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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멀리 와서 이렇게 만나뵙게 되니 대단히 반갑습니다. 행복한 삶으로 가는 네 가지 디딤돌 - 신해행증(信解行證) 중에서 행(行)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가 맡았습니다. 마침 쌍계사 승가대학에서 사교반 강의를 하고 있는데 지금 가르치고 있는 과목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입니다. 대승기신론은 신해행증의 구조를 잘 갖추고 있습니다.
먼저 대승기신론의 핵심을 말씀해 드리면,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 사신(四信) 오행(五行) 육자(六字) 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대승기신론의 핵심사상입니다.
처음 일심은 한마음, 다음 이문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음에 문이 두 개 있다는 뜻인데 즉 하나는 심진여문(心眞如文)이고 하나는(心生滅門)입니다. 그다음에 삼대라고 하는 것은 체대(體大), 상대(相大), 용대(用大)입니다. 체상용(體相用) 해서 이문(二門)에서 삼대(三大)가 벌어집니다.
삼대라는 것을 어렵게 이야기 하면 체상용인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몸, 마음, 본마음 이것을 삼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본마음자리 즉 성품이라고도 하죠, 이것이 체대(體大)입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한 생각 일으킨 자리가 상대(相大)입니다. 그 다음에 몸으로 나툰 자리가 용대(用大)입니다.
부처님 몸이 세 개 있다고 합니다. 첫째가 법신불(法身佛) 둘째가 보신불(報身佛) 셋째가 화신불(化身佛)입니다. 우리도 세 개입니다. 법신불자리가 바로 체대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마음’ ‘참 나’ 자리입니다. 그래서 법신불 자리는 모양으로 볼 수 없고 소리로 들을 수 없다고 하는데 바로 금강경에서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만약 몸뚱이로 나를 보고자 하거나 음성으로 구하고자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으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보신불 자리는 한 생각 일으킨 자리라고 합니다. 무슨 생각을 일으켰어요. 중생제도의 한 생각을 일으킨 자리가 바로 보신불 자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미타부처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이런 분들이 한 생각을 일으키신 분이죠.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생각을 일으킨 자리, 그 자리를 상대(相大)라고 합니다. 화신불 자리는 몸뚱이로 나투신 자리죠.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조선시대 오대산에서 세조를 낫게 한 문수보살님도 몸으로 나투신 분이기 때문에 화신불입니다. 대(大)는 ‘크다’라는 의미보다는 요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디서 나오느냐. 한마음에서 나옵니다. 중생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여문은 법신불 자리고, 생멸문에서 보신불, 화신불이 나옵니다. 에너지로 비유하면 본마음은 순수 에너지, 마음은 파동에너지, 몸은 뭉친 에너지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가 기본적인 기신론의 사상인데 신행행증하고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첫 번째 믿음은 사신(四信)과 연결이 됩니다. 네 가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데 첫째 불(佛), 둘째 법(法), 셋째 승(僧), 삼보에 대한 믿음과 넷째 진여(眞如)에 대한 믿음입니다. 본마음 참나 자리에 대한 믿음입니다.
불교에서는 귀의한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귀의한다’라는 말은 돌아가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돌아가 의지를 하느냐. 다름 아닌 진여자리로 돌아가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삼귀의에 나오는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을 하는데 진여자리로 돌아가 삼보에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불성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서 귀의한다는 뜻이며, 이로 인하여 본인 스스로를 의지처로 귀의처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이제 오행(五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본론입니다. 네 가지 믿음을 가지고 나서 다섯 가지 행을 해야 한다는 입니다. 무엇을 오행이라 하냐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이 말을 다시 하면 대승보살이 행해야 할 육바라밀 행을 뜻합니다. 대승불교의 육바라밀을 대승기신론에서는 오행으로 정리를 했는데 대승기신론이 성립되었을 당시 육바라밀이라는 개념이 아직 성립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행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내용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행의 첫 번째가 보시입니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왜 좋아합니까? 복을 주니까 좋아하죠. 복덕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이기 때문에 절에 가면 복을 받는다라는 생각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을 빼앗아 가면 좋아할 사람이 없습니다. 보시는 주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보시행이 육바라밀 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 마음 먹어라’ 마음가짐을 이렇게 하고, 두 번째 ‘머무는바 없이 베풀어라.’ 했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베풀어라’ 이 말이 보시를 행하라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만 하면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마음을 먹고 머무는바 없이 베풀면 그것이 바로 보살행이고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금강경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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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금강경독송회라는 모임에서 매일 금강경 7독씩을 합니다. 금강경을 독송할 때 ‘일체중생을 제도하겠습니다. 머무는 바 없이 베풀겠습니다.’ 이렇게 서원을 세웠습니다.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구걸하게 됩니다. ‘부자 되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사업번창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이것을 제가 뭐라 이름을 붙였냐하면 ‘구걸형 기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다른 종교는 구걸형 기도 밖에 없어요. 종이나 노예는 구걸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를 바로 배운 사람들은 발원형 기도를 해야 합니다. 구걸하는 마음은 비굴한 마음이고, 주는 마음은 떳떳한 마음입니다. 구걸하는 마음은 눈치를 봅니다. 여기 계신 불자님들은 절에 가셔서 기도할 때 비굴하게 무엇을 해 달라고 하지 말고 부처님에게 탐진치 삼독을 드리십시오.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맡기십시오. 이렇게 하면 주는 마음이 됩니다. 발원형 기도는 끝이 ‘하겠습니다’라고 끝납니다.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마음을 행복하게 먹겠습니다’라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마음을 넉넉하게 먹겠습니다.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십시오. 밀어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은 말이 됩니다. 내가 노력을 하고 주체가 되면 다 됩니다. 내 인생을 부처님 마음대로 행복하게 해주고 이런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고, 그렇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가 지계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인데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고 도둑질하지 말고, 사음하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고, 음주하지 말아라. 이렇게 오계를 지키는 삶입니다.
사냥꾼에게 노루가 쫓기고 있는데 사냥꾼이 노루간 곳을 물어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때는 거짓말을 해야죠. 살생중죄를 피하기 위해서 망어중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개차법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절대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중도사상입니다.
세 번째가 인욕인데 그대로 풀면 욕됨을 참는다는 뜻입니다. 욕됨을 참는 것은 아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공부입니다. 아상이 얼마나 닦였나 시험해보는 방법이 있어요. 누명을 씌우는 거에요. 그러면 아상이 없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덤덤하게 넘어가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하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마음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억울한 소리를 하고 반응을 보면 됩니다. 사람마다 도장을 가지고 있어요. 첫째 진흙도장, 둘째 물도장, 셋째 허공도장을 가지고 있어요. 진흙에다가 도장을 찍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국이 깊이 새겨지죠. 다음 물에다 도장을 찍으면 찍는 순간 출렁하고 다시 원상태로 되죠. 허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찍히지 않습니다. 마음이 허공같은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표가 안 납니다. 물과 같은 사람은 잠시 주춤하지만 금방 다시 그대로 돌아갑니다. 진흙도장은 세월이 가도 남아 있죠. 마음이 허공같은 사람은 표가 안나죠. 무슨 도장인지 각자 생각해 보세요.
다음이 정진인데 꾸준히 공부를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하루에 삼십분 씩 이라도 매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달 내내 놀다가 하루 날 잡아서 철야정진 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꾸준함이 중요한데 물방울이 돌을 뚫죠. 계속 같은 자리에 수없이 떨어지니까 바위를 뚫습니다. 수행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입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요령으로 수행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최고의 힘을 얻을 수 있어요.
그 다음은 지관입니다. 기신론에서는 지관이라고 하는데 육바라밀에서는 선정이라고 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니까 지혜가 생겨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오행(五行) 즉, 보시에서 시작해서 지혜로 마무리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이라고 합니다.
육조단경에 보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라 라고 나옵니다. 지금 내 마음에 챙기는 것이 염하는 것이에요. 입으로는 마하반야바라밀하고 다른 생각하면 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념신행(口念身行, 입으로 염하고 몸은 행하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염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포인트입니다. 내가 하는 소리를 내가 듣는다. 이러면 삼매가 빨리 옵니다. 잡념이 일어나면 아 내가 잡념이 일어났구나 하면서 다시 듣는데 열중합니다. 관세음보살, 마하반야바라밀을 하든 자기가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잡념이 사라집니다. 듣는데 열중하면 삼매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능엄경에 나오는 이근원통(耳根圓通)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지은 행불송(行佛頌)을 합송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창조합니다.
지금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부처의 행 그것은 머무르지 않는 삶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더불어서 행동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