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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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 佛子의 장례를 통해 오늘을 보다.
2020년 8월, 글로벌 기업의 임원인 조현주씨(가명, 35세)는 싱가폴에서 근무 중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이른 아침 어머니가 보내준 영상메일로 아버지가 운명하셨다는 부음(訃音)이 들려왔다. 슬픔을 느끼기도 잠시, 황급히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그녀는 랩탑을 통해 퓨너럴 컨설턴트로부터 생전에 아버지가 정한 장례일정과 방법 등을 제안 받는다. 어머니와 통화를 통해 몇 가지 사항을 검토 후 확정하여 컨설턴트에게 주지시킬 점들을 적어 회신한 후 애써 잠을 청했다. 한국에 도착한 그녀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장례전문 도량인 지장사(가칭)에 모셔진 아버지의 빈소로 향했고, 담당 퓨너럴 컨설턴트인 이재용씨(가명, 35세)가 그녀를 맞이했다. 그는 통합사회보험(과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이 합쳐진 것)에서 지정한 아버지의 담당자로 그는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산하 장의국(가칭) 소속 종무원이다.

국가에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연령별, 개인별로 맞춤형 라이프 컨설팅을 시행중이다. 이를테면 영ㆍ유아기에는 육아, 유년기에는 교육, 청ㆍ장년기에는 직업, 노년에는 연금과 의료 서비스 등을 중점으로 제공한다는 것인데 특이한 점은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돌아가는 순서는 없다’하여 전 연령대에 걸쳐 죽음에 대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본인의 운명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장기제공 여부, 장례절차, 장례방법 등을 본인이 선택해 둘 수 있는데 특히 개인별 종교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며 종교별로 담당 컨설턴트가 지정된다. 이 모든 사항은 개인별 ID카드(주민등록증)에 기록되어 있어 설사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생전의 유지에 따라 장례절차는 차질 없이 진행된다.

이러한 선진국형 복지서비스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교계이다. 신도 교육을 통해 사회전반에 걸쳐 죽음의 이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음은 물론이고 종교계의 인적ㆍ물적 지원과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불교의 경우를 보면 과거 사찰별로 신도회에서 조직ㆍ운영하던 지장회로 대표되던 상조회가 그 효시이다. 상조회 운영을 통해 장례컨설팅에 대한 필요성을 자각함과 동시에 경험을 축적한 불교계는 범 종단 차원에서 이를 확대하기로 하여 시범적으로 전문장례식장 등과 제휴하여 불자를 위한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문업자와의 잦은 마찰로 인해 차라리 불자만을 위한 장례전문 도량을 건립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렇게 일궈진 도량 중의 하나가 그녀의 아버지가 모셔진 지장사(가칭)이다. 지장사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생 감소로 인해 폐교한 학교를 장례시설용 사찰로 리모델링한 경우이며 지방에도 이러한 장례전문 도량이 교구 본사별로 한 곳 이상씩은 운영되고 있으며, 폐교 운동장은 녹지로 조성되어 추모공원(도심 수목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도들로 구성된 상조회 회원들의 도움으로 3일여의 기도를 마치고 발인(發靷)하는 날 그녀는 유언에 따라 금강산의 조용한 계곡으로 아버지를 모셨다. 법주 스님의 집전으로 노제를 마치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례컨설턴트가 섭외해 놓은 이동식 화장차량이 아버지의 다비를 위한 장엄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동식 화장차량은 과거 지역이기주의 등으로 화장장 건립이 어렵게 되자 무취, 무연의 친환경 화장설비를 차량에 탑재해 이동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화장장과는 달리 초기과정에서 민원이 해소되었음은 물론, 1대당 1억원 미만으로 제작이 가능하여 경제성이 뛰어나다. 또한 사찰,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에서는 물론이고 임야, 강변, 해변 등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화장을 할 수 있어 원스톱 장례를 가능하게 하였다.

차량 규모에 따라 개장(開葬)시 활용이나 반려동물의 사체처리에도 활용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이다. 얼마 전 어느 로맨틱한 노부부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이라며 화장장소를 낙산해수욕장의 백사장으로 택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동식 화장차량이 보급되기 전 사찰에서는 일반 신도들의 화장을 시도하기도 했었다. 이는 2004년 공포된 ‘장사등에관한법률(이후 장사법)’에 화장장 이외의 장소에서 화장을 금지하고 있으나 사찰에서의 다비를 예외로 한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하여 일부 사찰에서 실험적으로 실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타종교계의 반발과 이들의 로비에 넘어간 행정기관 그리고 장례전문 도량이 없던 당시에 수행환경 저해라는 교계 내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아미타불 독송과 함께 한 시진이 채 못되었을 무렵, 화장차량의 안치실 문이 열리며 탑다라니가 곱게 그려진 유골함이 나왔다. 법주 스님의 독경 소리를 따라 그녀는 유골함을 모시고 계곡 인근의 숲으로 향했다. 그녀가 향하는 숲은 전국의 사찰 소유림 중 특별히 수목장을 위해 개방된 지역으로 불자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수목장림은 무료인 미타림(가칭)과 유료인 지장림(가칭)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미타림은 산골형 수목장(自然葬)이 치러지는 지역이다. 화장 후 수습된 골분을 수목의 주위나 야산에 뿌려 미타림 전체가 하나의 추모림이요, 추모공원으로 대승적 천도공동체가 되는 곳이다. 특히 이곳은 테마별 산골이 가능한 곳으로 예를 들면 골분을 한 곳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숲 곳곳에 108개의 산골코스를 만들어 조금씩 나누어 산골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산골로 인한 산림오염 우려 등을 불식시켰고 유족들에게는 미타림의 어느 한 곳이 아니라 미타림 전체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는 것이 이 곳 관리인의 설명이다.

지장림은 봉안형 수목장(樹木葬)이 치러지는 지역이다. 골분을 자연분해가 가능한 친환경소재의 유골함에 담아 나무 밑이나 주위에 묻는다. 묘지를 나무로 대신하여 고인의 유택으로 삼는 이런 방법은 2004년 9월 임학자인 김장수 고려대 교수의 장례를 통해 세간에 소개되었다. 지장림의 추모목들은 나무마다 부착된 GPS칩에 의해 묘지처럼 관리된다.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아 관리되어 ‘아무개의 나무’라 표식을 하지 않아도 위치를 잊을 염려가 없지만 이곳에 고인을 모신 자손들은 표식을 남기기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장림에는 봉안기한이 정해져 있어 20년이 되면 표식 등이 모두 철거되고 미타림으로 전환 운영된다. 또 미타림은 20년이 되면 지장림으로 전환 운영된다. 이렇게 매 20년마다 산골형과 봉안형을 전환 운영하도록 하여 일정규모 이상의 숲이 묘지화 되는 것을 막고 있다.

사실 지장림은 사찰에서 운영하는 탓에 실비만을 받고 있지만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과거 납골당에서의 폐단이 그대로 수목장에 재현된 적이 있었다. 사유림을 전용한 불법 수목장 운영과 분양 사기, 수목장 안치 후 오래지 않아 임야를 매도하여 순식간에 숲 자체가 사라지는 황당한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넓은 평수로 자손의 권세와 재력을 자랑하던 호화분묘처럼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아름드리 추모목이 문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게다가 수목장에 따른 부대ㆍ편의시설 설치로 인한 무분별한 산림훼손까지. 때문에 당시 사회 일각에서는 돌로 된 납골당이 나무로 바뀐 것뿐이고 오히려 그 규모가 확대된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미타림에 도착하자 그녀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열고 낮은 발걸음으로 108곳을 돌며 조금씩 흩뿌린다. 법주 스님의 환귀본토 진언만이 여운을 남긴다. "옴 바자나 사다모, 옴 바자나 사다모, 옴 바자나 사다모…."

위 이야기는 미래 우리 사회의 장례문화에 대해 불교와 수목장을 중심으로 그린 픽션이다.

2007년 5월 수목장의 법제화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과 시행령 등이 공포되었지만 위의 픽션과 같은 결과를 거두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개정안에서는 은해사, 전등사, 보광사 등 사찰에서 운영하던 기존 수목장 시설이 새로이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 무허가 불법시설물이 되고 만다. 무엇보다 문화재보호구역 내의 수목장을 금하고 있어 현재처럼 산중사찰의 숲에 말뚝만 박아 영업할 생각이라면 불교계의 수목장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불교계는 지금까지 장묘사업에 포교에의 치밀한 전략이나 관련 인프라에 대한 투철한 고민 없이 사찰 재정확충의 차원에서 근시안적으로만 접근해 왔다. 이번 개정안을 사찰장묘사업의 마장(魔障)이라며 볼멘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시도로부터 삼보정재(三寶淨財)를 보전하고 전략과 인프라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조동섭 기자 | cetana@buddhapia.com
2007-08-20 오후 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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