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종교는 ‘기불릭’이라는 말이 있다. 기독교와 불교ㆍ가톨릭의 합성어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종교 신념과 관계없이 유권자들의 성향에 따라 종교적 정체성을 바꾼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 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행보는 종교계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문제의 발단은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가 10월 20일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서 열린 ‘도선사 108 산사순례 기도회’에 참석해,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으로부터 ‘연화심’이라는 법명을 받은 것이다. 한나라당측은 즉각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부인 김윤옥 여사가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으로부터 ‘연화심(蓮華心)’이라는 불명(佛名)을 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은 지난 20일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서 열린 제14차 순례기도회에 참가한 김윤옥 여사에게 ‘비록 이 후보 부부의 종교는 다르지만, 자비와 관용을 제일 덕목으로 삼는 불교의 입장에서 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 곳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이 있는 사자산 연화봉에서 김 여사가 소중한 인연을 맺었으니, 연화심이라는 불명을 주고자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10월 29일 기독교 단체가 주최한 목회자세미나에 참석해 이를 전면 부인했다. “절에서 하는 법회에 참석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고, 스님이 부인에게 얼굴이 연꽃 같다고 말한 것이 와전이 돼 그렇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개신교 매체인 ‘뉴스앤조이’의 보도에 따르면, 이 후보는 이날 세미나에서 “부인이 법회에 참석해 법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후보는 종교 다원주의자가 아니냐”는 한 목사의 질문에 “우리 부인은 저보다 더 앞서가는 기도꾼이다. 그런 점은 걱정 말아 달라”고 말했다.
김윤옥씨가 도선사 108산사순례 기도회에 참석한 이날 법흥사에서는 불사 10주년을 기념하는 평화기원법회가 함께 봉행됐다. 김씨 역시 법흥사 접견실에서 월정사 회주 현해 스님 등 스님들에게 삼배를 올렸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절에서 하는 법회가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했고, 법명을 받은 사실 조차도 부인한 것이다.
이 후보 부인이 법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두고, 그가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이해한 불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후보는 이미 ‘서울시 봉헌’ ‘장로 대통령’ 등의 발언으로 종교편향성을 드러내 불자들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이 후보에게 불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개종’이 아니라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