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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제지술은 스님들에 의해 발전돼 왔는데 한지(韓紙)는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경북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산골마을에 위치한 보갑사 영담한지미술관 관장인 영담 스님이 마침 신도들에게 한지(韓紙) 특강을 하고 있었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白)’. 종이는 1천년, 비단은 500년을 간다는 말입니다. 1966년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유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영담 스님의 설명이 이어진다. “8세기에 만들어진 인쇄본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보존된 것은 한지의 오랜 생명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지 속에는 우리 조상의 얼과 혼이 담겨 있죠. 한지에 새겨진 정교하면서 섬세한 그 무늬를 따라 칼을 움직이고 있을 때면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영담 스님에 의해 다시 탄생한 한지 그림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청도의 봄’ ‘산’ ‘녹야원’ ‘니르바나의 꽃’ ‘윤회’ 등 100여점이 걸려 있는 미술관은 아담하고 소박했지만 전통이라는 쇳물을 녹여 화려한 현대적 감각의 전통 한지를 양산해 내는 거대한 용광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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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후 30여년 동안 ‘한지’를 화두로 삼고 연구 정진해 온 영담 스님이 한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6살 때부터다. 한의사인 아버지 덕분에 수없이 본 첩약 봉지가 스님의 눈에 비친 첫 한지다. “한지가 얼마나 좋은지 아세요? 딱지를 접어도 한지는 묵직해 절대 뒤집어 지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우리 동네에서는 딱지 왕 이었어요. 하하하.”
영담 스님도 그 당시엔 한지가 얼마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몰랐다. 닥나무를 삶아서 벗긴 백피(白皮)를 잿물에 4~5시간 삶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뭉친 닥을 지통에 넣어 200번쯤 풀대로 힘차게 저어 잘 풀어준 후 다시 물기를 짜고 말려서 다듬고 방망이질까지 해야 한 장의 종이가 완성된다는 것을. 이렇게 정성과 공이 들어간 전통 한지는 아흔 아홉 번 거치게 되는데 마지막으로 종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한 번 더 만져 백번의 손길이 닿게 된다고 해서 ‘백지(百紙)’라고 불렀다.
“출가 전부터 한지에 관심이 많았지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한지 배우기에 팔을 걷어 부친 것은 20대 중반 출가 후 원주서 한지 제조 전문가인 홍관하 할아버지에게 사사하면서 부터입니다. 홍씨는 13살 때 영변 약사사에서 스님들하고 종이를 떠본 경험이 있어 사찰 전통방법의 제지술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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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직접 그린 것인지, 종이로 붙인 것인지 구별이 안갈 정도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이 스님의 한지 그림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개장한지 1백일도 안됐지만 벌써 5백명 이상이 이 외진 산골마을에 위치한 한지 박물관을 다녀가며 방명록에 적어 놓은 글들은 더욱 이를 실감나게 해준다.
“처음 본 한지의 세계 선경에 들어왔다 갑니다.”(서선아/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효매실동)
“평생에 한번 볼까 말까하는 작품들을 보게 돼 한없이 영광스럽습니다.”(최상숙/부산시 연제구 연산4동)
“정말 보기 드문 좋은 작품 감상하고 갑니다. 우리의 전통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신경순/대구 수성구 만촌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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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담 스님에겐 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올해 안에 시행된다. 2박3일 정도 한지박물관에서 한지도 만들고 또 자신이 만든 종이에다 사경도 하는 사경참선 템플스테이를 여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사찰 전통 한지 공예학교를 만들어 전통 한지의 맥을 이어 나가는 일이다.
“제 종이가 잘 나오는 것보다 제자들의 작품이 원하는 대로 멋지게 근사하게 나올 때 보람을 배로 느끼죠. 비록 시골의 작은 공방이자 미술관이지만 제 자리에서 묵묵히 사찰 전통문화를 누군가에게 전수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투철한 사명감이 샘솟는 답니다.”
(054)373-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