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불 보살이시여!
올 여름 한국은 뜨겁습니다. 23명의 동포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인질이 된 순간부터 이 여름의 뜨거움은 식을 줄 모르고 있습니다. 납치 14일이 지난 이 시점, 남자 2명이 살해되어 시신으로 돌아왔고 나머지 21명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사막의 기지나 동굴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협상은 무기력하기만 하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주변 이슬람 국가 그리고 미국과 일본 등 우방들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억류된 동포들의 생명이 태풍 앞의 촛불입니다. 협상 시한이나 조건 등 모든 상황이 테러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고 보면, 우리 국민과 자유를 숭상하는 인류의 안타까움은 그야말로 목불인견입니다.
제불보살이시여!
온 국민이 그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더 이상 인명이 ‘협상’의 도구가 되지 않길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원과 염원이 있을 뿐 아무런 행동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종교계는 ‘봉사활동’을 목적으로 갔던 그들의 귀환을 촉구하는 목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속된 교회나 개신교측은 ‘지나친 선교활동’에 대한 자성의 분위기에 묻혀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교나 가톨릭 원불교 등 이웃 종교들까지 침묵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는 것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대규모 집회는 아니더라도 각 종교의 입장은 명확히 밝히고 각 종교의 방법대로 억류된 그들을 위한 종교적 행동은 취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치는 종교로서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도의입니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 종단들이 동포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거나 기원법회를 열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자대비의 동사섭 정신을 외면하는 처사입니다. 또 다른 자기모순이고 종교간의 화합을 촉구해 온 선언들이 ‘구두선’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불 보살이시여!
지금 인류는 참담한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민족과 지역 이기주의, 세계를 뒤덮은 물질만능주의, 인성과 생명의 귀중함을 외면해 온 업보를 스스로의 살점을 물어뜯으며 감내하고 있습니다. 전쟁도 테러도 그 근본은 모두가 욕망입니다. 자기를 위해 누군가를 살상하고 짓밟는 집단이 있는 한 사바세계는 활활 타오르는 집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법계를 불태워 극락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악연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과 지혜가 간절히 필요합니다. 지옥을 극락으로 변화시키려는 범인류적인 노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불 보살이시여!
불자 개인은 물론 온 인류가 욕망에 휘둘려 살고 있는 이 참상을 참회하옵니다. 타인의 역사와 문화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 무례함도 참회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치 아니한 오만함도 참회합니다. 저희들의 이 진참회가 이역만리에서 공포의 나날을 보내는 동포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비춰지길 지극한 마음으로 원하옵나니, 제불보살의 가피 충만 하소서.
▶◀ 현대불교신문은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동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희생된 분들의 넋과 가족 친지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