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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5년 금호미술관 신임 큐레이터에 선정된 신정아 교수(당시 26세)가 삼풍백화점 붕괴때 지하 1층에 갇혀 있다 8시간 만에 구출된 뒤 모 일간지와 밝힌 인터뷰 내용이다. 고교졸업 후 미국 캔자스 주립대로 유학한 그녀가 여름방학을 맞아 임시 귀국했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이후 한때 불안감으로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던 신 교수는 건물잔해에 눌렸던 사람들이 불안과 굴레를 벗고 다시 태어나는 주제를 그린 ‘자유속’에서 등으로 97년 캔자스주립대 유니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고 모 일간지는 보도했다.
다시 살아난다면 선행을 하며 살기로 했다던 신 교수는 왜 거짓말을 한 것일까? 11일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 교수의 로밍된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신 교수와 친분이 있었던 동국대의 한 관계자는 “신 교수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녔으며 비교적 부유한 것 같았다. 미술계에서는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고 들었고 재벌부인이나 유명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았다”며 “석사와 박사학위를 가짜로 위조할 줄 몰랐다. 충격적이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국대의 모 교수는 “보통 여교수가 되면 여교수협의회에 가입하는 것이 상례이다”며 “하지만 신 교수는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언론에 신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을 때 처음에는 정말 우리대학 교수가 맞는지 의아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기자회견 후 만난 동국대의 또 다른 교수는 “신 교수가 학교에 임용되기 전부터 미술계에서는 거의 소문이 다 났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 상당수가 신 교수의 임용을 반대했고 우려했다. 동국대 망신이다. 참으로 한심하고 창피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대담한 거짓말 행각과 도덕 불감증 때문에 각종 미술 관련 게시판에는 신정아 교수를 가리켜 ‘예술계의 여자 황우석’이라고 비꼬는 등 비난성 글들이 게재되고 있다. 최근까지 학예실장으로 근무했던 성곡미술관 게시판에는 “학위 위조, 논문 위조를 한 신정아씨가 기획하는 미술관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신정아씨가 기획한 전시를 본 사람들에게는 환불해 줘야 된다” “고졸 큐레이터 어이없다” 등 신 교수를 비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더욱이 광주비엔날레 감독의 가짜 학위 사건을 접한 미술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올해 초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자 선정 비리로 홍역을 치렀던 미술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학벌과 인맥을 중시해 주요미술기관의 요직을 밀어주는 관행과 풍토를 없애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미술행사를 앞두고 매번 불거지고 있는 내부갈등과 인사잡음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미술계 관계자들은 성토한다. 실제로 가장 대표적인 국제미술 행사인 광주비엔날레는 2000년에 열린 제3회 행사를 앞둔 1998년 말 비엔날레 재단이사회와 갈등을 빚던 최민 전시총감독이 해촉되는 등 크고 작은 잡음이 많았다. 또한 올해 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아르코 아트페어의 한국 주빈국 행사를 앞두고는 행사 커미셔너였던 큐레이터 김선정씨가 정부와의 마찰로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특히 김선정씨는 이번에 비엔날레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은 것은 동국대측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당사자인 신 교수의 참회다. 7월 13일 귀국해 모든 것을 밝히겠다던 신 교수의 약속이 지켜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7월 12일 파리발 비행기(대한항공, 에어프랑스, 전일본항공, 케세이퍼시픽) 탑승자 명단에는 신정아라는 이름 석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한편 신 교수는 1997년부터 여러 대학에 출강하며 금호미술관 수석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동국대 조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문화관광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 대우건설 문화 자문위원, 하나금융그룹 문화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신 교수는 이달 초 35세의 젊은 나이로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관련 국제행사인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격 발탁돼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