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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건물 앞에서 설명을 듣는 탐방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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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선생님에 대해서도 조금씩 공부를 하고 있어요. 중국까지 와서 조국을 위해 애쓰신 분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8월 8일~9일, 중국 남경(난징)과 무한(우한)의 날은 무더웠다. 지열이 올라오고 숨은 훅훅,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여름날이 이어졌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땀만 줄줄 흐른다. 여기저기서 “정말 덥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인지상정. 하지만 누구 하나 진심어린(?)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탐방단이 걷는 길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의 눈물과 피땀이 아로새겨져 있어서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의 ‘제2회 항일운동 사적지 탐방단(이하 탐방단)이 8일 행군한 곳은 남경이다. 일제가 1937~8년에 중국 양민 30만명을 잔인하게 학살한 ’남경대학살‘로 유명한 도시로 강서성 성도(城都)다.
남경에는 독립투사를 양성하기 위해 김원봉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훈련장소와 김원봉 계열의 독림투사들과 민족혁명단 인사들이 이주해 살았던 ‘호가와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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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질곡의 역사현장에서 듣고 보고 메모하기에 여념없는 탐방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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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장 의미 깊은 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 본부다. 이곳은 대한민국 최초의 외교대사관 역할을 했던 곳. 현재 2층 양옥 형태로 터를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현재 집주인 양장이씨가 50년 이상 거주하고 있고 집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상태여서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
남경에서의 하루가 지나고 탐방단은 무한으로 가기 위해 남경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처음 타보는 중국 기차, 낯설지만 재미있다. 침대객실마다 무시무시한 높이의 3층 침대가 마련돼 있고, 객실 문 없이 뚫린 통로로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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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민족전선연맹거점에서 태허 스님을 기리며 합장기도하는 불자탐방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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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무려 12시간 15분을 달려 9일 오전 9시가 넘어서야 무한에 도착했다. 무한에는 운암 선생(태허 스님)의 유적이 남아있다. 바로 ‘조선민족전선연맹’의 거점 지역이다. 김원봉, 유자명과 함께 힘을 합쳐 만든 이 단체에서는 ‘조선민족전선’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고, 운암 선생은 편집을 맡았다.
이제 한낱 한 건물의 주차장 형태로 남아있어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찰나. 미용실이 자리 잡은 건물의 현지인 생활 흔적 속에서 운암 선생의 뜻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기를 빌어본다.
이날, 탐방단 중 불자들을 주축으로 운암 선생이 아닌 태허 스님을 기리기 위해 합장하고 태허 스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한편 이날 중앙군사정치학교 무한분교와 조선의용대 창설 장소, 신해혁명기념관도 견학해 뜻 있는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 중 무한분교는 현재 중국에서 성(城)급 문화재로 지정, 보호받고 있으며 현재는 ‘실험소학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 군사학교에서 1927년 무한지역 한인 200여명이 입교해 교육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