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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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권 중국 일본에선 '백중문화'보편화
노성환 교수의 우란분절 이야기2
대만 사찰에 설치된 우란분절의 영가천도를 위한 명택

중국의 우란분절은?
우란분절, 백중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비교적 불교와 중국문화의 영향이 큰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이는 보편적인 행사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7월 15일은 매우 중요한 명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에서는 7월 15일을 일반적으로 중원절이라 한다.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많은 전통문화가 사라져 현재 대륙에서는 백중에 대한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다행히도 그에 관련된 많은 문헌과 해외에 사는 화교 사회 및 비교적 현대 중국의 정치적 영향이 적었던 대만, 싱가폴, 홍콩 등지에 그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것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중원절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하여 보면 중국의 중원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불교의 우란분회이다. 남북조 시대 때 제나라 군주인 고제(高帝)가 7월 15일에 널리 사찰에 분을 보내어 승려들에게 공양했다고 하며, 또 남조의 양무제가 동태사에 행차하여 우란분제를 설하였다는 기록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북주 사람인 종름이 쓴 <형초세시기>에는 7월 15일이 되면 승려와 도사와 일반인들이 모두 분(盆)을 마련하여 제불에게 공양하는데, 이는 <우란분경>에 칠엽의 공덕을 드리며, 번(幡)과 꽃, 가고(歌鼓), 과식을 바치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우란분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점차 꽃으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변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우란분경에 근거하여 우란분절이 화려하게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만 사찰의 우란분절 영가천도를 위한 명택

둘째는 도교의 중원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용왕의 딸이 진자춘이라는 남자에게 반해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 3명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이 모두 신통력이나 법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원치천존이 장남을 천관, 차남을 지관, 삼남을 수관으로 각각 임명했다. 장남은 1월 15일에 태어나 상원1품의 자리에서 천관사복대제라 칭하고 천신을 통솔하면서 인간들에게 복을 주었고, 차남은 7월 15일에 태어나 중원 2품의 자리에서 지관사죄대죄라 하여 구주, 팔극의 신들을 통솔하고 인간들의 죄를 사면했다. 그리고 삼남은 10월 15일에 태어나 하원 3품의 자리에서 수관해액대제라 하며 수신을 통솔하고 사람들의 재액을 막아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신의 탄생일인 상원, 중원, 하원의 날에 사람들은 묘를 찾아가 잘못을 빌고 액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날이었다. 이처럼 도교에서도 7월 15일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셋째는 죽은 조상들이 찾아오는 날이다. 지난 7월 중국 운남성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만난 나시족(納西族) 청년에게 중원절에 대해 물었더니 7월 1일에 묘지에 가서 조상을 모셔와 집에 모시고는 대접하고 7월 15일에 돌려보내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청나라 때 사람인 돈숭(敦崇)이 쓴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는 7월 15일 사람들은 성묘를 가서 청소를 하며 제사를 지낸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날이 조령이 방문하는 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넷째는 농경의례로서의 중원이다. 복건성(福建省)의 영안(永安)에서는 이 날 조상에게 햅쌀(新米)과 술, 고기를 바친다고 했으며, 또 호북성(湖北省)의 감리(監利)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조상에게 햅쌀과 가축을 조상들에게 바치고 연회를 베푸는 날이라고 한다. 이처럼 7월 15일은 1년 중 처음으로 수확한 햅쌀을 조상에게 바치는 날이었다. 화남과 홍콩에서 이 날 집안과 마당 그리고 집 바깥에다 향을 모심기 하듯이 꽂아두는 것도 이 날이 다름 아닌 벼의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란분절을 맞은 대만사찰 정문 모습

그러나 중국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많이 퇴색되어 오늘날에는 죽은 영혼들이 찾아오는 날의 성격이 강하다. 특히 대만에서는 7월 한 달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아귀들이 한 달간 휴가를 받아서 이승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아귀들은 후손이 없거나, 결혼하기 전에 죽었거나, 사고로 인해 불행하게 죽은 불쌍한 원혼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항상 굶주려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푸짐한 음식으로 융숭하게 대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현관에다 아귀를 위한 음식을 차려놓은 모습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중원날의 도사 또는 승려들의 중요한 역할은 동네의 아귀들을 전부 불러 모아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원에서는 아귀들을 초청하는 안내장을 게시하고, 돼지 및 내장과 술과 음식들을 차려놓고, 동네를 다니며 조릿대로 동네아귀들을 불러 모으고, 설교한 다음 대접하는 의례가 치러진다. 그야말로 대만의 중원날은 아귀들의 향연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상을 위해서 명전(紙錢)을 태워 바치고, 또 명택(冥宅)이라 하여 화려한 색종이로 만든 고급주택을 만들어 바치기도 한다. 그 집 안에는 침대와 텔레비젼을 비롯한 가전제품 일체가 구비되어있고, 심지어 자가용과 휴대폰까지 갖추어져 있는 것도 있다. 물론 그것을 샀다는 계약서도 두 장을 작성하여 한 장은 집안에 붙여놓고, 또 다른 한 장은 유족들이 보관하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 중국의 중원절은 죽은 자를 위한 명절로서 성격이 강하다.

일본 교토의 동본원사 영탑에서는 음력 7월 15일 등에 불을 밝혀 조상의 영혼을 불러 위로한다.

일본의 우란분절은?
일본은 7월 15일을 오봉(御盆) 또는 중원이라 부른다. 전자는 불교의 우란분을 줄인 것이고, 후자는 도교에서 일컫는 호칭이다. 이러한 명칭에서 보면 일본의 백중은 불교와 도교적인 요소가 골고루 섞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도교적인 색채는 약하고 불교의 우란분절의 요소와 조상을 모시는 망혼제가 그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있어서 오봉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8세기 초엽의 문헌인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그것에 의하면 606년 4월 8일 조에 “올해부터 처음으로 각 사찰마다 4월 8일과 7월 15일에 제를 설치했다”고 하고, 또 657년 7월 15일 조에 “비조사의 서쪽에 수미산 모양을 만들고, 또 우란분회를 설치했다”하며, 그로부터 2년 뒤인 659년 7월 15일조에 “서울 내 여러 사찰에서 <우란분경>을 강설케 하고 7세 부모의 은혜를 보답케 했다”는 내용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일본에서 우란분회는 7세기 초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다.
스님이 입적한 후 첫 오봉일에 차려진 불단

오늘날 오봉 때 절에서 취하는 태도는 대략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한 가지는 스님들이 신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망자를 위해 독경으로 제사를 지내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절에서 우란분회를 실시하는 경우이다. 어떠한 형태를 취하든지 일년 중 스님들이 가장 바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에서 행하는 행사를 보통 우란분회라 하지 않고 시아귀회라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일본의 오봉에는 우란분회와 시아귀회가 복합되어있는 것이다. 우란분회는<우란분경>이라는 경전에 의거하고 있듯이, 시아귀회는 당나라 때 불공이 번역한 <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救拔焰口餓鬼多羅尼經)>에 의거하고 있다. 이 경전에 등장하는 아귀가 바로 염구아귀인데 얼굴이 못 생겼고, 게다가 야위어 있으며 항상 입안에는 불을 품고 있는데, 바로 그 아귀가 어느 날 석가의 제자인 아난(阿難)에게 찾아와 “너는 3일후에 죽어 아귀도에 떨어질 것이다”고 예언하자, 이에 깜짝 놀란 아난이 부처님에게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다라니를 외우고 음식을 베풀면 일체의 아귀들이 구원받을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우란분경>은 목련존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또 아귀도에 떨어진 부모(또는 7세의 부모)의 구제를 위한 것이고, 이에 비해 <시아귀경>은 주인공은 아난이며, 아귀도 떨어진 아귀가 구제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아귀도에 떨어진 영혼을 구제한다는 의미에서는 서로 같다. 이러한 성격으로도 조상과 아귀의 영혼을 구제하는 우란분회과 시아귀회가 서로 습합되어 오봉의 행사로 정착되어있는 것이다.

한편 조상을 모시는 행사는 크게 나누어 조령을 맞이하여 모시고 대접하여 돌려보내는 것으로 되어있다. 조령을 맞이하는 방법으로는 일정치 않다.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대문 앞, 교차로, 하천, 또는 묘지 등에서 불을 피우면서 맞이하기도 한다. 특히 쿄토의 히가시 오오타니(東大谷)의 본묘(本廟)에서는 만등회라 하여 묘지에 등을 달아놓고 조상을 모셔온다.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조령이 빨리 오도록 하게 하기 위하여 짚 또는 오이로 만든 말을 장식하기도 한다.
일본 우란분절 불단의 모습

이렇게 모셔온 조상은 3종류의 계급이 있다. 하나는 ‘호도케(佛)’라 불리는 정식 조상이 된 영혼(佛)들이며, 또 하나는 사망한지 얼마 안되는 새 조상(新佛)이며, 또 다른 하나는 흔히 아귀(餓鬼)라 불리는 무주고혼(無主孤魂)들이다. 그에 따라 모셔지는 제단도 달랐다. 즉, 선조대에 속하는 조상들은 불단 또는 불단 앞에 차려지는 제단에 모셔지지만, 새로운 조상은 그보다 약간 낮게 따로 설치되며, 아귀들은 별도의 장소에 마련된 곳에 모셔지게 된다. 그들은 오봉 기간 내내 후손들과 함께 머물다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령들을 보낼 때는 개별적으로 보내는 방법과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는 맞이할 때와 마찬가지로 집의 문 앞이나, 교차로, 하천, 묘지 등에서 각각 개별적으로 보내지만, 후자의 경우는 봉오도리(盆踊)라 하여 집단적으로 춤을 추며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기도 하고, 또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에서는 경내에 수많은 등롱을 켜는 만등회를 벌여 조령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교토에서는 다이몬지야키(大文字燒き)라 하여 교토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다 불을 질러 여러 가지 문자와 그림의 형태를 만들어 그것을 통하여 돌려보내기도 한다.

일본의 오봉은 설날과 더불어 2대 명절이다. 설날에는 신이 찾아온다면 오봉은 죽은 조상들이 집을 찾아오는 날이다. 오봉 시기에 찾아오는 조령들을 모시는 행사를 불교가 우란분회와 시아귀회를 통하여 흡수해 있는 것이 일본의 백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지연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7-08-21 오후 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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