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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특집호 ‘시원’...젊고 신선해지는 느낌
현대불교 독자위원회
현대불교신문 독자위원회는 632(6월 20일자)~639호(8월 1일자)에 보도된 내용과 지면에 대한 평가를 진행했다. 이번 지면평가는 위원들의 이메일 발송 형식으로 진행됐다.

시의적절한 시사성기사 늘어

최임배: 638호 여름특집호 시원하게 잘 읽었다. 전문지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도가 눈에 보인다.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된다. 구태의연한 모습을 탈피해 가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러다보니 젊고 신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상황변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상호: 637호를 보니 시의적절한 시사성 기사들을 접할 수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각 지방의 불교계활동 소개나 조계종단의 당면문제들에 대한 동향, 즐겨 읽도록 만드는 각종 코너와 그리고 알찬 기획기사들로 채워져 풍성했습니다. 특히 2면 ‘사찰 스님 늘고 사미사미니는 줄어’ 기사를 보니 이번에 공개된 ‘조계종 2006 통계자료’ 내용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제목으로 삼아서 알기쉽게 처리하였고 내용구성에 있어서도 일목요연했다.

한주영: 매주 수행에 관한 기사를 가장 재미있게 읽고 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수행법에 대한 소개를 접하다보면 수행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것 같다. 더불어 불교에 대한 자긍심도 커진다. 이렇게 다양하고 훌륭한 수행법이 많으니 사람들이 조금만 부지런하게 찾고 실천하면 모두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김남기: 638호 여름특집 1면의 ‘산사에서 온 편지’를 쓴 월호 스님의 애착을 버리라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다.

이남숙: 633호 7쪽 시방세계에 불교산악인연합회 창립 10주년 기사를 보니 오랜만에 거사불교를 느낄 수 있어서 참 훈훈했다. 거사들의 힘이 불교발전에 아주 크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도 용납 안돼야

이상호: ‘선시 깊이 읽기’ 와 ‘시집 즐겨 일기’가 詩라는 한 장르에 치중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선시 깊이 읽기는 그대로 살리더라도 ‘시집 즐겨읽기’는 조금 융통성을 두어서 시집외 다른 산문집이나 평론집,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김시열: 633호 1면에 ‘호국불교 대토론회’ 기사를 배치한 것이 거슬린다. 면면을 보아하니 정치적 색채가 짙은 단체이고 또 그런 성격의 집회를 갖기 위한 행사의 일환인 듯한데, 비중을 좀 작게 잡았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김남기: 638호 이명박 후보 서울 봉헌 발언 해명 기사는 보광 스님의 질문과 이명박 前 서울시장의 답이 명쾌하지 못하다. 오히려 교계 언론에서는 사실보도보다 강력하게 비판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했다.

최임배: 636호 6면에 실린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의 동정의 타이틀이 틀리는 실수는 없어져야겠다. 이런 실수로 인해 신문의 질이 낮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감성자극하는 시 선택했으면

이상호: 어릴 때부터 칠성불의 점지를 받아서 태어났다는 말을 자주 들었으나 흘려들었는데, ‘불화속의 명장면’에서 칠성불에 대한 이야기를 다소나마 듣게 되어 반가웠다. 이러한 기획기사가 서민들의 풍속에 뿌리깊이 내려져 있는 이야기들과 연관될 때 많은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찰음식의 모든 것’도 유익한 상식을 얻게 되어 좋았다. 단지 ‘공광규시인과 시집 즐겨 읽기’에서 제시된 시는 종교적 측면에서 다가오는 감동이 적어서 아쉬웠다. 시가 갖는 이념성도 존중해주어하겠지만 기왕이면 좀 더 종교적 심성을 자극하는 감동어린 시를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시열: 캠페인의 논술 부분은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각 단계에 따라 내용파악과 문제의식이 다를 텐데…. 또 우리말 씹어먹기에 나오는 어휘는 가능하면 옆에 소개된 책 속에 나오는 어휘로 선정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한주영: 종교자유에 대한 박광서 교수님의 연재는 때로는 재미있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때로는 통쾌하게 읽고 있다. 특히 숭실대 판결에서 법관들이 보여준 비상식적인 판결과 그러한 판결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러나 그동안 일회적인 분개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종교자유에 대해 깊이 있게 문제제기를 해 가고 있는 필자와 현대불교에 박수를 보내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 불교계가 약자의 편에서 사회정의를 이룰 수 있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갖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이상호: 박광서 교수의 ‘종교자유’ 칼럼은 단순히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소명자료와 함께 논리적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그 대안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제시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논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김남기: 큰스님이 그리운 시절이다. 역대 큰스님들의 얘기를 신문에 연재식으로 펼치면 좋을 듯 싶다.

이남숙: 경전공부 8쪽 ‘선수행의 길잡이’ 코너는 수행에 대해 간결하게 풀이해줘 독자들이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심층분석기사 늘어야

이상호: 불교경전의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주는 내용을 실었으면 좋겠다. 일반인들은 팔만사천경이라고 해서 경전이 너무 많고 어렵다고 막연히 생각하는데 실제로 경전내용을 알게 되면 재미있는 내용도 많고 좀더 쉽게 불경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최임배: 심층적 분석 기사가 좀더 늘었으면 좋겠다.

김남기: 최근 신문에 문화재관람료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계속 끌고 가면 불교 이미지만 안 좋아진다. 종단과 정부가 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이 해결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보도를 늘렸으면 한다.

현대불교를 읽고
현대불교 634호에 소개된 ‘가야산 관리 놓고 갈등 심화’ 기사를 읽고
기사에서 볼 때, 해인사 측에서 토지소유주의 정당한 자구책으로서 등산로에 대한 폐쇄조치를 감행하였으나 가야산 관리사무소측에서는 그것이 불법적 행위라고 규정함으로써 상호간의 갈등관계가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는 사전에 해인사 측에서 정당한 권익을 위한 사전 법적 조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단 측에서 등산로 복구를 위한 실태조사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해인사 측은 공단 측에 대한 불신감으로 인하여 이러한 요구에 응할 의사가 없다는 듯이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해인사가 일방적으로 불법적인 무력행사를 감행하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만약 해인사에서 불법적으로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하고 있다면, 국가적 이익(결국 일반국민들의 이익과 연결)과 불교계의 이익이 상충되는 갈등관계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단순히 불교계의 외호 또는 대변인의 역할보다는 그 갈등관계에 대한 심층분석을 통하여 올바른 갈등해결의 방법을 모색하고 좀더 구체적인 대안점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성조, 경기도 분당)

현대불교 638호 이명박 후보 서울 봉헌 발언 해명 기사를 읽고
진정한 지도자는 종교에 대한 편견은 절대로 갖지 않는 법이다.
한 국가의 수장이 되려는 사람이 종교운운 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고 모두 하나님이 한 일이라느니 하고 있으니 종교운동 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벼슬은 하느님이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고, 하나님이란 팔만대장경 속에도 분명히 나오는 대목으로 하나님은 천상의 신장님을 다스리는 수장이라고 나온다.

아상 인상 중생상을 버려야 모든 것을 얻는다고 하였으니 무지역 무득 무식하면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라. (ID: 지도사)

독자의 소리
대장경 천년경축준비위원장은 즉각 교체하여야 한다
얼마 전 대장경 천년 경축 준비위원장에 위촉된 이어령씨가 일본에서 용산 온누리교회가 거행하는 러브소나타라는 기독교전도 대행사에 기독교인이 된 것을 선언하고 세례까지 받게 된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고 글을 쓴다.

그 분의 사회적 저명성으로 보아 능력을 활용하는 의미에서 위원장에 위촉된 것이겠으나 위촉기사를 본 것이 불과 몇 달도 채 안된 것 같은데 불교와는 모든 면에서 전혀 색채가 다른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기독교 신자로 그것도 해외에 선교하는 자리에 얼굴마담격으로 참석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불자로서 볼 때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며 그런 사람이 부처님 가르침인 대장경의 천년축제를 주관하는 장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하튼 이렇게 된 이상 본인 스스로 자퇴하는 것이 바람직스러우나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물러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도원)

종단간 존중하는 마음을
집 주변에 있는 모종단의 절에 가서 등을 접수하고 있는데 객스님이 들어왔다. 객스님이 ‘공양좀 하게 해주십시요.’
등을 접수받을 때 그 친절하던 스님의 얼굴이 갑자기 사자로 변하면서 차마 말하기 힘들 정도로 무안을 줬다. 객스님을 아예 00취급해 보기가 민망했다.

어릴 때부터 스님 대하기를 하늘 대하듯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같은 스님들끼리 이리 대할 수 있는지….
말로는 ‘자비’를 말하면서 큰 절 불사는 신도들이 삼보를 잘 받들라고 해주는 것인데….

종단이나 객스님들의 행실이 어떻다고 따지기 보다는 일단은 신도들 앞에서는 서로 존중하고 위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ID: 22)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2007-08-03 오전 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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