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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이다. 전북 부안 내소사 일주문 앞엔 발디딜 틈이 없다. 주변에 있는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요즘 불교계에서 최대 인파가 몰리는 108산사순례기도회이다. 3월 22일 오전 10시, 2000여 순례단은 혜자 스님(도선사 주지)과 마중 나온 진원 스님(내소사 주지)을 선두로 가지런히 정렬된 5백여 미터의 전나무숲길을 통과해 대웅전 앞마당에 진(?)을 쳤다. 대웅전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능가산의 큰 바위봉우리들을 보자 순례객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꽃 등의 화려한 문양이 문살을 구성하고 있는 대웅전의 아름다움도 능가산에 못지 않다. 마치 커다란 문 전체가 하나의 꽃밭인 듯 싶다. 채색이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는 모습이 내소사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이번 순례기도회의 테마는 ‘환경’이었다. 내소사 주지 진원 스님이 불교환경연대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연과 이 곳이 3년전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의 핵심 거점지역이라는 의미에서라고 108순례단의 한 관계자가 귀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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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의 첫 순서는 ‘환경지킴이 발대식’이었다. 유영열 부안 부군수와 신현철 남부안 농협조합장 등 지역 인사가 참석한 발대식에서 환경지킴이로 선발된 120여 회원들은 △산사의 생태환경과 수행 환경 조성에 앞장선다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실천하는데 앞장선다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며 우리들 마음의 고향인 농촌과 함께 한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방생 한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환경 친화적 생활을 한다 △자원 절약을 생활화하여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 △환경보살의 일원이 되어 청정불국토 건설에 앞장선다 는 내용의 다짐을 선서를 통해 결의했다. 또한 환경지킴이 회원들에게는 임명장과 함께 오물 수거 집게도 수여됐다.
환경지킴이 대표로 선서한 이정화 보살(51)은 “환경을 보호해야 된다는 생각만 했지 직접 실천해 본적은 없었다”며 “순례기도법회가 끝난 뒤 방문 사찰의 뒷정리와 주변 자연보호 운동부터 해나가겠다”고 의욕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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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대식을 계기로 108산사순례기도회 환경지킴이들은 사찰 주변의 청소와 문화재 보호 감시 활동 등을 펼칠 예정이다. 또한 108산사순례기도회 차원에서도 불교계는 물론 범불교적으로 환경 지킴이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발대식에서 혜자 스님은 격려사를 통해 “환경지킴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봉대하며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과 동체대비 사상을 바탕으로 산사주변의 수행환경을 보호하고 삼천리금수강산의 자연생태 보전에 앞장설 것”이라며 “모든 인연 있는 생물들이 평화롭고 청정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해 불국토 조성에 앞장서자”고 강조했다.
이어 진원 스님도 “농촌과 사찰이 하나가 되고 사찰 주변의 환경 캠페인까지 벌이는 108산사순례는 한국불교 사찰순례문화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일”이라며 “오늘 환경지킴이 발대식을 계기로 기도순례 때만큼은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말고 환경보호 차원에서 개인컵을 가져오는 작은 실천부터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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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대식이 끝난 뒤에는 혜자 스님이 유영열 부안 부군수에게 지역 복지시설에 기탁해 달라며 108만원의 보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유 부군수는 부안 지역의 특산물을 많이 구입해 군수를 대신해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순례단에게 전하기도 했다.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혜자 스님으로부터 순례에 참가했다는 일종의 증표인 내소사가 새겨진 염주알을 한 개씩 받았다.
첫 회부터 빠지지 않고 참석해 염주알이 벌써 일곱 개라며 즐거워하는 오영숙 보살(50)은 “기도순례에 참가한 뒤로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맑아짐을 느낀다”며 “순례에 참가하면 기도뿐만 아니라 군법당 및 농촌 돕기, 환경 캠페인 전개 등 다양한 봉사활동도 함께하는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즐거워했다.
순례단은 기도순례외에 지역 농산물 구입운동도 함께 벌여 교계뿐만 아니라 지역 농민들에게 많은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이날은 부안 특산물인 곰소젓갈과 마늘 된장, 양파김치, 들국화차 등을 파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경내에 개설돼 참가자들의 발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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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순례에는 지난달 논산훈련소 법당에 이어 군법당 초코파이 보시행사도 열렸다. 혜자 스님은 전주 호국충경사 장세훈 법사에게 장병불자들에게 전달해달라며 초코파이 3만개를 전달했다.
장 법사는 “한 달에 장병들에게 줄 초코파이 구입비로 70~8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오늘 보시받은 정도면 3개월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며 “초코파이 구입비를 빔 프로젝트 등 장병불자 포교를 위한 시설물들을 확보하는데 사용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108산사순례기도회는 4월 12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전남 영암 도갑사를 방문해 여덟 번째 기도순례를 봉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