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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암대종사 수행학림이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평창 월정사(주지 정념)에서 개최됐다. 월정사와 현대불교신문사(대표이사 혜월)가 공동주최한 행사에서 한암사상연구 학술연구세미나도 13일 월정사 대법륜전에서 열렸다. 세미나에서는 신규탁 교수(연세대 철학과)가 ‘선종사 지평에서 본 방한암 선사’를, 고영섭 교수(동국대 불교학과)가 ‘한암의 일발선 : 장종과 교어의 마찰과 윤활’을, 김종진 교수(동국대 국문과)가 ‘한암 선사 참선곡의 문학적 특성과 문화사적 의의’를,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한암의 서간문 고찰’을 각각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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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탁 교수(연세대 철학과)-선종사 지평에서 본 방한암 선사
한암 선사는 ‘간화(看話)’를 하거나 ‘반조(返照)’를 하거나 어느 수행을 하거나를 막론하고 여실하게 참구해 지해(知解)를 쓸어버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간화’와 ‘반조’ 사이에 우열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체의 사량분별 즉 지해(知解)를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화두’를 간(看)하는 선을 수행하게 하다가 그게 완전하지 못한 수행자에게는 ‘반조’하는 선 수행을 하게 한 것이고, 반대로 ‘반조’하는 선 수행을 하다가 그게 제대로 되지 못한 자를 위해 ‘화두’를 간하는 수행을 하게 한 것이다.
한암 선사는 ‘반조’와 ‘간화’ 모두를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무자(無字) 화두’만 들라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당대(唐代)와 다른 송대(宋代) 선(禪)의 특징은 ‘지해’를 떨쳐버리는 수행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것이 ‘간화’이다. 그렇다면 아무 화두나 간하면 됐지, 하필이면 ‘무자 화두’인가? 이 점에 대해 한암 선사와 그의 스승 경허 선사께서 명쾌하게 답을 내놓는다. 어떤 화두를 간하든지, 화두를 간하다가, 화두가 사라지는 순간이 오면 그 순간에 당장 ‘무자 화두’를 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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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 교수 (동국대 불교학과)-한암의 일발선 : 장종과 교어의 마찰과 윤활
한암의 일발 가풍은 바로 이 자기의 가슴속에 우러나오는 언어(胸襟)와 고삐를 정확히 잡아당기는 언어(把 )의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으로 그는 천고 속으로 ‘물러나며’(藏 ) 참여할 수 있었고, 삼춘으로 ‘나아가며’(巧語) 침묵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침묵과 참여를 아우른 살림살이를 한암의 일발선풍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장종’과 ‘교어’가 마찰을 넘어 일발(一鉢)로 윤활되고, ‘흉금(胸襟)’과 ‘파예(把 )’가 응축을 넘어 일발로 확산되는 역동적 지점 위에서 한암의 일발선풍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암은 ‘법’을 ‘묘법’으로 열어감으로써 법화와 행리의 소통의 장을 마련했고 그 스스로 그러한 모습대로 살았다. 그의 살림살이는 흉금과 파예의 선풍을 넘어 활발발한 일발의 선풍으로 응축되고 확산됐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흉금의 언어와 고삐를 당길 때를 정확히 아는 파예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참여와 침묵, 흉금과 파예의 두 축이 응축되는 한암의 살림살이는 다시 무소유와 무집착과 무분별에 입각한 일발선풍으로 확산됐다. 그리고 법화와 행리의 수렴은 다시 장종과 교어의 윤활을 통해 일발 선풍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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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 교수 (동국대 국문학과)-한암 선사 참선곡의 문학적 특성과 문화사적 의의
한암 <참선곡>의 자리는 불교가사의 작시원리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대중의 수용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에 있다. 동안거에 참여한 대중을 넘어서 일반 대중들에게 참선의 진리가 전달되도록 기존의 염불권장의 가사에 익숙한 시문법을 활용해 화자와 청자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암은 수행에서 보여주는 선사로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불교가요 제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참선수행의 노래를 제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가사라는 형식적 면모와 참선의 소의경전에 충실하고 있다는 내용적 측면에서 모두 그러하다.
근대불교지성인으로서의 한암의 실천적 면모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전통적인 방법을 택하고 이를 고집스럽게 지킴으로써 외풍에 대응했다는 점이다. 그의 문학 역시 문학사에서 걸출한 작품이라거나 시대를 앞서간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심결〉의 핵심내용을 바탕으로 한 선수행의 요체를 전달하되, 대중에게 널리 전승되었던 불교가사의 여러 관습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에 충실한 마지막 불교가사를 제작하고 있다는 것이 실상에 가까운 평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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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화 대표 (민족사)-한암의 서간문 고찰
한암은 경봉에게 보낸 두 세 편의 서간에서 깨달은 뒤의 수행 즉 오후보임(悟後保任), 오후생애(悟後生涯)가 깨닫기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깨달은 뒤에도 그 마음을 잘 간직하는 수행=보임을 하지 않고 방종한다면, 결국 깨닫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 결과는 오히려 깨닫기 이전보다 더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후수행의 방법으로써 한암은 목우행(牧牛行)을 제시하고 있다. 소가 풀밭으로 들어가면 고삐를 당기는 것처럼 망념이 일어나거나 또는 마음이 객관적 대상을 만나서 끌려갈 때엔 즉시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잡아 당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눈병에 걸리거나 눈에 티끌이 들어가면 하늘에서 공화(空花)가 떨어지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번뇌망념이 남아 있으면 제거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암은 여기서 더 나아가 ‘오후수행(悟後修行)’ ‘오후보임’ ‘오후생애’에 대해 그 방법을 확실히 안 뒤에는 알았다는 생각마저 떨쳐버려야만 진정한 ‘오후수행’ ‘오후보임’이 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알았다는 생각=집착이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아직 완숙한 깨달음의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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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 일대기 그린 판소리‘한암가’
신명나는 장단에 어깨춤 절로
“오대산아 어쩌란 말이냐 오대천아 어이 할꼬 한 마리 학이되어 창공에 노니시며 무상한 몸 소진하여 원하옵고 원하니다 조계일적 사자후가 만만대에 전해지고 대용현전 부존궤측 항하사겁 전해지소서.”
걸죽한 남도소리가 월정사 대법륜전을 휘감아 돈다. 조영재(판소리 5호 이수자) 명창의 소리에 “얼씨구” “잘하다”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이규호(중앙대 판소리과 교수) 고수의 장단에도 신명이 묻어난다. 그는 영화 ‘천년학’에서 송화의 고수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한암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판소리 ‘한암가’ 완창이 처음 선보였다. 스님의 일대기를 판소리로 만든 것은 이례적이다. ‘한암가’를 만든 이는 장용철 화백. 그는 ‘참선곡’을 보고 판소리 장단에 맞겠다 싶어 2005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장용철 화백은 “40분 분량으로 한암 스님의 선사상을 보이기에는 무리”라며 “일종의 맛만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판소리의 은유와 해학은 일종의 방편설”이라는 그는 “역대 조사스님들의 일대기도 판소리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