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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되려면 ‘재분배의 지혜’ 갖춰라”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5월 16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이수그룹 본사 8층 응접실 창문밖으로 펼쳐진 한강을 내려다봤다. 김준성(88)이수그룹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니 순간 얄밉다는 생각을 했다. 속세는 분열로 얼룩진 정치권의 행태와 부쩍오른 물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민들의 고통들이 가득한데 말이다.

이런 걱정은 곧이은 김준성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경제계 원로인 김 회장은 한국경제의 현실부터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근면한 역량과 경제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는다며 올바른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김회장은 명실공히 한국근대화의 산 증인이었다. △대구은행장(1967년) △제일은행장(1975년) △외환은행장(1977년) △한국산업은행총재(1978년) △한국은행 총재(1980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1982년) △삼성전자 회장(1987년) △(주)대우 회장(1988년) △이수그룹 회장(1996년) 등의 화려한 이력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무엇보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또 등단한 소설가로도 재계에서 유명하다. 김 회장에게 초파일을 맞아 경제, 건강, 종교, 문학, 등에 대해 들어봤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저마다 후보들은 모두 경제 살리기를 외쳐대고 있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해결 방안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경제의 위기 인식부터 정립해야 합니다. 국민소득 1만5000달러에 3000억 달러 수출 달성, 주가 1600포인트 시대 등 외향적으로 보면 경제가 발전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우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해외투자를 늘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현재 외환 보유액이 너무 많습니다. 또한 수출을 장려하기 보다는 부실해진 내수 경제를 살리는데 역점을 둬야 합니다. 이어 청년 실업을 해결하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육성하는데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김 회장님께서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고 있습니다. 과거 혹은 현재 김 회장님의 경영 철학 중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으신지요?

-부처님의 사상과 가르침을 경영에 접목시키거나 반영시켜야 겠다고 특별히 의도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너무 거창한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업원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소 적자가 나더라도 물가가 인상되면 항상 종업원들의 임금 인상에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종업원들의 배가 불러야 질좋은 상품이 나오고 그래야 물건이 잘 팔려 회사의 이윤이 많이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나눔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회장님은 불교와의 첫 인연을 어떻게 맺으셨습니까?

-선대(先代)부터 독실한 불자 집안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아주 신심이 깊으셨죠. 초하루와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에는 꼭 절에 가셨습니다. 그래서 인지 나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불자가 됐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법(正法)을 따르려고 나름대로 노력해 왔습니다. 요즈음은 매일 집에서 새벽과 저녁에 예불을 올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반야심경> 사경을 합니다. 또한 아침에 출근하면 독서를 하는데 <간화선>과 <불교입문>과 같은 불서를 주로 읽습니다. 특히 <간화선>은 세 번째 읽었는데 앞으로도 물고가 트일 때까지 계속 읽을 작정입니다.

▲김 회장님은 불교를 어떤 종교라고 생각하시며, 불자들이 어떤 신행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올바르고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들려주세요.

-우리 불교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통해 얻은 연기법(緣起法)에 의해 모든 것은 ‘자업자득’이며 내세(來世)를 결정짓는 것도 자력(自力)에 의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선불교(禪佛敎)에서는 자성(自性)을 깨달으면 우리 중생 모두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같은 종교관은 우리 불교만이 지니고 있는 특색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들도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 정진하는 것만이 성불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자 개개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늘 생각을 열어놓아 자신의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자주 마음의 죽비를 내리쳐 스스로를 견책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 회장님의 집안에는 두 가지 종교가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 회장님은 불교, 미국에 계신 둘째 아드님은 개신교라는데 혹시 집안 내 종교 갈등은 없으셨는지, 어떻게 슬기롭게 종교문제를 헤쳐 오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불교지만 둘째 아들과 며느리 몇은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자식들이 미국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유학 온 사람들과 교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양종교를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집안 내에서 종교적인 갈등은 없었습니다. 다만 몇 년 전 미국서 살고 있는 둘째아들이 잠시 귀국해 집에 들렸을 때 한 번은 하느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길래 내쫓은 적이 있었습니다. 막상 그러고 보니 아버지로서 마음이 안좋아 나중에 위로해 줬지요.

그 이후 자식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지만 분명히 우리 집안의 종교인 불교에 대해서는 조금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불교입문> 책 10여권을 사서 자식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87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시며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 줄 압니다. 김 회장님의 건강 비결은 무엇입니까?

-매일 7000보씩 걷습니다. 또한 새벽 5시에 기상하면 10여분 정도 경락마찰을 합니다. 눈, 코, 입 등 신체의 모든 부위를 36차례씩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경락 마찰을 한 뒤 미지근한 물로 ‘냉수마찰’을 하고 복식호흡을 합니다. 이 같은 아침운동에 총 1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술과 담배를 끊고 철저히 채식을 합니다.

▲김 회장님은 1957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래 27편의 소설을 발표한 문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종교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을 펴낼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조금 들려주시지요.

-그동안 <욕망의 방> <비둘기의 역설> <복제인간> 등 몇 권의 소설집을 펴냈습니다. 내 소설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존재론’과 ‘풍자’ ‘경제’ 등인데 요즘은 선(禪)에 관한 소설을 구상중입니다. 제목은 ‘불립문자(不立文字)’로 정해 놨는데 늦어도 내년쯤에는 펴낼 생각입니다.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보편적 명제의 형태로 정언(定言)을 세우지 않는다는 입장, 즉 경전 문구에 대해서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태도가 크게 와 닿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증권, 부동산 등 부를 축적하고 노후 대책을 위해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시중에는 ‘부자 되는 법’을 주제로 한 책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우리나라도 부자의 개념이 달라지면 이런 현상이 줄어 들을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록펠로나 소로스, 빌게이츠 같은 큰 부자들은 반드시 사회에 자신의 부를 기부합니다. 부자는 분명히 어느 사회나 존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부의 재분배 이것이 앞으로 우리나라 부자들이 가져야할 ‘화두’라고 봅니다. 이렇게 부자의 개념이 달라진다면 부자가 되려고 지금처럼 혈안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입장에서 들으면 뜬 구름 잡는 소릴지 모르지만 그런 마음 자세를 갖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김 회장님은 영원한 현역으로 많이들 알고 계십니다. 회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을 밝혀주십시오.

-올 6월 1일이 미수(米壽)가 되는 날입니다. 이때 여섯 권의 문학전집 출판기념회를 가질 생각입니다. 또한 앞으로 올해 안에 경제권련 책을 한 권 더 펴낼 것입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쓸 것입니다. 불자로서 도심에 포교당을 하나 세울 원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인생을 회향하기 전에 불자들이 언제든지 와서 편하게 기도 정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글=김주일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7-05-25 오전 1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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