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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 어르신들의 꿈과 함께 익어갑니다”
대구햇빛시니어클럽의 햇빛촌떡방앗간
불교사회복지회(대표 지도) 산하 대구 햇빛시니어클럽이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문을 연 햇빛촌떡방. 송편 시루에서 김이 오른다. 사진=박재완 기자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9월 11일 새벽 5시 30분. 대구 남구 봉덕동에 위치한 햇빛촌떡방에 어르신들이 한둘씩 모여들었다.
“오늘은 일거리가 적어서 좀 늦게 나온 거예요. 어젠 새벽 3시에 문을 열었거든.”

5년째 방앗간을 지키고 있는 남이주(64)씨의 말이다. 이곳 햇빛촌떡방은 불교사회복지회(대표 지도) 산하 대구 햇빛시니어클럽이 어르신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02년 1월 문을 연 곳이다. 50세 이상 어르신들이 떡 제조 기술을 전수받고 직접 떡방을 운영하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햇빛촌떡방에서 송편 주문이 쏟아진다. 떡방 어르신들이 송편을 빚고 쪄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사진=박재완 기자

“송편이랑 쑥설기, 떡케이크 2개.”
아침 작업량을 확인한 배순이(59)씨가 익숙한 솜씨로 불린 찹쌀을 계량한다. 떡방의 일꾼 4명 중 오늘은 남이주씨와 배순이씨가 작업 당번이다. 남씨는 2001년 떡방 참여자 기술전수교육을 받은 후 5년째 떡방을 지키고 있는 ‘큰언니’고, 배씨는 이곳에서 1년째 일을 하고 있다. 둘은 별다른 대화 없이도 손발이 척척 맞는 콤비다.

분쇄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찹쌀가루를 쏟아낼 때 쯤, 어르신 5명이 찾아왔다. 떡 제조 기술을 배우는 ‘견습생’이다. 어르신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일손을 도우며 떡 만드는 과정을 익히고 있다. 남씨는 이들이 좀 더 일에 익숙해지면 떡케이크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팀으로 독립시키겠다는 생각이다.

마침내 시루에 불이 오르고 떡케이크에 쓸 바탕떡과 쑥설기가 먼저 앉혀졌다. 뽀얀 김이 오르는 떡방 한켠에 잘 익은 호박이 수십여 개 놓여 있다. 햇빛시니어클럽 할아버지들이 재배한 것이다.
“우리 떡방은 시니어클럽 할아버지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비롯해 100% 국산 재료만 사용합니다. 색소나 방부제도 쓰지 않으니 보관 기간을 짧지만 그만큼 건강음식이지요.”

햇빛촌떡방의 큰언니 남이주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배순이씨(맨 왼쪽)가 오전 작업을 마친 후 일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과 한 자리에 섰다. 사진=박재완 기자

지하철에서 1000원에 판매하는 떡을 며칠간 상온에 두어도 굳거나 쉬지 않는 건, 그만큼 첨가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햇빛촌떡방의 떡은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이틀을 넘지 않는다. 소매 대신 주문 제작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찰이나 단체, 가정에서 주문을 하고 대구 남구청에서는 직원들의 생일이면 떡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한다.

“여기서 일하던 어르신 중에는 떡 잘 만든다고 다른 가게에 스카우트 돼 가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 떡방을 내기도 하고, 건강이 안 좋아 못 나오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만드니까 모양은 그리 예쁘지 않지만 손맛은 어느 가게보다도 좋다고 자부합니다.”

송편 반죽을 앞에 두고 어르신들이 둘러앉았다. 여러 사람이 만들어내지만 모양이 하나같이 고르고 깔끔하다. 5개월째 일을 배우고 있는 채문자(67)씨는 “일하는 것은 뭐든지 다 즐겁고 기쁘다”고 한다.

“집에서 명절 때마다 해먹던 떡이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떡도 만들어 보고 예쁜 케이크도 배우니 즐겁지요. 음식을 정성으로 만들고 드시는 분이 만족해하는 것이 떡방에서 일하는 보람이지요.”
송편 600여 개가 순식간에 빚어지고, 찜통 위에 올려졌다. 30여 분 정도 지나고 뽀얀 김을 뿜어내며 송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이주씨가 따끈한 송편 하나를 기자의 입에 넣어준다. 모양은 투박하지만 식감이 쫄깃하고 달지 않아 입맛을 당긴다.

햇빛촌떡방이 자랑하는 떡 케이크.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떡이 올려진다. 사진=박재완 기자

“처음 떡방을 열었을 때에 비하면 주문량이 3분의 1 정도 밖에 안돼요. 자정에 나와서 하루 종일 떡을 만들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한 달에 60만원 받으며 일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몸에 좋은 떡을 즐겨 먹었으면 좋겠어요.”

다 만들어진 떡을 박스에 나눠 담고 나면 이제 배달은 김주식(60)씨가 맡는다. 떡방 운영을 관리하고 배달을 맡고 있다. 김씨는 “주문량은 줄었지만, 단골은 계속 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떡방의 가족 같은 분위기와,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보람을 갖고 일하는 어르신들이 있어 즐겁게 일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나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돈만 많이 벌겠다거나 요령을 피우려 하지 않고, 능력이 닿는 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떡을 만드는 분들이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이곳이 ‘햇빛촌’이죠.”

오전 작업이 끝나고, 김주식씨가 배달을 떠나고 나자 떡방이 조금 조용해졌다. 이들에게 ‘희망’이 무언지 물었다. 남이주씨가 무심한 듯 행주질을 하며 대답했다.

“이 나이에 무슨 다른 계획이 있겠어요. 그저 힘닿을 때까지 일하고, 후배들이 떡방을 잘 이끌어 나가주는 것이 바람이지요.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준 햇빛촌떡방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대구 남구 봉덕동에 위치한 햇빛촌떡방. 사진=박재완 기자

가족의 사랑을 확인해 줄 추석 송편이 시루에서 익어가듯, 어르신들의 꿈도 햇빛촌떡방에서 그렇게 영글어가고 있었다.(053)476-8090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09-17 오전 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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