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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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하나로 여름나는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문을 열어 주었다. 단신에 야무져 보이는 몸매의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 86세라는 연세는 주민등록증이라도 봐야 믿을 수 있을 듯 건강해 보였다.
혼자 사는 아파트는 불을 켜지 않아 좀 어둑했지만 이내 적응됐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장마가 끝난 신도시, 밖은 찜통더위인데 정 교수님의 집에는 선풍기 한 대 없었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고도 덥다고 난리인데 교수님께서는 선풍기도 없이 지내시나요?”
“선풍기는 필요 없어. 이 부채 하나면 여름을 거뜬히 나거든.”
정 교수님은 합죽선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덥다, 덥다 말하는데 뭐가 더운지 먼저 알아야 해. 몸이 더운 건지 마음이 더운 건지 말이야. 몸이 더운 건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이 더운 건 어떤 장치를 써도 안 되거든. 더운 마음을 식히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 최고야. 그러면 마음을 따라 몸도 시원해지거든.”

우리나라 요가 보급과 학술적 연구에 있어 선두주자이며 한국요가문화협회 300여 지도자들의 구루(존귀한 스승)인 정 교수님은 “추위 건 더위 건 그것은 자연의 현상일 뿐”이라며 “사람도 몸과 정신이 건강하면 자연 현상을 극복하는 힘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님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10시까지 30분간의 물구나무서기를 비롯해 요가와 명상으로 수행을 한다. 그 오전의 5시간이 잠자리에 들기 전(밤 11시)까지 하루의 에너지를 채워 주는 것이다. 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 등 관리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건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는 일에 비해 쉬운 일이다. 건강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순간 닥쳐오는 일(경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으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정신은 항상 집중되어 있어야 해요. 책을 볼 땐 책에 집중하고 밥 먹을 땐 먹는 일에 집중해야지 산만하면 허점이 생기거든요. 움직임에 집중하고 생각을 흩트리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건 늘 자유롭고 당당할 수 있죠. 그런 경지에서는 더위가 느껴질 수 가 없어요.”

역시 마음의 건강이 여름을 이기는 비결이란 얘기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병에 노출되어 있지만 ‘관리’하기에 따라 병에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산란함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각종 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마음 단속’이 만병의 근원을 차단하는 비법이라는 것이 정교수님의 지론.

“독서는 얼마나 하시느냐?”는 질문에 정 교수님은 “이제 머리 속에 뭘 집어넣는 일보다 평생 들여 놓은 것을 정리해서 꺼내는 일을 할 때 아닌가?”라며 곧 <경전을 통해 본 요가와 불교의 만남>이란 책이 나올 거라고 했다. 이 여름 그 원고작업에 더울 틈이 없었다며.

정 교수님은 영어 좌우명을 설명하며 “이런 마음이 불자의 건강한 여름나기 비법”이라고 덧붙였다.
“I''m peaceful. I''m joyful, I''m wonderful, I feel grateful to see sunshine."
충만한 평화는 ‘열반’이고 즐거움은 ‘환희’ 놀라움은 장엄한 법계를 의미한다. 하루하루 태양이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우주의 주인공인이라는 것이다. 매사에 만족하고 부지런한 삶, 그래서 정 교수님은 합죽선 하나로도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임연태 기자 | mian1@hanmail.net
2007-08-03 오전 6:50:00
 
한마디
저서 논문을 통해 존경하는 분이셨는데 연세가 연세신지라 잘계신가 했더니 지금도 저서를 내시며 건강하신 것을 보니 반갑습니다... 오래오래 사시며 좋은 책과 글을... 나무아미타불
(2007-08-04 오후 2:00:20)
77
치명적인 오타. greatful이 아니라 grateful같은데요. greatful이란 영어는 없는 거 같네요.^^
(2007-08-04 오후 1:32:12)
70
정말 존경해야 할 불교학자이자 수행자라고 생각하고, 이런 분들이 계신 것이 학교사회나 불교에 자랑거리입니다. 기자님 수고가 많으셨군요. 정태혁교수님처럼 훌륭하신 분을 세상에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불교학자나 수행자들은 이런 어른들의 행적을 본받아야 합니다. 없는 실력 탈로날까 힘에 아부하고 다른 사람 발목잡는 불교학계의 픙토가 없어져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늙어 가고 학계에서도 물러나 은퇴하기 마련이지만, 노년에도 아름다운 삶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젊은 시절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불교학자들이나 승려학자들도 공수래공수거라 학생들 앞에서 신도들 앞에서 공염불 그만하시고 정교수님처럼 사세요.
(2007-08-03 오후 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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