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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오전 7시 30분 임진각. 분단후 처음으로 열린 개성 영통사 성지순례길에 동참한 500명이 마지막 점검을 받느라 한창이다.
7시 50분, 파주 도라산 남측 CIQ(출입관리사무소)에 도착한 뒤 30분간 임국수속과 세관검사를 마친 뒤 정확히 8시 20분경 북한을 향해 출발했다.
비무장 지대를 5분 정도 통과하니 곧바로 북측 CIQ가 나온다. 남과 북은 느낌으로는 100여km 떨어진 것처럼 살아왔지만 직접 가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다시 버스에서 하차하여 30분간 임국수속과 세관검사를 마치니 9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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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개성공단을 거쳐 북한의 3대 도시중 하나인 개성시내로 접어들었다. 무언가 숨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성은 그것만으로도 속살을 전부 드러낸 듯 했다. 개성주민들의 옷차림과 일상 그 자체로도 북한의 실상이 피부로 절감된다.
시내를 빠져나와 나무 한그루 없이 벌목한 산등성이이를 돌고 돌아 아름다운 호수를 사이에 아스라이 보이는 황진이와 서경덕의 묘를 보며 한동안 달리니 영통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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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순례객들은 영통사 보광원에 들려 참배를 한 뒤 개성 영통사 복원 3주년 기념 및 성지순례 원만성취 기원 남.북 공동대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서 천태종 총무원장 정산 스님은 “영통사 성지순례를 통해 한국불교가 민족과 역사앞에 해야할 방향을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성지순례는 깊은 신심과 민족사랑 그리고 민족화해의 대작불사에 동참하는 공덕을 쌓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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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조선불교도연맹 심상진 부위원장은 “남한의 불교도들이 영통사를 성지순례한 것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영통사를 민족화합과 통일의 성지로 만들자”고 밝혔다.
법회를 마친 순례객들은 영통사의 유적을 돌아본 뒤 개성시내로 향했다. 시내 개성려관 식당에서 점심공양을 마친 순례객들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과 고려박물관을 찾았다. 개성시 부산동 있는 고려박물관에서는 고려 475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1000여년 수령의 아람드리 은행나무가 인상적인 성균관은 1089년 설립된 고려 최고의 교육시설이었다. 대성전과 명륜당 등 10여 채의 건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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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붙어 있는 개성역사박물관은 백열등 밑에 북한의 국보급 유물이 전시돼 보안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성 해설사의 유창한 설명을 곁들여 다채로운 유물과 유적을 전시해 순례객들로 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고려박물관에는 야외에도 북한의 국보유적 제 139호인 현화사 7층석탑등을 전시해 놓았다.
또 충절의 상징인 선죽교와 표충비는 순례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화재였다. 포은 정몽주의 선혈이 서려 있는 북한의 국보유적 159호 선죽교는 1216년에 건립된 선지교. 정몽주의 피살 이후 선죽교로 부르게 됐는 안내문이 있다. 지금도 혈흔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개성의 건축석조예술의 우수성이 돋보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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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관통하며 고려 초에 건립된 남대문은 개성성 내성의 정남문. 얼핏보니 문루에 연복사 종이 지금도 걸려 있었다.
한편 조선 중기의 한 기록에는 개성시내에 유명한 사찰만도 성내에 300곳이 있었고, 현재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태조 왕건이 고려 건국 이후 궁궐 주변과 송악산 기슭에 25개의 절을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찰이 폐사돼 남아 있는 사찰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했다.
오후 4시 20분 또다시 세관 및 출국수속을 마친 순례객들이 북측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과했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과하니 오후 6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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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3절로 유명한 박연폭포를 못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하루 개성순례는 내용이 풍부해서인지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는 평이 많았다.
서울에서 주변에 이만한 관광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고 해야 할까. 좀더 시설을 보완해 1박2일 코스의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더욱 값진 순례행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편 북한측 민족화해협의회 리창덕 부장은 “북한은 남측 천태종의 성지순례만 적극 협조하고 모든 요구를 들어줄 것” 이라며 “현대나 롯데를 통한 개성관광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