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이 최근의 난맥상을 딛고 한국불교 장자종단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천에서 비를 맞은 후에 우산을 준비하는 격이 되었지만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비를 맞은 뒤에 땅이 더 굳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9월 4일 개원해 5일 폐회한 조계종 제174차 임시중앙종회에는 세간의 이목이 쏠렸었다. 동국대 문제와 관음사ㆍ백담사 문제 등으로 종단의 균열상이 극심한 시점에 열린 종회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국대를 둘러싼 이사후보 추천과 현재 이사직과 중앙종회의원직을 겸임하고 있는 스님들의 행보에 대한 종단 안팎의 관심은 매우 컸다. 중앙종회에서 종회의원들이 격돌하게 되면 자칫 과거의 종단사태가 또다시 재연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앙종회는 격돌하지 않았고 오히려 승가의 ‘무소유 정신’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또 작금의 종단 현안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대승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책기구도 구성했다. 이번 제174차 임시중앙종회에서 의원스님들은 상정된 여러 안건들도 순리대로 토론하고 의결하는 등 화합정신이 살아 있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물론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총무부장 현문 스님의 자성어린 목소리도 교계에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또 실천불교승가회와 참여불교재가연대 등의 자성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들도 종단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려는 사부대중의 염원을 충분히 반영된 것이었다.
중앙종회가 승려법을 개정해 종단 소속 스님들이 환속 제적 사망할 경우 개인 명의의 재산을 종단으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삼보정재의 유실을 막고 승가의 무소유 정신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있는 조치다. 그러나 이 법이 원만히 시행되기 위해서는 승가의 노후복지 정책이 반듯해야 한다. 노후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소유 정신만 강조한다는 것은 편법을 낳는 원인이 된다.
조계종 뿐 아니라 모든 종단에 소속된 스님은 해당 종단이 노후와 사후를 여법하게 책임져 주어야 수행과 전법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복지와 인사의 공정성, 노후복지와 사후 복지야말로 현대사회의 출세간에게 있어 기본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조계종이 이번 임시중앙종회에서 종단 현안과 관련한 대책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 역시 승가의 기본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읽힌다. 최근의 난맥상을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위기의식이 이번 대책 기구를 구성시켰다. 대책기구의 출범은 상징이 아니다. 어떤 일보다 급박하고 절실한 실천이 담보되어야 한다.
나락으로 빠져드는 종단을 건져 올리는 일, 부종수교(扶宗樹敎)의 일념으로 종도와 국민들이 납득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반성과 재기의 틀짜기’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대책기구가 위기 모면용, 대외 홍보용으로 전락한다면 조계종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중앙종회에서 대책기구를 결의하며 낸 결의문은 “참회를 통한 자정의지를 현실에 옮길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어느 정도의 선을 의미하는지 불자들이 지켜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