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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바라밀 선원 능허 선원장은 IMF라는 시절 인연 앞에서 철저히 망했던 경우다. “시장에서 콩나물 천원 어치도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 그러나 나락으로 향한 길을 극락으로 돌려놓았다. 선지식을 만나 각고의 정진을 한 결과였다.
능허 선원장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은 선지식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헐벗은 몸으로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다가 서울 보광사 조실 정일 스님을 만나 “죄 많은 이 중생을 살려 주십시오”라고 절복하는 순간 깨침의 씨앗이 발아했던 것이다.
“자네가 살아날 길은 있어. 하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일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기로 한 뒤로 능허 선원장은 삼천배 광명진언 등으로 정진 했다. 그 후 정일 스님으로부터 ‘무’자 화두를 받고 화두 일념의 정진에 각고의 세월을 보냈다. 3년이 넘는 기간 화두와 자신을 둘 아니게 계합시키는 수행을 통해 마침내 정일 스님으로부터 “성불 하였네”라는 인가를 받았다.
물론 단숨에 된 것은 아니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읽고 또 읽으며 그 대의를 깨치고 한 소식을 들었지만, 정일 스님은 “여래를 보았지만 조사선의 차별지를 뚫어야 한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덕산탁발화’와 ‘파자소암’ 두 공안을 통과하라는 것이었다. 능허 선원장은 목숨과 바꿀 각오로 3년을 정진했고 “조주여, 천 년 살림살이 오늘 나에게 들켜 버렸구나”라고 힘차게 외쳤다. 정일 스님도 손을 맞잡으며 “눈 밝은 사람은 속일 수가 없구나. 부처님도 불법이 이러하고 역대조사도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고 자네 또한 이러하기에 전할 수 없는 법을 자네에게 전한다”며 인가했다.
<이제는 반야의 노래를 불러라>는 능허 선원장의 구도역정과 깨침의 살림살이를 담백하게 담고 있다. 스승 정일 스님의 행장과 법문이 제1부를 장식하고 제 2부와 3부는 능허 선원장의 수행 정진 그리고 오도의 소식을 담고 있다. 마지막 제4부는 능허 선원장에게 ‘한 소식’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묶여졌다.
나락을 극락으로 돌려버린 능허 선원장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간절하게 당부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자리를 철저히 깨달아 무시(無始)로 실천하는 ‘착한 사람’이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