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백산의 전설, 초암사의 전설
큰 산에는 전설이 많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많지만 우리 사는 이 시대에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다. 소백산 국망봉 아래 죽계계곡에 위치한 초암사에도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초암사를 중창한 보원 스님이 그 주인공.
‘회갑 날, 잔칫상 앞에서 출가(出家)를 선언한 비구니 스님.’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수 십리를 걸어 다니며 탁발하여 법당을 짓고 종각을 세운 억척스러운 불사의 주인공. 하루 일반번의 염불로 중생들의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노스님.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절마다 형형색색의 연등 만들기에 분주하고 한 바탕의 잔치를 준비하는 이 즈음, 보원 스님을 한 번 친견하고 싶었다.
| |||
#반질반질한 염주알 같은 서원
“스님 아주 건강해 보이시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귀도 어둡고 다리도 아프고 그래요. 아침 잠 깨면 살아 있는 줄 알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하루 잘 산 것에 감사하고 그렇죠 뭐….”
“하루 종일 염불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중이 노는 입에 염불하는 거야 당연하죠.”
“염불 하시면서 무슨 원(願)을 세우시나요?”
“염불에 빠지면 이런저런 생각 끄트머리가 필요 없어야 하는데, 그래도 바라는 게 없지는 않지요.”
“그게 뭔데요?”
“식전에는 모든 불자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먼저 내고 염불해요. 낮에는 우리 스님네들이 공부 잘하여 성불하고 중생 제도 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고 저녁에는 미물과 더불어 모든 중생계가 불토(佛土) 되길 바라지요.”
“그렇게 마음을 내시고 염불을 하루 만 번 이상 하시는 거예요?”
“난 숫자 세지 않아요. 그저 염주를 돌리는 게 그쯤 된다고 하는데 저걸 열 바퀴 이상은 돌리죠.”
스님 곁에는 1080알 염주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반질반질 한 염주 알들이 스님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았다.
| |||
1911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한 보원 스님은 17세에 안동으로 시집을 갔다. 그러나 혼례를 치르고 10일 만에 남편이 홀로 일본으로 가버렸다. 3년 만에 귀국한 남편은 어쩐 일인지 따로 방을 썼고 이내 후실을 들였다.
후실에게서 연이어 4남매가 출생하니 그 양육 또한 스님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억척같이 일하고 친인척에 인정을 베풀고 무엇보다 작은 부인이 낳은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을 다했다.
회갑 날, 잔칫상이 푸짐했다. 정성스레 길러준 아이들이 ‘큰어머니’의 은공에 보답하고자 차린 상이었다. 친척들이 모여 축하를 하는 가운데 그날의 주인공이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못난 사람이 권씨 집안에 와서 60평생을 살아 왔으니 이제 출가하여 내 갈 길을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간 나를 위해 정성을 다 해 준 김씨 아우에게 호적을 물려주고 나는 떠나기로 작정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좋으면 박수 한번 쳐 보이소.”
스님이 겪어 온 세월이 담겨진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친척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크게 박수를 쳤다.
| |||
#중창의 원력, 되살아난 천년 고찰
영주 석륜선원에서 영선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한 보원 스님은 다음해(1962년) 인천 용화사에서 전강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보원(寶元)이란 이름을 얻었다. 수원 청련암에서 영선 스님을 시봉하다가 소백산에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길을 나섰다. 떠나기 전날, 동자승이 도량을 청소하는 꿈을 꾸었다. 도인을 찾아 소백산을 헤매다가 발길이 닿은 곳,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옛 도량 초암사였다. 꿈에 본 도량, 동자승이 청소를 하며 “진작 오신다더니 왜 이제 오십니까?”하던 그곳 이었다.
비가 새는 법당, 쓰러져가는 요사채 앞에 삼층석탑과 두 기의 부도만 서 있는 그곳에서 보원 스님의 중창 원력이 뿌리를 내렸다.
탑과 부도, 집안 기둥에까지 뱀 허물이 걸려 있는 피폐한 도량에서 미물들을 천도를 하며 시작한 중창 불사는 끊임없는 기도로 일관했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풍기나 순흥에서 수 십리 길을 걸어 다녔고 인근 마을은 안 간 곳이 없을 정도로 탁발을 했다. 참깨 농사도 짓고 솔잎을 따서 먹기도 했다.
철야정진을 하던 어느 날은 몸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기어이 병이 난 것. 그러나 스님은 ‘병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화두로 몸을 관하며 정진을 계속했다. 정진하다가 기절한 듯 잠에 빠졌는데 천상의 사람이 나타나 몸을 개미보다 작게 하더니 몸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해주었다. 그 뒤로 몸이 가벼워 졌는데 오늘날까지 큰 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런 스님의 정진에 감동한 지역 유지들과 기관장들이 조금씩 돕기 시작하여 6년 만에 대웅전을 지었다. 이후 대적광전 종각 요사채 등의 불사가 이뤄져 지금의 가람을 이루었다.
| |||
지금 진행중인 대웅전 보수공사가 끝나면 30여년에 걸친 중창불사는 마무리 되는 셈이다. 보원 스님은 "껍데기 불사는 내가 시작했지만 이제 주지 용운 스님이 법을 세우는 속불사를 잘 하실겁니다"라며 초암사가 명실공히 천년고찰의 역할을 다 하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