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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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 추사의 또 다른 삶을 읽다
한승원 장편 소설 <추사> 지고한 예술혼과 세파의 길할 그려
한승원 선생님께,
장흥 율산마을 해산 토굴에서 무심(无心)이라는 글자를 써 넣은 부채로 한 여름을 나신다던 선생님께서 <추사>라는 ‘대붕의 알’을 중생계에 선물하시니 ‘무(无)’의 뜻이 새롭습니다. “无(무)자는 하늘 천(天)자를 닮은 글자로 하늘의 텅 비어 있음과 같은 ‘없음’과 우주의 시원을 뜻하는 것이다”(현대불교 639호 1면, ‘명사의 여름나기’)라던 선생님의 글이 장편소설 <추사>에서도 절실하게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여천무극(與天無極)’의 삶이란 스스로 하늘에 가까워짐으로써만 열어갈 수 있음을 행간마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7월 21일), 추사 가문의 원찰이었던 충남 예산 화암사 뒤 바위벽에 새겨진 ‘시경(詩境)’이란 두 글자 앞에서 망막이 흐려짐을 느꼈었습니다. 뇌리 속에 ‘시의 경지, 시의 경지’를 거듭 뇌이며 추사의 경지는 어떨까 자못 궁금했었습니다. <추사>에는 추사가 ‘시경’이란 뜻을 중국의 연경에서 얻어 오는 대목이 나옵니다. <추사>를 읽는 동안, 추사의 경지는 ‘무(无)’에 있지 않는가, 어쩌면 추사의 경지는 ‘경계 없음’ 마저도 벗어난 곳에 있어서 알려고 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시경’이 새겨진 바위 옆에는 추사의 친필로 ‘천축고선생댁(天竺古先生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경’은 추사의 글씨가 아니었지만 ‘천축고선생댁’은 추사의 친필이었습니다. 유학자인 추사가 불가의 부처님을 천축국의 옛 선생님으로 섬기고 있었음을 그렇게 당당하게 바위에 새겼다는 사실이 가슴 뭉클하게 했습니다.

추사 고택 뒤뜰의 모과가 푸른 몸집을 부풀리던 그날, 작은 암자 청화재에서 혜민 스님이 추사의 글씨를 잔뜩 보여 주었습니다. 혜민 스님은 추사의 글씨를 있는 대로 모아 낱낱을 따로 떼어 크기를 맞추어 복사해 놓고 있었습니다. 추사의 비석을 세우고자 하는 원력으로 820여 자를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일부러

‘나 아(我 )’자를 몇 가지 보여 주었는데 같은 글자, 같은 획, 같은 파임들이 없었습니다. 하나로 일치되지 않음이 추사체의 힘임을 그날 처음 느끼고 ‘불일치로써 천하를 일치시키려 했던 예술혼’ 앞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은 “나는 추사 김정희의 신필(神筆) 뒤에 가려져 있는 전혀 다른 또 다른 김정희의 얼굴, 잘못 흘러가고 있는 역사를 제대로 흘러가게 하려다가 다친 과정과 유배지에서 아파하면서도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 주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히십니다. 그 동기는 분명, 오늘의 독자들에게 “오탁악세의 수렁에서 피어난 해탈과 자유의 꽃”(김훈 소설가)인 추사의 예술혼을 ‘고졸하고 기굴하고 관광한’ 선생님의 문자향으로 전달할 것입니다.

<추사>는 업경대(業鏡臺)인 것 같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있다는 거울, 살아생전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는 업경대말입니다. <추사>의 소설적 구성이 업경대에 펼쳐지는 추사의 일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21세기를 살고 우리는 추사의 업경대를 훔쳐보면서 우리가 지금 저지르고 있는 모든 업, 개인의 업과 공공의 업을 두루 살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추사>는 추사의 삶이 신산(辛酸)함으로써 완성되었고 신필로 칭송되는 예술도 고단한 세파를 이김으로써 우뚝해졌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혼돈의 시대에 쓸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마를 서늘하게 해 줍니다.

“한번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자기 패거리의 권력과 이권을 위하여 백성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해버리는 일은 이 시대에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해동의 소동파, 동방의 유마거사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추사의 한 생애는 바야흐로 ‘대선정국’을 향해 침잠돼 가는 2007년의 대한민국에 ‘기굴하고 관광한’ 울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사>의 마지막 장면 ‘불가사의 해탈’에서 그 울림은 이렇게 언어 아닌 언어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도 아니고 글씨도 아닌 이 동그라미 안의 세상은, 내가 평생 가고자 소원했던 시공이다. 말이기도 하고 말 아니기도 한 이 동그라미의 뜻을 나는 지금 칭병을 한 채 문병객들을 불러들여 설법한 유마힐 거사의 말없는 말법으로써 불가사의 해탈의 법을 말하고 있는데 내 뜻을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하하.”
임연태 기자 | mian1@hanmail.net
2007-09-07 오후 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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