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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고우 스님이 주석하고 계신다. 금봉리 마을을 지나니 눈에 보이지도 않던 금봉암이 우뚝 나타난다. 들어올 때는 분명 숨어 있는 위치인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산세는 앞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제일 먼저 ‘금이’라는 개가 달려와 반긴다. 덩치는 큰 녀석이 짖지도 않고 혀를 내밀며 반기는 품새가 암주의 인심을 가늠케 한다. ‘금이’의 과분한 환영을 받으며 ‘인심이 사나운 동네는 개 짖는 소리도 높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역설적으로 떠오른다.
공간은 그곳에 사는 주인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 같은 것. 금봉암은 고우 스님의 마음자리처럼 푸근하고 담박하다. 용도에 따라 편안하게 요사와 인법당이 지어져 있다. 이제 막 기초 공사를 끝낸 법당 불사가 도량 한가운데서 진행 중이다. 불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우 스님은 인부들과 실랑이도 마다않으며 후대에 길이 전해질 수행도량을 건립하고 있다.
고우 스님이 진행 중인 불사는 이 뿐 아니다. 참선을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하고 불교와 생활이 괴리되지 않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불사, 출판 불사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제 축서사에서 스님들이 모여 수행지침서 <간화선> 수정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밤 11시까지 얘기를 나눴어요. 오늘은 모두들 금봉암에 와서 점심공양을 하고 이제 막 돌아갔습니다.” 일흔을 넘긴 고우 스님의 체력은 놀랍다. 올 초, 6박 7일 동안 ‘중국 선의 원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순례단을 이끌 당시 동행했던 기자는 스님의 체력을 여실히 보았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졌던 그 일정을 지친 기색한번 없이 이끌었던 스님이다.
“그래도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지. 나이에 비해 조금 건강하다 뿐이지 오랫동안 써온 몸이 탈이 안 날수가 없지. 다만 그런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면서 사는 것이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힘은 긍정의 힘과 통한다. 그러나 그 수용과 긍정의 힘은 쉬이 터득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수용과 긍정대신, 더 많은 것을 구한다. 그런데도 행복하다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자유인이 되는 불교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자유인이 된 사람은 드물고 또 사는 동안 자유의 맛이라도 보며 가는 사람조차 흔치 않는 실정이다. 이쯤 되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번쯤 되짚어보아야 한다.
“불교, 즉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의 잘못된 시각을 부처님의 바른 시각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의 시각과 중생의 시각은 분명히 다릅니다. 부처님이 본 것은 전체를 바로 본 것이고,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중에 일부만 보고 전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보는 시각대로 시각을 바꿔서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이 본 시각을 체험 하면 자유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수행해 가서 그 자리로 환원해 가는 것을 수행이라고 합니다.”
복잡했던 머릿속에 뻥하고 고속도로가 뚫리는 느낌이다. 많기도 한 불교수행법, 기도, 이론들이 한 줄로 꿰어진다. 부처님의 시각으로 환원하는 길이 열린다. 그럼 과연 부처님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시각이 바로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그 다음에 도일체고액(度 一切苦厄)이고요. ‘오온이 공한 줄 알면 일체 고통으로부터 벗어난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오온개공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리인데 그것이 우리 존재의 형상과 공존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형상에만 집착해 나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기심, 욕망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형상과 더불어 존재의 근본 원리인 공을 같이 봐서 나라는 것에서 자유로우니까,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지고 욕망에서도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해인사 팔만장경을 압축하고 압축해서 마지막 한 글자가 남는다면 그게 공입니다. 공은 그 정도로 의미가 깊습니다. 공의 의미와 가치를 얘기할 때, 부처님께서는 갠지즈강의 모래 수만큼의 갠지즈강의 모래수로 천백만겁을 보시하는 공덕보다 공을 이해하는 공덕이 크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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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이해하는 것은 불교를 이해하는 첫발이기도 하고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부처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접근을 하지, 이것을 모르면 백날 천날 절에 다녀봤자 소용이 없어요. 고통을 끊고자 한다면 내 내면의 세게, 즉 공을 개발해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고통의 원인, 현상이 천 가지 만 가지가 되더라도 치유법은 공뿐입니다. 공은 만병통치약이요, 도깨비 방망이입니다. 좋은 게 나타나든 나쁜 게 나타나든 그것이 실체가 없고 공인 줄 알고, 그것을 느끼는 나도 실체가 없고 공인 줄 알면 고통을 벗어나게 됩니다.”
한걸음, 또 한걸음, 스님의 법문은 동화 ‘헨델과 그래텔’에 나오는 빵조각처럼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잡이다. 길을 잃고 위험에 처했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표식은 얼마나 중요하고도 반가운 소식인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결코 건너뛸 수 없는 것, 그게 공이다.
“혹자는 공을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공을 설명하기 이전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단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연기(緣起)라고 하는데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고 실체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2600년 전, 부처님은 이것을 주장했고, 또 당신이 직접 그것을 체험해서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과학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과학자 파인만은 자기 몸뚱이를 원자 덩어리라고 했어요. 단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부처님께서도 연기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사람은 여래를 본다고 했습니다. 듣고 보는 우리의 존재가 연기로 돼 있단 말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단일로 존재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또 우리 몸은 60조의 세포 덩어리고 수 억 만 개의 원자 덩어리입니다. 그러니 어느 원자를 갖고 독립된 자기라고 할 것이냐는 말입니다.”
스님은 원자, 중성자, 퀘크, 힉스 등 현대물리학의 용어까지 끌어와 공과 연기를 설명한다. ‘공부에서 짝퉁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까지 현대인들이 쓰는 쉽고 친숙한 용어도 등장한다. 가급적 어려운 말을 피하고 일반인에게 불교를 이해시키겠다는 스님의 뜻이다. 그리고 스님은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서의 불교 역할을 강조한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과학은 무기도 될 수 있고 편리와 이익을 줄 수도 있는 있어요. 과학이 몸뚱이라면 올바른 시각을 가진 머리가 필요해요. 불교가 과학의 머리가 돼서 인류모두에게 풍요와 평화를 주는 과학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지금 같은 시대에 불교를 믿는 사람이 신통방통하다 싶으면서도 이기심이 세상을 혼란시키고 인류가 절망에 빠져있는 지금이 오히려 절실히 불교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는 생각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이기심에서 벗어나 전체를 보는 시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개개인이 정신을 차리고 부처님의 시각을 회복해야 하고 그 시각으로 다른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불교의 생활화이고 사회화입니다. 바꿔 말하면 생활화는 상구보리요, 사회화는 하화중생을 말합니다. 불교는 없는 것을 바깥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서 쓰는 것이라 쉽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우리가 성의를 기울이지 않고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솔직히 돈벌이하는 것만큼 노력 해봐요! 당장 도통했지. 하하하! 정견을 갖추려는 노력을 꼭 해야 합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삿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선지식을 만나서 깨닫지 못하면 반야로써 관조하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반야는 깨닫지 않은 반야예요. 반야 즉, 존재 원리를 이해해가지고 관조하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선지식을 만나도 못 깨닫고 부처님 말씀을 잘 이해한 사람은 선지식이 없어도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즉 그만큼 정견이 중요합니다.”
정견을 갖춘 후 앞으로 나아갈 때, 처처에서 선지식을 만날 것이요, 정견을 갖추지 못하면 눈 뜬 장님처럼 부처를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따끔한 지적이다. 정견이라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고 나니, 금봉암을 나서는 밤길이 어둡지 않았다.
고우 스님은 무한경쟁의 급물살에 휩쓸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면 너와 내가 더불어 발전하는 무한향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193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25세에 청암사 수도암에서 법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스님이 묵묵히 걸어온 길이 무한향상을 향한 한길이었다. 봉암사, 축서사, 김용사, 용주사 등의 제방선원에서 힘을 얻고 봉화 각화사 태백선원장을 역임한 이후에는 선의 생활화, 사회화를 위해 세상 속으로 눈길을 돌렸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이며 육조단경 및 각종 경전 강의와 법문으로 불자들의 바른 안목을 열어주기 위한 법회에 촌음을 아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