간에 있지 않으며 한 번 맛을 보면 모든 좋은 경계를 놓아버리게 됩니다.
(2007-11-21 오전 9: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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