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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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법통 새로 정립
도의 국사 비문 초안 확정
조계종조 도의 국사 수법기념비문 초안이 확정됐다.
조계종조 도의 국사 기념비 건립 추진위원회는 7월 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회의실에서 제4차 회의를 열고 기념비문과 기념비문 서각자 선정 등을 논의했다. 이날 확정된 비문 초안은 추진위원장 지관 스님(총무원장)이 직접 작성했으며, 도의 국사의 생애, 구법활동, 법맥 등이 국ㆍ한문 혼용으로 수록됐다.

‘대한불교조계종종조도의조사입당구법기념비명’에서는 백장회해(百丈懷海), 서당지장(西堂智藏), 남전보원(南泉普願), 도의원적(道義元寂) 등이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 상좌였음을 밝혀, 도의 국사가 마조의 법맥을 이었음을 적시했다.

특히 “도의 조사가 지장 선사로부터 수법(受法)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이 근역(槿域)에 전래된 이후 염거(廉居)→보조체징(普照體澄)→황벽희운(黃檗希運)→임제의현(臨濟義玄) 등으로 이어졌다”고 기술했다. 이 부분은 비석이 세워질 중국 우민사측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우리 선종의 법맥에 염거ㆍ보조 선사가 추가됨으로 새로운 법통이 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도의 국사 기념비 명문 번역 전문.

양귀비(楊貴妃)는 할일없이 몸종옥(玉)을 부른것은
정부(情夫)였던 녹산(錄山)에게 암신호(暗信號)를 전(傳)함일뿐
이심전심(以心傳心) 전(傳)한다니 무슨법(法)을 전(傳)함인가?
불불조조(佛佛祖祖) 한결같이 이법(法)밖에 따로없다
남창(南昌)이란 옛군(郡)이요 뒷이름은 홍주(洪州)이며
서(西)쪽에는 노산(盧山)이요 남(南)쪽에는 형악(衡嶽)일세
안개덮힌 노산풍경(盧山風景) 천하사해(天下四海) 으뜸이니
혜원법사(慧遠法師) 동림사(東林寺)에 백련사(白蓮社)를 결사(結社)하고
일백이십(一白二十) 삼인동지(三人同志) 함께모여 발원(發願)하고
삼십여년(三十餘年) 만일(萬日)동안 출문(出門)밖을 나지않고
극락세계(極樂世界) 왕생(往生)하여 상품상(上品上)을 성취(成就)코자
북을치며 소리높여 육자염불(六字念佛) 하던도량(道場)
양조시대(梁朝時代) 제삼대(第三代)의 예장왕사(豫章王師) 갈심공(葛?公)이
우물속의 교룡(蛟龍)들의 격투(格鬪)함을 막기위(爲)해
삼만근(三萬斤)의 청동(靑銅)으로 대불상(大佛像)을 조성(造成)하고
집을버려 절을삼고 대불사(大佛寺)라 이름했다
개원년간(開元年間) 현종황제(玄宗皇帝) 각군(各郡)마다 절을짓고
연호(年號)따라 동일(同一)하게 개원사(開元寺)라 이름했다
신라시대(新羅時代) 김대비(金大悲)가 정법니(淨法尼)의 후원(後援)으로
입당구법(入唐求法) 하는도중(途中) 이곳으로 주석(駐錫)했고
마조선사(馬祖禪師) 선법중흥(禪法中興) 팔십(八十歲)로 입적(入寂)한후(後)
그의제자(弟子) 지장대사(智藏大師) 이도량(道場)을 계승(繼承)하다
당말(唐末)에는 영초주지(令超住持) 상람사(上藍寺)로 고치었고
송(宋)나라의 진종제(眞宗帝)는 승천사(承天寺)로 바꿨으며
정화년중(政和年中) 휘종제(徽宗帝)는 능인사(能仁寺)로 개편(改扁)하고
명태조(明太祖)인 주원장(朱元璋)은 어릴때엔 고아(孤兒)로써
황각사(皇覺寺)서 스님된후 이절에서 잠거(暫居)했고
등극후(登極後)엔 불법수호(佛法守護) 영령사(永寧寺)로 개체(改替)하며
순치년간(順治年間) 청세조(淸世祖)는 우청사(佑淸寺)로 환액(換額)하고
일구이구(一九二九) 혁명(革命)때는 우민사(佑民寺)로 변경(變更)했다
창건이후(創建以後) 오늘까지 천사백년(千四百年) 세월(歲月)동안
여덟 번을 바뀌면서 많은풍상(風霜) 겪었도다
태몽중(胎夢中)에 스님과의 같은상(床)에 앉은후(後)로
삼구월(三九月)이 경과후(經過後)에 옥동자(玉童子)를 탄생(誕生)했다
어떤스님 찾아와서 간곡(懇曲)하게 부탁( 託)하되
산(山)모퉁이 하수(河水)가에 태반(胎盤)줄을 묻으라고
큰사슴이 지키기를 일년여(一年餘)를 계속(繼續)하다
어릴때에 출가(出家)하니 그의법호(法號) 명적(明寂)일세
입당구법(入唐求法) 발원(發源)하고 구팔년사(九八年四) 갑자년(甲子年)에
사신선(使臣船)에 편승(便乘)하여 구법(求法)길에 올랐었다
오대산(五臺山)에 올라가서 문수보살(文殊菩薩) 친견(親見)할 때
공중(空中)에서 범종(梵鐘)소리 신기(神奇)한새 높이날다
육조영당(六祖影堂) 찾아가서 참배예(參拜禮)를 올리련데
예배전후(禮拜前後) 영당문(影堂門)이 자동(自動)으로 개폐(開閉)하다
개원사(開元寺)로 찾아가서 서당지장(西堂智藏) 친견(親見)하고
달마선사(達磨禪師) 들은즉시(卽時) 할연돈오(割然頓悟) 그경지(境地)가
법희선열(法喜禪悅) 쇄락(灑落)함이 석간(石間)에서 미옥(美玉)얻고
광명보조(光明普照) 지혜광(智慧光)은 방합리(蚌蛤裡)서 진주(眞珠)케다
정법안(正法眼)과 도의(道義)라는 건당호(建幢號)를 받은후(後)에
백장(百丈)찾아 대담(對談)한데 찬탄(讚歎)하여 말하기를
마조선맥(馬祖禪?) 송두리째 동국승(東國僧)에 귀속(歸屬)하니
일화오엽(一花五葉) 그아손(兒孫)이 온천하(天下)에 가득할세
삼칠년간(三七年間) 체재(滯在)하며 빠짐없이 참방(參訪)한후(後)
허왕실귀(虛往實歸) 가득채워 팔이일년(八二一年) 귀국(歸國)하여
삼처전심(三處傳心) 무상법(無相法)을 전(傳)하려고 애썼지만
달마대사(達磨大師) 양무제(梁武帝)를 만난같이 통(通)하쟎차
교종(敎宗)에만 젖은무리 괴변설(怪變說)로 취급(取扱)했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미도(未到)하고 기연미숙(機緣未熟) 탄식(嘆息)하곤
수제자(首弟子)인 염거(廉居)에게 전법(傳法)하고 입적(入寂)했다
염거(廉居)또한 전법(傳法)할길 못얻고서 입적(入寂)한후(後)
손제자(孫弟子)인 보조체징(普照體證) 가지산(迦智山)서 전포(傳布)하니
구산문중(九山門中) 가장먼저 도의선풍(道義禪風) 천양(闡揚)했다
구법(求法)하신 개원사(開元寺)에 이정석(貞石)을 세우노니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영세불망(永世不忘) 하여지다
남동우 기자 | dwnam@buddhapia.com
2007-07-30 오전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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