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이 사찰 동의 없이 경내지에 탐방로(등산로), 야영장, 주차장 등의 시설을 지정ㆍ설치ㆍ운영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또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사찰 동의 없이 전통사찰 경내지를 관리하는 것은 위헌적인 행위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로 했다. 조계종 문화재사찰위원회(옛 관람료위원회)는 7월 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제2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
문화재사찰위원회(위원장 현응)는 이날 ‘국립공원제도의 문제점과 위헌성-문화재관람료에 대한 시비의 본질’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채택하면서 △국가가 전통사찰 경내지(사찰림 등)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고 국민에게 개방해 마음대로 이용하게 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으로 하여금 사찰 동의 없이 전통사찰 경내지를 관리하게 하는 것은 위헌적인 행위다 △문화재관람료 시비는 자연공원법에 의해 국가가 전통사찰 경내지를 국민들에게 개방, 이용하게 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사안이다 △전통사찰 경내지(사찰림 등)에서 사찰의 동의 없이 지정운영하고 있는 국립공원 시설인 ‘탐방로(등산로), 야영장, 주차장’ 등은 불법무효다 △만일 사찰의 동의하에 전통사찰 경내지 내 ‘탐방로(등산로), 야영장, 주차장’ 등의 시설을 지정, 설치, 운영할 경우 손실보상 절차를 통해 손실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훼손된 자연환경에 대해서도 원상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사찰위원회는 “문화재보호나 자연보전 등 공공적 이익을 위해서는 소유권 침해를 감수할 수 있지만, 국가에 의해 종교활동, 문화유산보존, 자연자원보전에 관한 권리를 침해당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사찰과 불교계는 현재의 수많은 문화유산과 자연자원을 잘 보존관리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까지 전승해야 한다는 큰 책무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며 시민환경단체와 국민들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조계종, 문화재관람료 문제로 강경수
조계종이 정부를 상대로 손실보상금 청구 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강경수를 둔 것은 문화재관람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국립공원입장료 폐지 후 각종 언론에서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로 정부와 조계종이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에 1월 17일 이치범 환경부장관과 유홍준 문화재청장, 박화강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조계종은 문화재관람료 문제가 단순히 매표소 위치조정 문제가 아닌, 국립공원 내 전통사찰의 자연경관 및 역사문화경관 중요성, 불교문화재 분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인식 제고 등 복합적인 문제임을 제기했다. 이에 정부측과 조계종은 ‘국립공원 및 문화재관람료 제도개선협의회(이하 제도개선협)’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제도개선협은 실무소위원회를 두고 10여 차례에 걸쳐 정부와 조계종, 시민환경단체 참여해 머리를 맞댔다. 실무소위에서 조계종은 국립공원 및 문화재관람료 제도개선 관련 요청 사항을 제출했으나 정부측은 대부분 ‘수용불가’ 입장을 보였다. 또 6월 5일 열린 5차 실무소위에서 시민환경단체가 탈퇴 및 독자 활동을 선언했다. 27일에는 정부측이 ‘국립공원 내 사찰매표소 단계별 이전 추진계획(안)''을 조계종에 전달했다.
△정부, 조계종 요청 사항에 ‘부정적’
조계종이 4월 26일 열린 2차 실무소위에 제출한 요청 사항은 9가지다. 조계종은 △자연공원법상 ‘역사문화지구’ 설정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범위 확대 △국립공원 내 불교문화재 홍보 및 문화관광해설사의 불교계 기관 양성에 대한 제도적 인정 △전통사찰 내 불교문화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체계 마련 △국립공원 내 조계종 소유 시설물에 대한 운영권 귀속 △사찰 토지 국립공원 편입에 따른 보상 △국립공원 정부 직접 관리 △국립공원 관리부처의 합리적 조정 △문화유산의 제도적 체계화 등을 정부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측은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 범위 확대 △국립공원 내 불교문화재 홍보 및 문화관광해설사 불교계 기관 양성에 대한 제도적 인정 △전통사찰 내 불교문화재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체계 마련 대해서만 수용 및 일부 수용할 수 있지만, 다른 것에 대해선 ‘수용불가’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조계종은 6월 5일 열린 5차 실무소위에서 요구사항을 다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3단계로 2007년 9월부터 2008년 3월까지 14개 사찰의 매표소를 단계별로 이전추진하고, 향후 지원방안을 명확하게 하며, 중ㆍ장기적인 제도개선을 병행추진하겠다고 답했다.
△시민환경단체 문화재관람료 불복종운동 전개
조계종은 손실보상, 법제도개선 등 종단이 요구한 사항에 대해 정부측의 의지가 미약하다고 보고 있다. 조계종이 매표소 위치에 대한 조정안을 제시할 때 관련 지원 방안 및 법제도 개선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 불편을 이유로 시민환경단체와 등산객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종단에 14곳의 사찰 3단계 매표소 이전계획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무소위에 참여하고 있는 정부측 한 관계자는 “매표소 이전계획은 하나의 안일뿐 일방적으로 지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조계종이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실무소위도 더 이상 필요 없다는 판단이 든다”고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시민환경단체는 정부와 조계종을 싸잡아 비난하며 ‘문화재관람료 징수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한산악연맹 등 5개 시민환경단체들은 5일 “정부와 조계종은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2007년 6월까지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약속한 기간이 돼도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단계별로 매표소 앞에서 등산객들에게 관람료 없이 입장을 권유한다는 방침이다.
△감정대립 아닌 대화로 문제 풀어야
문화재관람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계종과 정부, 시민환경단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며, 감정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소장은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며 “서로 한발 물러나 대화로 풀 것”을 제안했다. 문화재관람료는 법적 근거에 의해 문화재보수유지 및 관리운영에 필요한 것이므로 반드시 내야 하지만, 감정적으로 대립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 제44조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 보유자 또는 관리단체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75조에는 준용규정을 적시해 놓고 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손옥균 팀장도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불복종운동을 전개하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면서도 “조계종에서 먼저 통행세 성격이 강한 매표소를 이전하면 보다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tip
사찰 토지 내 국립공원 시설 및 문화재 현황은?
조계종이 2007년 7월 3일자로 파악한 ‘사찰 토지 내 국립공원 시설 및 문화재 현황’에 따르면, 22개 조계종 사찰이 이에 해당된다. 국립공원 총면적 27억2614만3000㎡ 중 사찰면적은 2억1600만9960㎡로, 국립공원 토지 중 7.9%가 사찰소유다.
여기에 매표소 건물 22개, 탐방지원센터 20개, 화장실 80개, 야영장 8곳, 주차장 7곳, 탐방로 151.95km 등이 관광객 및 등산객을 위해 제공되고 있다. 또 국보 17점, 보물 61점, 사적 및 명승 3점, 중요민속자료 7점, 유형문화재 83점, 문화재자료 30점, 기타기념물 13점 등 총 214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