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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달라도 우리는 가족”
다종교 가정의 현명한 명절나기
가족 구성원간의 종교가 다를 경우 명절 때 마다 차례 문제를 두고 갈등이 빚어진다. 사진은 열린선원이 개최한 명절 차례 특강. 현대불교 자료사진.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차례 준비에 몸살을 겪는 주부나 가족들로부터 입시와 취직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ㆍ취업준비생이라면 명절은 피하고 싶은 시간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차례를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도 빈번히 일어난다. 종교가 다른 가족구성원들 간에 차례나 제사를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란을 빚기도 하고, 종교 문제를 둘러싼 언쟁도 오가게 된다. 올 추석을 가정 내 ‘종교전쟁’ 대신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 58살의 K씨는 명절이 괴롭다.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맏며느리인 아내가 집안의 차례와 제사를 준비하게 되면서 이른바 ‘종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개신교인인 아내는 “제사는 우상숭배”라며 제사 지배기를 거부했고, 동생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제수 음식을 사서라도 제사를 지내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어느 한쪽 편을 들지 못하는 K씨의 입장 때문에 명절 때마다 동생들과 데면데면하게 돼 버렸다.

# 직장인 Y씨는 즐겁기만 하던 명절이 ‘일 년 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날’로 변해 버렸다. 대대로 불교를 믿던 집안에서 큰누나가 개신교로 개종을 하고 난 후 명절 때마다 친정에 찾아와 “왜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냐”며 잔소리를 했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며 일일이 붙잡고 개종을 권유하기 때문이다. Y씨 역시 독실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누나 때문에 가족들 간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마뜩치 않다.

# 대전에 사는 주부 L씨는 2년 전부터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됐다. 장남인 L씨의 남편은 차례를 지내야 한다고 고집했지만, 천주교도인 동생 두 명이 “차례를 지내는 대신 명절 음식을 먹으며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 후로 고집을 꺾었다. L씨의 남편은 결국 “차례를 지내지 않는 대신 기도나 찬송 등의 종교행위도 하지 말 것”을 동생들에게 당부했다.

지난 6월 열린 ‘동아시아 종교학의 현재와 미래’ 주제의 한국종교학회 학술대회에서 송현동 교수(건양대 예식산업학과)는 종교로 인한 가족 구성원의 갈등을 사례별로 제시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족 내 종교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제시했다. 특히 가족 구성원의 종교 갈등은 제사나 차례, 상ㆍ장례 등을 직접 주관하는 맏며느리나 장남이 개신교 등 제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게 될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성표 교수(울산대 사회학화)는 이날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 갈등 가능성과 잠재적 요인’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불교나 천주교, 원불교 및 무종교인들은 제사를 계승해야 할 문화적 유산이자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반면, 개신교인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교와 천주교 신자의 경우 자신의 종교에 대한 몰입도가 높을수록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으나, 개신교 신자들은 종교 몰입도가 높을수록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가족 중 개신교도의 수가 적을 경우 종교 갈등의 소지가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가족 간의 종교 갈등을 겪다 못해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고 한다. 제사ㆍ차례를 지내지 않는 대신 기일이나 명절에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 뜻을 기리는 것이다. 아예 명절에는 가족끼리 여행을 가고, 교통 혼잡이 없는 주말에 모여 식사를 하는 것으로 명절을 나는 가정도 해마다 늘고 있다.

그렇다면 한 가정 내에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현명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까?

불교식 차례의식 보급에 나서고 있는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은 “차례의 진정한 의미를 먼저 되새겨 보라”고 말한다. “차례란 한 해의 수확을 다함께 축하하고 조상께 감사하는 뜻을 담고 있음과 동시에, 가족의 응집력을 높이고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계승하는 방편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차례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법현 스님은 “갈등은 ‘내가 옳다, 너는 그르다’라는 분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가족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족의 다른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고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사단법인 한국주부클럽연합회는 “절대 상대의 종교를 비난하지 말 것”을 명절수칙 1조로 꼽는다. 서로의 종교를 비방하거나, 종교를 소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삼가고 서로의 건강과 생활 등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갈등의 소지를 차단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연합회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종교를 가질 권리가 있으므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종교가 일치해야 한다는 편협된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열린가족상담센터 김현의 상담팀장은 “가족 간의 종교 갈등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평소 가족애가 두텁고 대화를 충분히 하는 가족일 경우 종교가 다르더라도 서로 이해의 폭이 크고 상대의 입장을 수용하는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례를 지내되, 종교가 다른 구성원은 절을 하지 않거나 절을 하는 대신 묵념으로 대신하는 식이다. 김 팀장은 “종교문제를 떠나 평소 서로에게 섭섭한 점이 있다면 대화로서 갈등의 해결책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09-13 오후 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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