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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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1cm 큰 스님
불호령을 내리는 큰스님과 웃기만 하는 동자승이 있었습니다.

큰스님은 모든 게 못마땅했습니다. 상좌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미덥잖아 보였고 부처님께 절을 하는 모습도 시원찮아 보였습니다. 그는 쯧쯧 하고 혀를 차다가는 마침내 불호령을 내리고는 했습니다. 한번도 웃는 일이 없었습니다.

큰스님은 공양 상을 받고 젓가락으로 취나물 무침을 집어 씹다가는 그만 화를 버럭 내고 말았습니다.

“야, 이놈아. 나물 반찬이 어찌 이리 짜냐! 밥은 완전히 죽밥이구나. 반찬하나 밥하나 제대로 짓는 일도 공부다.”

마당을 쓸고 있는 동자승을 불러서는 꿀밤을 몇 대 먹였습니다.

“저런, 저런. 빗자루질 하는 꼴을 좀 봐라. 마당을 쓰는 건지 먼지를 일으키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너 만할 때는 마당을 쓸어도 먼지하나 안 나도록 했다. 그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저기 산 벚꽃 나무 밑에 떨어진 꽃잎은 왜 하나도 쓸지 않는 거냐. 화려한 꽃이 지면 보는 이의 가슴이 처량한 줄 모르느냐. 빗자루를 이리 다오. 내가 쓰는 법을 가르쳐 주마.”

꿀밤을 맞은 동자승은 큰스님에게 빗자루를 얼른 넘겨주고는 부리나케 달아나며 말했습니다.

“하이고, 큰스님. 저는 큰스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무 것도 몰라요. 먼지 하나 안 나도록 큰스님이 마당을 쓸면 되지요.”

동자승은 큰스님을 살짝살짝 돌아보며 소리쳤습니다. 그는 넓은 마당을 쓸지 않아서 좋은지 까르르 웃었습니다. 동자승은 무엇이 바람이 불어도 웃었고, 비가와도 환하게 웃었습니다. 꽃이 피어도 웃었고 꽃이 져도 웃었지요. 절 마당에 눈이 내리면 폴짝폴짝 뛰며 웃었습니다.

“조놈 좀 봐라. 냉큼 달아나다니? 절 시집살이가 얼마나 고된데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워야지. 날더러 빗자루 질을 하라고?”

큰스님은 할 수 없이 빗자루를 들고 산 벚꽃나무 아래 지는 꽃잎을 나무 밑둥치로 쓸어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빗자루 질을 한지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먼지가 안 나도록 꽃잎을 쓸어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빗자루를 나무에 세워두고 저녁에 동자승을 불러 단단히 혼을 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사이 동자승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흥얼거리는 염불소리만 절 마당으로 내려서고 있었습니다.

큰스님은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상좌들이 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절하는 모양을 보니 무릎 사이도 벌어지고 허리도 구부정하고 이마를 땅에 대고 손바닥을 받들어 올리는 모습이 간절하게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큰스님은 저렇게 해서야 어찌 한번이라도 부처님이 손바닥에 내려설 수 있겠는지, 상좌들의 마음가짐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큰스님은 화를 꾹 참고 선방으로 걸어갔습니다. 선방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참선중인 상좌들이 얼마나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지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상좌도 있고 딴 생각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상좌도 있었습니다. 큰스님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습니다.

“야 이놈들아! 도대체 참선하는 꼴이 뭐냐. 이렇게 밥만 축내다가는 다음 생에 축생의 몸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오로지 일념 하나로 정진해야지. 저자거리 처녀 생각하고 두고 온 부모 생각하고 온갖 헛생각으로 가득하구나! 에이 못난 놈들!”

큰스님의 불호령 소리에 참선하는 스님들이 놀라 그만 벌떡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스님들은 놀라서 간이 벌렁벌렁하는 것 같았지요.

동자승은 큰스님의 방에 불려가 큰스님이 저녁 공양을 마칠 때까지 꿇어 앉아 손을 들고 벌을 서야 했습니다. 그래도 동자승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방글방글 웃기만 했습니다.

“큰스님. 저는 언제 저녁 공양을 하나요?”
“이번에는 나물이 너무 싱겁고, 밥은 물기가 너무 적구나.”

큰스님은 동자승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공양상을 들고 온 상좌를 꾸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정성이 부실해서 어찌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겠느냐! 사과를 깍은 모양도 하나 같이 다르구나. 당장 짐을 싸들고 산을 내려가든지 해야겠다.”

동자승은 벌을 서고 있으려니 팔이 아파서 큰스님 눈치를 보고 슬그머니 위로 올린 팔을 내리다가 그만 큰스님의 호통에 팔을 위로 더 쭉 뻗어야 했습니다.

“벌을 제대로 못 서겠느냐?”
“큰스님, 배가 고파서 팔을 못 올리겠어요. 공양이 맛이 없으면 제가 대신 먹을까요?”

동자승은 큰스님의 공양 상에 먹을 것이 푸짐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니 더 배가 고팠습니다. 상 위에는 동자승이 좋아하는 부침개도 있고 두부전도 있고 백설기 떡도 있고 수박과 사과 조각도 탐스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야 이놈아, 내가 너 만한 때는 먹을 것이 없어 사흘을 내리 굶고 보리죽으로 연명할 때도 많았다. 쪼그만 녀석이 먹을 것만 탐하는구나. 그래 밥맛이 없으니 너나 다 먹어라.”

동자승은 냉큼 손을 내리고 공양 상에 놓인 음식과 과일 조각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큰스님, 다음에도 벌을 서고 싶어요. 또 불러주세요.”

동자승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방글방글 웃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큰스님이 불호령을 내리고 화를 낼수록 키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큰스님도 자신의 키가 줄어드는지 몰랐지만 두뼘이 적어질 쯤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큰스님은 그게 무어 큰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몸은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서 버리고 가야할 것이었으니까요. 큰스님은 키가 점점 더 줄어들었지만 불호령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큰스님의 키가 1cm까지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상좌들은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1cm 큰 스님의 키에 맞는 옷과 이불을 만들어야 했고 밥상도 새로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동자승이 늘 큰스님을 손바닥 위에 모시고 다니도록 했습니다. 작은 밥상과 아주 작은 밥그릇과 더 작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만들고 밥과 반찬은 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큰스님은 동자승 손바닥에 얹혀 절 마당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상좌들의 귀 속으로 뛰어 올라가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염불을 하는 소리가 낭랑하기 못하구나! 어디 저자거리 약장수도 너희들 보다는 낫겠다!”

큰스님이 동자승의 손바닥에서 허리를 굽힌 상좌들의 귀 속으로 뛰어 오르다가 그만 상좌의 귓구멍 속에 빠진 일도 있었습니다. 동자승은 실을 늘어뜨려 상좌의 귓구멍 속에 넣었습니다. 큰스님은 실을 잡고 귓구멍 속을 겨우 빠져나왔습니다.

동자승은 큰스님의 공양상이 너무 작아서 전처럼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 없는 일이 아쉬웠습니다. 참새 눈물만큼의 사과조각과 수박 조각, 꽃잎보다 더 작은 밥이 놓여 있는 상 앞에 앉아 있는 1cm 큰 스님이 딱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스님을 자꾸 웃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전처럼 다시 키가 커질지도 모르니까요.

동자승은 깃털로 큰스님의 겨드랑이를 간질이기도 하고 발바닥을 살살 긁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큰스님은 간지러워서 조금씩 웃기 시작했습니다. 동자승은 1cm 큰 스님을 손바닥에 얹어놓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큰스님. 귀머거리참새가 열 마리 앉아 있는데 포수가 한 마리를 잡고 헤아려 보니 여전히 열 마리가 앉아 있거든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아니?”
“에이, 그것도 모르세요. 큰스님은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서도 그것도 몰라요?”
“나는 참새 공부는 안 했다. 너는 아니?”
“그럼요. 왜 다시 열 마리 인가하면요. 머리 나쁜 포수가 잘못 헤아렸거든요.”

갑자기 큰스님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습니다.

큰스님이 웃을 때마다 키가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1cm 큰 스님이 다시 원래키로 돌아왔습니다. 큰스님은 늘 웃고 다녔습니다. 두 번 다시 불호령을 내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절 안에는 큰스님과 동자승의 웃음소리와 상좌들의 즐거운 염불소리가 흰 구름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산 벚꽃 꽃잎들이 그들의 얼굴에 가득 피어나듯 말이지요.
문형렬<소설가 본지논설위원> | jygang@buddhapia.com
2007-05-24 오전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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