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6.29 (음)
> 종합
"전 지구적 문제 대답할 종교는 불교"
시인 김지하씨 화계사 특별 강연

시인 김지하씨가 4월 29일 서울 화계사(주지 수경)에서 특별강연을 했다. ‘타태아기영가천도를 위한 49재’ 기간 내 열린 강연에서 김지하씨는 불교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불교의 시대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타태아기영가천도를 위한 49재는 생명의 중요성과 더불어 성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출 수 있도록 청소년들과 성인불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전 원래 가톨릭이었습니다. 그러나 7년간 독방에서 여러 가지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불교 공부를 했기 때문에 불교가 제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나올 때 한 외신기자가 ‘현재 당신 사상의 현 주소가 어디인가’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내 눈의 망막은 불교고 눈동자는 동학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불교에 대한 체험 3가지를 얘기하는 걸로 오늘 강연을 대신하겠습니다. 제가 불교를 처음 접한 건 목포에 계셨던 외할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세군데 절 일으키신 대화주였습니다.

목포 유달산 달성사라는 절에서 커다란 종을 불사하는데 그 종에 제 이름을 넣었다고 합니다. 당시 외할머니께서 ‘우리 울램이에게 복보다 큰 지혜를 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제 어릴 때 별명이 ‘울램이’인데, 제가 하도 울어서 붙은 것입니다. 제가 자꾸 우는 것을 보고 외할머니는 ‘이놈은 크게 출세를 하는 것보다 공부를 할 녀석 같다’고 하셨답니다. 눈물이 공부와 무슨 관계인가. 불교적인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식으로 해석한다면 고통을 모르고서는 불교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외할머니는 부처님 무릎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로도 불교하면 제 머리에는 눈물과 공부와의 관계입니다. 물론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신 공부가 요즘 학생들 공부하듯이 외우는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공부나 지혜 같은 것들을 전제한 것이겠지요. 불교에 대한 첫 기억은 눈물과 공부였습니다.

불교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독방에서 7년을 지낼 때입니다. 스님들이 무문관에서 정진하는 것처럼 혼자 있다는 것은 지혜를 깨닫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평상심으로 버티기 힘듭니다. 그래서 법률에서도 5년 이상 독방에서 못 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방에서 5~6년 동안 있으면 반드시 정신착란이 오게 됩니다. 내 안으로 벽이 들어오기도, 천정이 내려오기도, 바닥이 올라오기도 하죠. 소리치고, 몸부림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독방 벽에 모니터가 붙어있어서 중앙정보부가 제 행동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달려와서 항복해라, 반정부 활동 안하겠다는 각서 쓰면 내보내 준다고 회유했습니다. 100번을 그렇게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한국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지지운동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상징적 존재처럼 됐는데, 제가 손을 들면 ‘김지하 엉터리다’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 순 엉터리다’로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계절이 이맘때쯤이었습니다. 제가 있던 서대문 감옥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지었던 건물이기 때문에 유리창이 없었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민들레 씨와 가죽나무 씨가 날아 들어와 흙먼지와 함께 쌓입니다. 비가 온 뒤 싹을 틔우는데 그 모습을 보고 까닭 없이 눈물이 터졌습니다. 몇 시간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허공에서 ‘생명’ ‘생명’ ‘생명’이라는 울림이 메아리쳤습니다.

민들레나 가죽나무 따위의 조그만 생명도 벽에 달라붙어 생명을 틔우는데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가 생명의 비밀만 깨달을 수 있다면, 감옥 안에서 내 아내와 친구, 아이들과 같이 있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생명에는 안팎이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개똥철학이지요. 그러나 그 개똥철학이 저에게는 목숨을 거는 문제였습니다.

제 감방 몇 개 건너에 기골이 장대한분이 있었습니다. 청담 스님 시자를 했던 분인데 환속한 뒤 수표사건으로 들어온 분입니다. 그 분과 통방을 하면서 참선이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지 물었더니 몇 가지 가르쳐줬습니다.

가부좌를 틀기 시작했습니다. 백일 동안 참선을 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시를 쓰려면 인간의 내면을 알아야 됩니다. 내면의 아픔이나 후회, 괴로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문학으로서의 시는 없습니다. 저도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천만이었습니다. 외부의 괴로움만 생각했지 내면에 대해선 깊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선을 하면서 극에서 극으로 이동하는 체험을 했습니다. 한 사흘은 시커먼 뻘 속에 있고, 한 나흘은 갈대밭에 있었습니다. 엄청난 그리움에 휩싸여 있다가 엄청난 증오심이나 혐오감에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청담 스님 시자를 했던 분에게 “절대 휩쓸리지 말라. 상이 나타났을 때 또 절대 외면하지 말라. 중립을 해야 한다. 그게 요체다”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참 어려웠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참선을 시작한 지 100일째 되는 날 박정희 前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밑바닥에서 고무풍선 세 개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 고무풍선은 제 마음의 말이겠죠. 첫 번째 풍선은 ‘인생무상’ 두 번째 풍선은 ‘안녕히 가십시오’ 세 번째 풍선은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였습니다.

차지철 前 대통령 경호실장이 총살대상 1000명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저였는데, 그만큼 저를 미워했다는 증거죠. 하지만 저도 반은 미움으로 투쟁했습니다. 학생시절 한일굴욕회담 반대 운동을 할 때 부모님이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서 전기고문을 10여 차례 당했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고혈압에 반병신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직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새벽에 산에 올라가 이를 악물었습니다. ‘박정희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제거하겠다.’ 그런데 ‘안녕히 가십시오’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란 얘기가 나온 것은 놀라운 것입니다. 여기서 제 참선은 깨졌지만 박정희 前 대통령과의 악연을 끝났습니다. 참선 때문에 원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죠. 감옥에서 나와서 생명운동을 했습니다. 후배들이 배신자 변절자라고 해도 끄떡없었던 것은 그 체험 때문입니다.

불교가 왜 망막이요 동학은 왜 눈동자냐.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10년 동안 지리산에서 적어도 10만5000여명의 혁명군이 지리산에 주둔했습니다. 그때 무얼 먹고 살았을까요. 절입니다. 절이 혁명군을 먹여줬다고 판단합니다. 소문도 그렇습니다. 제 망막이 불교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동학이 무엇입니까. 개화 이전에 자주적으로 스스로 근대화하려는 움직임 중의 하나입니다. 그 배경에 불교가 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민중들의 반역적인 활동과 불교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신돈의 개혁 실패 이후 금강산과 지리산에 본거지를 틀고 활동했던 ‘당취’라는 비밀결사운동이 그 예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반역 사건 중 1565건에 스님이 관련돼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백성들이 배고프고 살기 어렵기 때문에 불교가 관심을 보인 횟수인 것입니다.

동학은 생명의 종교입니다. 불교도 불살생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지구온난화나 생태계 오염 등 전 지구적인 문제에 대답할 종교는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에서는 10년 전부터 온난화 때문에 대재앙이 온다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은 콧방귀를 뀌다가 올해부터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습니다. 자연 생태계가 이상하게 변해가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상으로 이걸 막을 수 있겠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세기 동학계통의 사상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주적 보편진리로서의 불교입니다.

제가 최근 중도(中道)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주적인 문제를 포함해서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도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남과 북,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영남과 호남,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기업가와 노동조합, 디지털세대와 아날로그 세대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이 극단적인 적대관계로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란 무엇입니까? 양극단도 아니고 가운데도 아닌 것입니다. 차원을 바꾸는 것, 즉 개혁입니다. 절집에 보면 삼성각이나 칠성각이 있는데 이것은 민족신앙입니다. 거대한 보편진리와 민족적인 생명사상이 결합된 것이 절집의 전통입니다. 제 결론은 이것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의응답
△한국의 민주주의 방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민주주의가 어떻게 가능한가. 성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요 분배만으로도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민중의 삶의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가 되는 다수와 소수, 유상층과 노동자층이 결합할 수 있는 길이 중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역할이 굉장히 커져야 합니다.

△사회운동 측면에서 불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지금 법률은 르네상스 이후 인간과 인간사이의 계약이 토대로 됐습니다. 즉 인간중심입니다.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인간과 자연사이의 생명의 계약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단 계약이라는 서양언어 대신 소통, 자비, 사랑으로 인간과 자연사이의 관계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불교가 이 모든 사회운동의 탄탄한 기반이 돼 줘야 합니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피해가 우려됐는데 바람직한 민족주의란?
-민족을 폐기한다고 세계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적이면서 탈민족적이어야 하고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즉 색이 공이어야 하고 공이 색이어야 합니다. 양쪽 다 끌어안아야지 민족주의만으로도 세계주의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남동우 기자 | dwnam@buddhapia.com
2007-05-03 오전 11:14:00
 
한마디
그놈의 밥정희 ... 밥만주면 생명까지 내줄 태세로군. 18년간 세뇌당한 정치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이 아직도 밥정희 타령이란 말인가???? 으이구,,, 돌머리들... 니들이 여기서 찌질거리는 것도 김지하같은 사람이 목숨걸고 싸운 결과라는 걸 알아라.
(2007-05-17 오후 6:55:32)
37
김지하 이사람 언제부터 불자였나...헐 어이상실...불교판이 이용당할까 두렵네...
(2007-05-06 오후 9:33:28)
75
근데 한국불교는 아니죠. 한국불교가 무슨 대답을 해줄까요. 돈먹고 튀는거야 잘하겠지만. 김지하씨가 말한 건 부처님의 불교지, 한국 중님들의 불교는 아니라고 봅니다.
(2007-05-05 오후 4:04:06)
52
한때 단학에 빠져서 단학선원에 이용당하며 살다 양심선언후 빠져나오려니 목숨이 위태롭다가 이제 불교에 있는 좌파부패 중들에게 붙어서 활동하다 또 그 조직에 환멸을 느껴서 양심선언하겠군. 어떤 조직체이든 깊이 들어가 알고 나면 환멸이 큰 터. 태생이 반역적이니 조만간 김지하의 반불교선언도 기대해본다.
(2007-05-05 오전 9:12:13)
78
민주화의측면으로 보자면 김지하당신이 오늘날 당신의불교적사상을 자유로이 말할수있었던건 어쩌면 중생의 배고픔을 먼저해결해준 박정희가 진정한 중도사상가였을것이요. 두번째대승적차원에서박정희는 대한민국국민전체를 먹여살려야만하는 관세음보살이셨소.어찌당신의민주화에대한열정과 집념때문에 우리중생들이자유로운사상을 표현하는데 당신의공로또한 인정하오.허나 물질계의 중생은 먹고살아야하는 것이 해결되지않으면 안되는구조이기때문에 박정희가 대승보살적경지에서 중생을구제했다는것을 외면하면 안될것이오. 민주화운동을하셔서 중생의사상을 당신이 구제했다면. 박정희는중생의가장시급한먹고사는것을 해결한사람이오.
(2007-05-04 오후 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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