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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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으로 가는 네가지 디딤돌: 解
빛고을불교아카데미 제2강 미산스님
미산스님

불기 2551년 4월 25일 저녁 7시
장소 : 광주광역시 KT 대강당
강사 : 미산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이번 기획법회 ‘행복한 삶으로 가는 네가지 디딤돌 -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고 하는 것은 화엄경에 나오는 신앙체계, 즉 수행체계를 요약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화엄경에 뿐만 아니라 불교 전체의 수행체계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 구성되어져 있는 것이 신해행증입니다. 이것을 하나씩 이야기 하는 것이 힘들지만, 각각 떼어서 여러 스님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서 법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바른 앎, 즉 바르게 아는 것이 무엇이고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기획법회의 대주제가 행복한 삶으로 가는 네가지 디딤돌인데, 여러분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행복에 대한 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편안한 것, 불편함이 없는 것, 고통이 없는 것, 늘 여여(如如)한 것,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불자든 아니든 누구나 행복을 좇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네 가지 디딤돌을 지금 공부하고 있는데, 첫 번째 믿음(信), 불법승 삼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었고, 두 번째 믿음을 확실하게 하는 바른 이해(解)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바른 이해를 통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불교는 무조건 믿으라 하지 않습니다. 불교 특징 중의 하나이고 21세기 과학문명시대에 가장 적합한 종교로써 지금 21세기를 이끌어가는 세계의 지성들이 불교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있었던 종교는 믿음에 대해서 강조를 하고 무조건 믿으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성격이 그렇습니다. 불교에서는 ‘일단 믿고 봐라’ 이렇게 합니다. 불교에서는 일단 믿고 그 믿음을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서 ‘분명하게 알아라, 분명한 이해를 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해서 믿음으로 끝나면 단순하게 끝납니다. 이것을 1차적인 신앙형태라고 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신앙체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를 믿을 때, 특히 원시종교를 믿을 때 1차적 신앙형태가 마음속에 형성됩니다. 마음이 불안하다, 무언가 구하는 것이 있고, 속상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때 종교를 구합니다. 교주에게 구합니다. ‘몸을 건강하게 해 달라’, ‘좋은 학교에 들어가게 해 달라’, ‘승진하게 해 달라’ 등등의 청원하는 형태를 1차적 신앙형태라고 합니다. 누구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어두운 데를 가고 있는데 뒤에서 확 밀었어요. 보통 뭐라고 합니까. ‘아이고 어머니’보통 이렇게 합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부르면서 당신이 늘 존경하는 분을 말합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스님은 부처님 혹은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일차적 신앙형태입니다.

2차적 신앙형태는 왜 내가 종교를 믿는지, 왜 교주가 그렇게 말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3차적 신앙형태는 굉장히 종교적으로 뛰어난 사람의 신앙형태입니다. 스님 중에서도 선적인 예지, 직관력이 있는 스님이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의지와 우주의 업을 정확히 꿰뚫어 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마음씀씀이나 행동이 진리에 맞게 하는 것,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삼차적 신앙형태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신앙형태를 분석해 보면 일차적 신앙형태가 가장 많습니다. 다음으로 2차적, 3차적 이렇게 해서 피라미드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일차적 신앙형태를 가지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기복불교를 비판하는데 고등종교라 할 지라도 1차적 신앙형태는 밑바탕에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맹목적으로 머물러 버리지 않고, 자신만의 바람이나 청원에 머무르지 않으면 됩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자체는 문제가 안 됩니다. 공부는 안 시켜놓고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이게 문제입니다. 정말 자기 실력만큼 써서 능력에 맞는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러면 양심적이죠.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여기에 머무르면 의미가 퇴색해버립니다. 여기에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바른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확한 앎이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앎에 대해서 바른 이해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사성제 팔정도에 보면, 특히 팔정도 중에 정견과 정사 정사유가 있죠.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바르게 본다. 좀 더 현대적으로 말하면 바른 가치를 안다. 그런 뜻이죠. 정사, 정사유는 바르게 사유한다. 이런 뜻이거든요. 팔정도 중에 신해행증 중 해(解)에 해당합니다.

정견(正見)은 불교의 시작이면서 불교의 종착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고 바른 실천을 하려면 먼저 믿고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른 가치관 즉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주위에 보면 불교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실천도 하고 그러는데, 바른 방향성을 갖지 못한 분이 있습니다. 초발심자경문에 보면 증사작반(蒸沙作飯)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모래로 밥을 짓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가지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빛고을아카데미 참가자들

사성제, 팔정도, 연기법을 정확히 아는 것이 정견입니다. 근데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연기법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어렵거든요. 그런데 경전에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적절하게 설명했어요. 정견에는 세간적 정견과 출세간적 정견이 있다고 합니다.
‘세간적 정견’은 이성적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생각해서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실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철학적으로 증득하지 못할지라도 머리로 이해하는 자체만으로도 큰 물줄기가 잡힌다는 이야기에요. 세간적 정견은 지금 여러분과 이야기 하는 이런 것입니다. ‘출세간적 정견’은 바른 증득이 되었을 때 출세간적 정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解의 핵심적인 교리가 뭐냐하면 연기법입니다. 불자들은 뭘 믿어요. 불법승 삼보를 믿고 인과를 믿어야 합니다. 인과법을 확실히 믿고, 그 다음에 해(解)에서는 뭘 이해를 해야 되냐면 연기법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연기법이 뭐죠. 연기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써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짐으로써 저것이 없어진다.’를 말합니다.

연기(緣起)를 어렵게 생각하는데 모든 것이 연기로 이루어지고 있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연기법 세상이라고 생각을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제 강의를 듣고 있죠. 이게 뭐냐하면 결과입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이 자리에 함께 이 장소 이 시간에 법회를 하고 있는 것이 결과입니다. 이 결과를 추적해보면 결과가 있기 위해서는 많은 조건들이 있었어요. 조건들이 꼭 필요했던 것이 뭐냐면 원인입니다.

어떻게 법회를 구성할 것인가? 신해행증 법회하기 위해서 팜플렛, 강당대관, 무수한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했습니다. 이런 법회를 하기 위해서 인(因)과 연(然)과 연기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세상에는 연기법 아닌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연기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니까 잘 모릅니다. 절에 오셔서 연기법이란 이런 것이다. 듣고 났는데 기억하고 있다가 절에서 나올 때는 잘 모르고, 집에 가서 가족과 화합하지 못하고 이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연기법을 체득한 것이 아닙니다. 연기법을 제대로 알면 실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절절해야 실천합니다. 어설프게 알면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특히 연기법을 이해하고 아는 것입니다. 연기는 인(因)과 연(然)과 과(果)를 다 갖춘 것을 연기법이라고 했습니다. 일상 삶 속에서 느끼면서 실천할 수 있어야 되거든요. 저는 연기법을 가르칠 때는 실천하는 입장에서 다시 정리를 해줍니다. 연기법을 관념적으로 가르치니까 나중에 문제가 커집니다. 머리만 커지고. 그래서 저는 연기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첫 번째 실천하기 위해서는 연기법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냐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늘 공경과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생각을 하실 건데, 실제 연기법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공경하는 것은 윗 어른, 윗사람, 조상, 스승을 공경하라 그럽니다. 시간적 관점에서 보면 나라고 하는 존재는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시간적으로 추적해 올라가면 나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고 나를 낳아준 부모는 할머니 할아버지, 또 올라가면 증조부모, 고조부모 이런 식으로 쭉 올라가다 보면 이십대만 올라가다 보면 이백만, 삽십대만 올라가면 이십억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인연의 고리 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면서 공경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연기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또 공간적 관점에서 보면 이 좋은 공간을 만드신 분이 있어요. 디자인 하신 분, 의자설치, 조명, 마이크 등등 많은 분들의 합작품이 이 구체적인 공간이에요. 그러니까 이 공간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이 뭐냐. 공존입니다. 함께 있음, 함께 있을 때 느껴야 할 것이 행복감, 기쁨입니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기쁜 공간, 함께 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또다른 측면에서 연기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생태계는 공존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에 인간들만 잘 먹고 잘 살려고 막 파괴하고 있습니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런 피해는 어마어마 합니다. 오존층이 엷어지고 있어요. 연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공멸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생멸법에 의해서 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재촉해서 멸하는 것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연기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연기법을 이해하는 관점이 바로 서야 합니다. 흔히 많은 수행과 가르침을 지금 여기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알고 믿어서 이해하고 실천해서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동떨어진 저 먼 곳에 먼 훗날에 이루어지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것은 연기법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에요. 연기법을 실천하려면 늘 마음이 지금 여기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가 바로 가장 중요한 자리이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요. 근데 대부분 사람들은 마음이 저 과거에 있든지 아니면 오지도 않은 미래에 있어요.

지금 여기에 있는 마음은 깨어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법문을 하고 있지만 어떤 분들은 마음이 집에 가 있어요. ‘지금 여기’참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수련회 가보시면 ‘지금 여기’가 되면 수행이 잘 되는 것이에요. 이것이 생활이 되지 않으면 힘이 드는 것입니다. 연기법을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는 지금 여기를 깨닫는 것이 연기법을 실천하고 바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정말로 이제 부처님 법을 바르게 믿고 알고 바르게 실천해서 바르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연기법적인 사고관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전에는 IQ(intelligence quotient. 지능지수)가 좋아야 했고, 요즘은 EQ(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가 좋아야 한다고 합니다. IQ, EQ 다 좋아도 안 됩니다. 지금은 IQ와 EQ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영성지수 SQ(spiritual quotient, 영성지수]와 NQ(network quotient 공존지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기적법인 삶, 사유를 했을 때 네트워크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세상을 리더해가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성인들은 공존지수가 굉장히 높아요. 수행이 잘 되신 분들은 무아(無我)가 되기 때문에 주위가 늘 편안한 것입니다.

연기적 앎 즉 이해가 분명했을 때 바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이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알았을 때 완전한 믿음이 되고 완전하게 알았을 때 바로 실천이 되고 실천을 할 때 바로 깨달음이 됩니다. 올바른 믿음의 바탕은 연기법입니다.

연기법을 이해했을 때 행복으로 가는 두 번째 디딤돌을 굳게 디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영훈(빛고을불교아카데미 운영위원) |
2007-04-26 오후 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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