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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스님은 법어에서 “행자는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이 모두 수행이요, 수행은 때를 맞추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제(結制) 해제(解制)를 따로 구분해야 할 일은 아니다”며 “그러나 구태여 나누어 생각해보면 결제는 산사(山寺)에 들어 앉아 도(道)를 익히는 기간이라면 해제는 그동안 익히고 배운 도를 세상에 나아가 실천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이번 해제기간동안 포대화상처럼 주유천하(周流天下) 하면서 중생들에게 법과 복을 나누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보살행에 힘쓰고 스스로의 도의 경지(境地)를 더욱 견고(堅固)하게 다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법어전문>
세월이 유수하여 하안거 결제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해제일 입니다.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라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 같아서 수행자는 마음속에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도(道)가 달라집니다.
수행자 여러분은 지난 결제기간동안 무슨 그림을 그렸습니까?
허나 마음속 그림 역시 모두 허상(虛像)이며 수행이란 것은 이미 수십년동안 마음속에 그려진 찌들고 낡은 왜곡된 허상을 모두 없애 버리는 작업이지요.
나는 산중에만 살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은 모르지만 요즈음 세상이 너무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돈과 권력을 쫓아 패권(覇權)을 꿈꾸며, 공존(共存)의 보편적 법칙(法則)을 망각한채 세상을 지배(支配)하고자 겁 없이 날뛰는 사람들이 많고 보다 많은 것을 차지하여 호의호식(好衣好食)하려는 그릇된 욕망에 빠져 있는 범부중생(凡夫衆生)들이 서로 뒤엉켜 투쟁과 갈등을 일삼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성(神聖)하고 존엄(尊嚴)하여 세속적 가치(價値)에 초연(超然)해야 할 종교까지도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서서 세상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때 납자(衲子)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수행자는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이 모두 수행이요, 수행은 때를 맞추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제(結制) 해제(解制)를 따로 구분해야 할 일은 아니나 구태여 나누어 생각해보면 결제는 산사(山寺)에 들어 앉아 도(道)를 익히는 기간이라면 해제는 그동안 익히고 배운 도를 세상에 나아가 실천하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들이 머무는 정사(精舍)를 산속 외딴곳에 짖지 않고 반드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마을 가운데(변두리 지역) 마련하였습니다.
이는 불교가 자기수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생제도를 위한 보살행에 더욱 역점을 두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부처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불과할뿐 목적이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부처가 되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출가승의 정신자세는 부즉불이(不卽不異)입니다.
즉, 수행자는 세속을 쫓아가서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세속을 떠나서도 안된다는 말입니다.
수행을 빙자(憑藉)하여 세상을 등지고 중생의 고통을 외면한체 산사에서 한가한 생활로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부처님의 본회(本懷)에 위배되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삼보(三寶)와 중생에게 죄를 짖는 일이 될 것입니다.
어느때 부처님께서 제바달다(提婆達多)가 있는 지옥(地獄)에 아난(阿難)을 보내어 묻게 하였습니다. “그대는 지옥의 고통을 견딜만 한가.” 제바가 말했습니다. “나는 지옥에 있어도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네.” 부처님께서 다시 아난을 보내어 묻게 했습니다. “그대는 지옥에서 언제 나오는가.” 제바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때 나는 나갈 것이네.” 아난이 말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삼계(三界)의 큰법(大法)신데 어찌 지옥에 들어갈 이치(理致)가 있겠는가.”
제바달다가 이 말을 되받아 말했습니다.
“세존이 지옥에 들어올 이치가 없다면 내가 어찌 지옥에서 나갈 이치가 있겠는가.”
납자 여러분 제바달다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그것은 지옥(地獄)과 극락(極樂)이 모두 정토(淨土)로 법계(法界:세상)의 성품(性品)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진리를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출가와 재가, 세간과 출세간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사사불공(事事佛供)이요, 처처불상(處處佛像)이지요.
중국의 석찬(釋瓚)이란 스님이 한소식을 하고 난후 경한(鏡漢) 선사께 세 번 절하고 옆에 다소곳이 서 있었습니다.
이때 경한 선사가 말했습니다. “자네 마음이 몹시 기쁜 것 갔네그려.” “예 매우 기쁩니다.” “어떤 도리를 얻었기에 그리 기쁜고 내가 기쁨을 도와주면 안되겠는가.” “오묘한 그것이 어떤것인지 알고나니 매우 기쁩니다.” 경한 선사가 말했습니다. “자네가 그것을 깨달아 기쁘니 나도 기쁘고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불보살이 기뻐하시며 제망찰해(帝網刹海)의 중생들이 함께 기뻐할 것이네.”
이처럼 한사람의 도(道)는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대중(大衆)의 것으로 그 도(道)를 세상을 향하여 펴나갈 때 빛을 더하는 것입니다.
납자 여러분중에 아마 포대화상(包袋和尙)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포대화상은 명주(明州)스님으로 몸집이 뚱뚱하며 한상 괴나리 봇짐을 등에 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다닙니다. 이 먹을 것은 그냥 먹을거리가 아니라 부처님의 법(佛法)과 중생의 복(福)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해제기간동안 포대화상처럼 주유천하(周流天下) 하면서 중생들에게 법과 복을 나누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보살행에 힘쓰고 스스로의 도의 경지(境地)를 더욱 견고(堅固)하게 다지기를 바랍니다.
法界都是熱火宅(법계도시열화택)
衆生各人如牢苦(중생각인여뇌고)
風塵千載一泡花(풍진천재일포화)
是也非也虛空說(시야비야허공설)
不忘道心常湛然(불망도심상담연)
勤精必成本分事(근정필성본분사)
세상은 모두가 활활타는 불집이요
중생들은 각자마다 욕망우리에 갇혀있네
천년의 풍진세월 한송이 거품인데
옳다 그르다 무슨 헛개비 빈소리인고
도닦는 마음 잃지 말고 항상 몸을 깨끗이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 일대사 인연 이룩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