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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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불교] “적극적 개입 경계ㆍ공정 선거 힘써야”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이 말하는
“불교계, 12월 대선 어떻게 치를 것인가”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 원장
2월에 치러질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교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특히 서울시봉헌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라 불교계의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관심을 갖고 있지만 불자 대통령 또는 불교에 우호적인 대통령의 선출이라든가 이에 따른 불교계의 위상향상을 주장하는 정도이다.

다른 종교도 그렇겠지만 한 동안 불교는 선거에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 정치권에서는 ‘조계종 총무원만 잡으면 불교계는 끝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후보들이 불교계에 약속한 정책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불교계 스스로가 자초한 업보다. 불교계가 불국토 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특정 정권, 특정 개인 정치지도자에게 매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인들로 하여금 불교를 쉽게 보고 불교정책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든 것이다. 정치인을 탓하기에 앞서 불교계의 책임이 크다.

불교에서는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수행자가 속세에서 벌어지는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가 계속 산중에만 머무르면서 사회 정치 문제에 등을 돌릴 수만은 없다. 불교의 기본 교리가 고통 속의 중생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앓으므로 나도 앓는다”는 유마경 구절에서 불교의 정치사상이 잘 드러난다. <법구비유경>에서도 “여래가 세상에 온 것은 가난하고 소외되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약사여래의 본원도 남에게 매여 자유롭지 못하거나 감옥에 갇혀 고통 받는 이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뜻이다.

불교의 기본 가르침 가운데 하나인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에서도 불교의 정치관을 찾을 수 있다. ‘상구보리’를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를 떠나야 한다. 그러나 ‘하화중생’을 위해서는 세속적 사회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또 이런 가르침도 있다. “보살이 보시 바라밀을 닦고 있을 때 기아와 추위에 시달리고 의식에 궁핍한 중생을 보면 바로 다음과 같은 서원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그곳에 따르고 그 때에 따르는 방법으로 보시바라밀을 닦아야겠다. 그래서 내가 이윽고 무상(無上)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는 내 불국의 중생에게는 절대로 이와 같은 궁핍이 있게 하지 않겠다. 의식이나 생활용품은 충족하여 모자람이 없고, 마치 천상계와 같이 만들어야겠다라고.” “가정에 상류 중류 하류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보면 나의 불국에는 이와 같은 우열이 없게 하겠다는 원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불교는 오랜 호국불교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호국불교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불교와 정치권력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호국불교란 국가 발전을 불교 발전으로 보는 현실불국토 완성의 의지가 나타난 호국사상이다. 호국불교가 결코 왕권에의 굴복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제시대 이후 일부 권승이 권력과 손을 잡으면서 불교가 타락하게 되었다. ‘닭 벼슬보다 못한 것이 중 벼슬’이라는 것이 불가의 오랜 가르침이었다. 권승의 무리가 이 가르침을 잊어버리고 권력에 빌붙어 종권을 제멋대로 휘둘러왔다. 종권을 둘러싼 종단 내부의 다툼이 정치권력의 부도덕한 음모와 맞물려 불교를 타락시킨 것이다.

총독부는 우리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사찰령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친일 주지를 임명했다. 권력에 예속된 불교는 해방 뒤에도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집권과정에서 친일파를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친일 승려들이 득세함으로써 왜색불교 친일불교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신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보살의 화현’이라고 추켜 주는 작태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불교를 정화시킨 공은 평가해 주어야 한다. 불교정화를 통해 비구의 전통을 회복하고 승려들의 타락과 부패를 척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화방식이 타율적이었고, 또 정치적으로 이용된 측면도 있다. 불교정화가 시작된 시기는 1952년 7월 1일 피난수도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일으켜 발췌개헌안을 억지로 통과시킨 직후였다.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불교정화를 시작한 측면이 있다. 불교정화가 자율적이 아니었고 권력에 의지함으로써 권불유착의 소지가 마련되고 고질적인 종단 내분이 시작되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구는 1995년 현재 2천2백60만 명 정도이다. 전체 인구의 50.7%에 해당된다. 불교신자가 1천32만 명(23.2%)으로 가장 많고, 개신교 876만 명(19.7%)-천주교 2백95만 명(6.6%)의 순이다. 2003년의 통계청 조사는 구체적인 인구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종교인구 비율은 1995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구 비율로 보면 대통령 선거에서 불교계의 영향력이 가장 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는 그 비중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공략하기 쉬운 표밭 정도로만 인식되었을 뿐이다. 불교계가 선거에 이용되면서 불교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위상이 흔들렸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92년 14대 대선 때의 신성한 사찰이 검은 돈 세탁장소로 이용당했던 상무대 80억원 비리사건이다.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과 조기현 전국신도회장이 개입한 이 사건은 불교계가 권력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나를 증명해주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부끄러운 일은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때도 있었다. 불교 내부의 갈등이었던 이른바 봉은사 사태가 바로 그것이다. 봉은사 사태의 본질은 권승 무리들이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빌붙어 벌인 충성경쟁이다. 권승들은 사찰 법당에다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기도’라는 현수막을 공개적으로 내걸고 법회를 열었다. 이에 대해 반발하자 권승들이 공권력을 동원해 탄압했던 것이다.
14대 대선에서 불교계 지지는 여당의 김영삼 후보에게 쏠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자 후보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지역성이나 기존의 친여적 속성을 뛰어넘지 못했고, 또 당시 권력과 밀착해 있던 서의현 총무원장의 역할이 컸다. 서의현 총무원장은 이전에도 “3당합당은 구국의 결단이며 김영삼 대표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소생시킨 지도자”라느니 “불교중흥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원래 불교계는 반(反) 김영삼 정서가 강했다. 개신교 장로인 김영삼 후보가 지나친 기독교적 편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영삼 후보는 13대 대선 때 “청와대에 찬송가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 “주일날 유세를 하지 않겠다”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래서 13대 대선에서 불교계의 김영삼 후보 지지율이 노태우 후보의 절반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반김영삼 정서가 14대 대선 때 친김영삼으로 바뀐 것은 권뷸유착때문이었다. 또 당시 김영삼 후보의 사조직인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는 민족불교중흥회라는 선거 조직을 만들어 전국 사찰에 수백만원에서 수십만원에 이르는 시주금을 내놓았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김영삼 후보 측의 불교계 표 공략이 주로 돈 잔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관심을 기울여야할 부분은 불자 대통령의 탄생에 있지 않다. 불자 대통령의 탄생은 좋은 일이다. 불자 대통령을 통해 불교가 확산될 수 있다면 그것도 굳이 막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불자 후보라고 무조건 지지하거나 불교관련 공약이 그럴듯하다고 지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섣불리 불자 대통령이나 불교확산을 꾀하는 것은 자칫 불교를 통속화시킬 위험성이 있다. 불자의 당선이 불교발전에 꼭 도움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불자 대통령도 있었고 불자 정치인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이 불교의 개혁과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봉은사 사태 때 권승 무리들이 내세운 명분이 노태우 후보가 불교신자라는 것이었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불교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없었다는 것이 교계의 평가이다.

불교가 종단 차원에서 특정정당이나 특정후보를 지지하면 안 된다. 자칫 권력의 불교 간섭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는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중립적인 입장에서 바른 대통령 만들기 운동이나 부정선거감시운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 불자들은 불자 후보라든가, 불교 공약을 따져보기 전에 대통령 선거가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지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남동우 기자 | dwnam@buddhapia.com
2007-10-17 오전 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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