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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부처님이 성불하면? 김치부처님!”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 ‘禪으로 만나는 사찰음식’
외국인 사찰 김치 만들기 체험 현장
외국인 참가자들이 사찰음식 만들기 체험에 앞서 지철 스님의 지도로 참선을 배우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봉선사에서 비빔밥을 먹어봤어요. 조금 매웠지만 너무 맛있었어요. 오늘 사찰음식을 만들어볼 수 있다고 해서 참석하게 됐어요.”(미국인 캐리, 삼성전자 근무)

사찰음식이 대중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보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사찰음식의 대중화를 위해 발족한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회장 선재)는 10월 20일 서울 봉은사(주지 명진) 보우당에서 외국인들을 위한 ‘禪으로 만나는 사찰음식’ 체험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국내에 거주하거나 관광을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40여 명이 참석했다.

선재 스님의 시범에 이어 참가자들이 배추속을 버무리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이날 참가자들이 만들어 볼 음식은 ‘홍시김치’. 파, 마늘, 젓갈, 설탕 등을 일체 쓰지 않고 만드는 사찰 김치에 달콤한 맛을 내기 위해 홍시를 으깨 양념으로 버무려 넣는 것이다. 체험에 앞서 선재 스님이 사찰음식에 대한 설명을 풀어놓았다. 이날 통역을 지철 스님(낙산사 교무국장)이 맡았다.

“사찰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동물성 식품과 조미료ㆍ설탕 등의 화학조미료,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사찰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수행을 도와주는 방편으로서의 음식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명체에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씨앗, 즉 불성(佛性)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 있는 배추는 ‘배추부처님’인 셈이죠. 이 배추부처님을 정성을 다해 맛있는 김치로 만드는 것이 곧 배추를 성불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배추부처님(cabbage buddha)’라는 표현에 참가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한낱 야채에 불과한 배추를 ‘부처’로 여긴다는 발상이 신기했는지 참가자들은 앞에 놓인 소금 절인 배추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이어 스님은 김치가 익어가는 과정을 수행에 비유해 설명했다.

“김치가 땅 속 항아리에서 숙성되어 맛있는 김치로 익어가는 것은, 스님들이 수행을 통해 부처님을 닮아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제 홍시와 무, 고춧가루, 간장 등으로 버무린 양념으로 김치를 담가보겠습니다.”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 회원 스님들이 직접 만든 사찰음식을 소개하고 있다.사진=박재완 기자

선재 스님이 절인 배추에 양념을 쓱쓱 발라 나가는 모습을 시연했지만,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난감한 표정이 역력하다. 난생 처음 해보는 김장이 낯선 모양이다. 배추 양념장을 절인 배추의 밑에서부터 발라야 하는지 위에서부터 발라야 하는지, 양념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궁금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비닐장갑을 끼고 절인 배추를 앞에 둔 프란체스카(독일)는 선재 스님의 도움으로 천천히 양념장으로 배추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생활한지 두 달 됐다는 프란체스카씨는 “김치가 세계 건강식품에 선정될 만큼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알고 있다”며 “처음엔 너무 매웠지만 요즘은 곧잘 먹는다”고 말한다. 베트남에서 온 관광객 안은 “베트남에서 본 한국 드라마에 김치 담그는 모습을 본 적 있다”며 “직접 만들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온 산디야는 “인도에도 짜뜨니라는 양념에 버무린 피클 같은 것이 있는데, 김치와 비슷하다”고 한다.

김치 버무리기가 끝나고, 각자 만든 김치는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통에 담았다. “차 안에서 냄새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지철 스님의 충고에 모두들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이제 사찰음식을 직접 맛볼 차례. 전통사찰음식문화보존회원 스님들이 정성스레 만든 사찰음식이 참가자들 앞에 펼쳐졌다. 연잎밥과 두부김밥, 더덕잣즙무침, 우엉잡채, 버섯백김치, 단호박설기, 오색경단화채…. 난생 처음 보는 음식에 참가자들이 즐거운 탄성을 질렀다. 음식을 담아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평소처럼 먹을 수는 없다. 이번엔 지장 스님(초의차명상원장)의 ‘음식명상’ 순서다.

사찰음식을 먹기에 앞서 지장 스님(초의차명상원장)의 지도로 음식 명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박재완 기자

“여러분 앞에는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음식이 놓여 있습니다. 이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여러 재료들과 음식을 만든 사람, 물과 불, 그릇 등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의 재료가 있으려면 산이나 바다, 농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와 태양계, 우주가 존재해야 합니다.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이 있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 모든 자연 만물이 또한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요리는 온 우주를 대표합니다.”

음식에 대한 명상에 이어 포크로 음식을 집어 먹는 흉내를 내 본다. 팔과 턱, 혀의 움직임을 느껴본다. 배가 고픈지 부른지 어떤 느낌인지도 살펴본다. 이제 실제 음식을 먹으며 그 느낌을 관찰해본다. 천천히 밥을 떠서 입에 넣고 30번 이상 씹으며 음식의 맛과 향, 느낌을 천천히 음미하며 식사를 한다. 이제껏 알고 있던 ‘음식의 맛’을 온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다.

음식명상을 마치고 난 후 혜성 스님(한국명선차인회장)이 마련한 찻자리에 둘러 앉아 연잎차와 녹차를 마시며 오늘 체험에 대한 느낌을 서로 이야기했다. 미국인 샘은 “김치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몰랐다”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오늘 체험한 음식명상의 기억을 되살리게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대중화되었지만, 그 속에 담긴 사찰음식의 정신을 알려나가는데 주력할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체험 행사도 마련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글=여수령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10-25 오후 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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