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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완역기념 역자초청 강연
언어로 언어를 깨부수다
7월 19일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 <벽암록 완역 기념 역자 초청 특강>에서 석지현 스님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최근 국내 최초로 <벽암록> 완역본이 출간돼 불교계 안팎의 찬탄을 받았다.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로 꼽히는 <벽암록>을 10년이란 시간 동안 번역해 다섯 권의 책으로 펴낸 지현 스님과 독자들이 7월 19일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만났다. 본사와 도서출판 민족사가 주최한 ‘벽암록 완역 기념 역자초청 특강-언어로 언어를 깨부수다’에는 150여 명의 불자들이 참석해 <벽암록>의 의미를 함께 되새겼다.

선(禪)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인 드야나(dhyana)를 음역(音譯)한 것입니다. 이 단어를 중국인들이 번역하기를 사유수(思惟修)라고 했습니다. 사유는 생각, 수는 생각을 닦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은 곧 번뇌 망상이라고 배웠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은 개울을 타고 흐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과 감정이 막혀버리는 것이 번뇌 망상입니다. 생각이나 감정이 곧 번뇌 망상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버려라, 감정을 버리라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생각은 나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깨달음은 생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에 끼어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선이라 무엇인가? 일이십년 전 미국에는 명상 붐이 일었습니다. 수많은 명상법이 인기를 얻었고, 서양인들은 명상을 통해 본성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명상의 가르침은 결국 언어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해서 말이 필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불립문자라고 한 것도 말이라는 사실입니다. 언어가 필요 없다고 하는 그것도 말이라는 것입니다. 언어를 부정한다는 것은 언어를 떠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모든 감정의 마지막 매개 수단인 언어를 통해 생각을 잡아보자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이러한 선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벽암록>입니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듯이 선을 위한 지침서인 벽암록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히려 예전에는 <벽암록>을 불 지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도가 너무 정확하니까 산에 오르지도 않고 지도를 보고 외우는 병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100년 후에 다시 <벽암록>을 복간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에서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바로 생각과 감정의 핀이 맞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제가 말을 하고 여러분이 듣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 보면서 본다는 것을 느끼는 것, 말하면서 말하고 있다는 것 느끼는 것이 바로 자각입니다. 이러한 자각 기능의 평형을 잡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선에서의 공안 안에는 딱 하나의 문(門)이 있습니다. 조주 스님에게 어느 스님이 “조사선의 본뜻이 무엇입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뜰 앞의 잣나무다”라고 답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암호입니다. 선에서의 공안은 깨달은 선사가 말하는 것의 표면적인 의미 말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하고 공안을 자꾸 파고들면 사사건건 의심이 생깁니다. 그것이 공안 참구라는 것입니다. 돋보기를 놓고 종이에 빛을 쬐면 초점이 하나로 맞춰져서 종이가 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벽암록>은 선의 1700공안 중 공부하기에 적절한 공안 100개를 뽑아 하나하나에 주석을 달고 평론을 따로 붙여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무(無)’자 공안 하나면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고 배웠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자 화두가 나왔을 당시는 공안이 일반화되어 있고 모든 공안에 대한 기초가 되어 있을 때 무자가 나온 것입니다. 공안도 어떤 공안을 참구하고 그 다음에 들어가야 뚫어진다. 이러한 것을 <벽암록>에서 설명해 놓았습니다.

공부를 하려면 선지식이 필요합니다. 선지식이란 쉽게 이야기하면 좋은 길 안내자입니다. 오늘날 선지식이 드물다고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할 때 <벽암록>을 봐야 합니다. <벽암록> 자체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는 자세한 지도이기 때문입니다.
본사 도서출판 민족사가 마련한 이날 특강에는 불자 150여 명이 참석해 <벽암록>의 의미를 되짚어봤다. 사진=박재완 기자

Q: 생각의 근원과 생각의 흐름에 대해 다시 설명해 주십시오.
A: 생각의 근원은 생각이 나오는 곳, 즉 직관입니다. 생각의 흐름은 직관이 파도치는 것입니다. 직관이 부딪치면 생각이 됩니다. 그것이 계속되는 것이 바로 생각의 흐름입니다. 생각의 근원에서는 생각의 흐름을 주시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나 감정으로 끌려가는 것은 윤회고, 그것을 주시하는 것이 해탈입니다. 생사해탈 한다는 것은 사고와 감정은 흐르되, 거기에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Q: 선정삼매란 무엇입니까?
A: 선정은 생각의 흐름을 주시하는 상태입니다. ‘나는 욕심도 없고 좋은 것 봐도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을 선정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아는데 집착은 없는 경지가 바로 선정입니다.

Q: <벽암록>에 혹 과장된 부분이나 빼고 읽어야 할 부분은 없습니까?
A: 물론 있습니다. <벽암록> 제일 앞에 나오는 ‘수시’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과장이 심합니다. <벽암록>을 복간할 때도 이 부분은 ‘과장이 심하므로 빼야 한다’고 적었고, 저도 번역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Q: 화두를 참구할 때 진언이나 자기가 만든 화두로 삼을 수는 없습니까?
A: 진언은 집중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본인이 만든 것은 공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것이 정설이다’라고 인정됐고, 그것에 대한 답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이 세운 의문은 자기도 가보지 못한 경지이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정확한 나침반이 없는 것이지요. <벽암록>에 있는 공안 중 하나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Q: 염불로도 깨달을 수 있습니까?
A: 물론입니다. 염불선도 있지 않습니까? 관세음보살 부르면서 ‘부르는 이것이 무엇이냐’하면 이것이 공안이 됩니다. 생각이 다하고 다해서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이것이 염불선입니다. 선에서는 공안을 통해 깨닫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것이 공안이 됩니다. 깨달은 이의 입장에서는 모든 언어가 공안입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게 안 됩니다. 그래서 공안이 필요한 것입니다.

Q: 꼭 공안을 가져야 선이 되는 것입니까?
A: 그렇진 않습니다. 고요히 앉는 자체로 수행인 묵조선에서는 생각이나 감정을 가만히 앉아 주시하는데, 이것이 너무 어려우니까 후대에 공안을 개발한 것입니다.

Q: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사성제 팔정도 연기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아라한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이론과 수행법이 필요한 것입니까?
A: 당시에는 누구나 영성이 높았습니다. 그러기에 사성제와 연기법 등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번잡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알음알이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공안 같은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현 스님이 말하는 벽암록
<벽암록>은 선종(禪宗) 문화의 총결산이다. 선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시작하여 언어문자를 통한 탐구〔不離文字〕로 그 절정을 이룬다. 당대에 이미 선승들의 문집인 <조주록> <임제록> 등의 선어록(禪語錄)이 출간됐고, 송대에 이를 근거로 <조당집> <전등록>과 같은 방대한 공안사서(公案史書)가 출간됐다. 이후 본격적인 공안의 주석서가 나왔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벽암록>(전10권)이다.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전등록> <조당집> 등에 나오는 1,700칙(則) 공안 가운데 100칙을 골라, 하나하나에 게송(偈頌)을 달았고, 원오극근(圜悟克勤)이 각칙(各則)에 수시(垂示, 서문)ㆍ착어(著語, 촌평)ㆍ평창(評唱, 비평과 해석)을 덧붙여 이루어졌다.
<벽암록>은 깡그리 불에 탔다가 약 190년 뒤에 되살아난 ‘부활의 책’이기도 하다. 원오의 제자 대혜종고(大慧宗杲)는 <벽암록> 판각과 잔본을 모두 회수해서 소각해 버렸으나 그로부터 약 190년 뒤에 거사 장명원에 의해서 복간됐다.

지현 스님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詩) 당선. 73년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이후 인도ㆍ네팔ㆍ티베트 등 불교유적지를 답사했다.

편ㆍ저ㆍ역서로는 <선시(禪詩)>, <선시감상사전> <바가바드 기따> <우파니샤드> <반야심경> <숫타니파타> <법구경> <불교를 찾아서> <선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여수령 기자 | snoopy@buddhapia.com
2007-07-20 오전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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