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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탐방단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운암 김성숙 선생(법호 태허 스님)의 아들인 두젠(杜鍵ㆍ74)씨와 김산 선생의 아들 고영광(高永光ㆍ70)씨, 손자 고우원(高雨原ㆍ35)씨가 그들이다.
현재 북경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즐거운 듯, 시종일관 미소 지었다.
두젠씨는 운암 선생이 중국 중경(총칭)에서 만난 두군혜 여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아들 중 둘째 아들. 두젠씨는 “한국말을 못해 유감이지만 반은 한국인 피를 갖고 있어 탐방단 여러분과의 만남이 무척 반갑다”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두젠씨가 12살 때 운암 선생이 대한민국으로 떠나 그 후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다. 과연 두젠씨에게 운암 선생은 어떤 아버지였을까. 열혈 독립투사에게도 따뜻한 부성애가 존재했을까.
두젠씨는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간이 짧아 아쉽다. 아버지는 항상 바쁜 분이었지만 집에 있을 때는 연날리기 수영 등을 함께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쓰셨다”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있어주기를 희망하는 소박한 아버지 모습 그대로다.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었을까. 두젠씨는 “원망은 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안전하신지 늘 걱정했다”고 한다. 독립투사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지 못해도 원망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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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회고록에서도 ‘장지락’이라는 인물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김산 선생은 미국 작가 님 웨일즈와 공동으로 저술한 <아리랑>을 통해 생애가 알려진,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좌파 독립투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나 김산 선생은 중국공산당에 의해 간첩죄로 1938년 처형되고 만다. 아들 고영광씨의 노력 끝에 김산 선생은 84년 복권될 수 있었다.
운암ㆍ김산 선생 모두 좌파 투사였기에 이들을 비롯한 여러 좌파 독립투사들의 공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섭섭해 하지는 않을까.
두젠씨는 “예전에는 아버지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아 섭섭한 적도 있었으나 시대상황으로 미뤄 보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고영광씨의 경우, “억울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오히려 한국 정부에서 훈장을 받아 기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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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탐방단에 한 목소리로 해주고 싶은 말은 “남북통일에 기여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를, 빨리 하나로 합쳐지기를, 독립운동의 정신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립투사들을 실제로 만나기란 참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자손들은 우리와 함께 이 시간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이 시대의 한 끝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은 역사와의 조우, 바로 그것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가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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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탐방단은 14일 북경대 학생들과 만나 토론회를 갖고 북경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5일 한국으로 돌아가 해단식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