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자 사는 아파트는 불을 켜지 않아 좀 어둑했지만 이내 적응됐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장마가 끝난 신도시, 밖은 찜통더위인데 정 교수님의 집에는 선풍기 한 대 없었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켜고도 덥다고 난리인데 교수님께서는 선풍기도 없이 지내시나요?”
“선풍기는 필요 없어. 이 부채 하나면 여름을 거뜬히 나거든.”
정 교수님은 합죽선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직이 말을 이었다.
“덥다, 덥다 말하는데 뭐가 더운지 먼저 알아야 해. 몸이 더운 건지 마음이 더운 건지 말이야. 몸이 더운 건 부채나 선풍기 등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마음이 더운 건 어떤 장치를 써도 안 되거든. 더운 마음을 식히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 최고야. 그러면 마음을 따라 몸도 시원해지거든.”
우리나라 요가 보급과 학술적 연구에 있어 선두주자이며 한국요가문화협회 300여 지도자들의 구루(존귀한 스승)인 정 교수님은 “추위 건 더위 건 그것은 자연의 현상일 뿐”이라며 “사람도 몸과 정신이 건강하면 자연 현상을 극복하는 힘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님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10시까지 30분간의 물구나무서기를 비롯해 요가와 명상으로 수행을 한다. 그 오전의 5시간이 잠자리에 들기 전(밤 11시)까지 하루의 에너지를 채워 주는 것이다. 육체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꾸준한 운동 등 관리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건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는 일에 비해 쉬운 일이다. 건강한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매순간 닥쳐오는 일(경계)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으르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정신은 항상 집중되어 있어야 해요. 책을 볼 땐 책에 집중하고 밥 먹을 땐 먹는 일에 집중해야지 산만하면 허점이 생기거든요. 움직임에 집중하고 생각을 흩트리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하건 늘 자유롭고 당당할 수 있죠. 그런 경지에서는 더위가 느껴질 수 가 없어요.”
역시 마음의 건강이 여름을 이기는 비결이란 얘기다.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병에 노출되어 있지만 ‘관리’하기에 따라 병에 지기도 하고 이기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산란함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각종 병을 일으키기 때문에 ‘마음 단속’이 만병의 근원을 차단하는 비법이라는 것이 정교수님의 지론.
“독서는 얼마나 하시느냐?”는 질문에 정 교수님은 “이제 머리 속에 뭘 집어넣는 일보다 평생 들여 놓은 것을 정리해서 꺼내는 일을 할 때 아닌가?”라며 곧 <경전을 통해 본 요가와 불교의 만남>이란 책이 나올 거라고 했다. 이 여름 그 원고작업에 더울 틈이 없었다며.
정 교수님은 영어 좌우명을 설명하며 “이런 마음이 불자의 건강한 여름나기 비법”이라고 덧붙였다.
“I''m peaceful. I''m joyful, I''m wonderful, I feel grateful to see sunshine."
충만한 평화는 ‘열반’이고 즐거움은 ‘환희’ 놀라움은 장엄한 법계를 의미한다. 하루하루 태양이 솟아오르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우주의 주인공인이라는 것이다. 매사에 만족하고 부지런한 삶, 그래서 정 교수님은 합죽선 하나로도 폭염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