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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를 마시는데 있어 차만큼이나 중요한 ‘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직 드문 형편이다. 전남 구례에서 전통 덖음차 제다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혜우 스님은 전국의 산사를 찾아 ‘맛있는 찻물’을 가려 뽑아 최근 <찻물기행>(초롱, 1만5천원)이란 책으로 엮어 냈다.
스님은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의외로 물 때문에 차 맛에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전국에서 물맛이 좋다고 손꼽히는 곳을 찾아, 실제 차를 우렸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수십여 곳의 물을 직접 떠와 무게와 부피를 측정하고, 직접 끓여 차를 우려마시면서 그 맛을 감별했다. 또 50여 곳에서 떠온 물에 대해 수질 검사소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물속에 용해된 나트륨과 마그네슘, 칼슘 등 소량의 미네랄 성분의 함량에 따라 물맛이 달라지고, 이것이 곧 차의 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차 마시기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샘물이 낫고, 그 다음이 오염되지 않는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 지하수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같은 물이라도 바로 받은 물보다는 며칠 두었던 물이 차의 맛과 향을 드러내는데 더 좋다고 스님은 충고한다.
그렇다면 물맛 좋기로 소문난 기림사와 수종사 등의 찻물은 어떤 맛일까? 혜우 스님의 안내로 맛있는 찻물을 찾아가 본다.
▷ 찻물로 뛰어난 약수 고성 옥천사 약수
고성 옥천사는 ‘옥천(玉泉)’이라는 이름답게 좋은 물이 끊이지 않는 샘이 있다. 1648년 샘 위에 옥천각이라는 누각을 세워 샘을 보호하고 있으며, 1987년 7월에는 ‘한국의 명수’로 선정됐을 정도로 물맛이 뛰어나다. 흔히 이름난 약수에는 철과 유황 등이 포함되어 있어 차맛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이곳 물은 차를 우려 마시기에도 적합하다.
▷ 맑게 스며드는 진불암 샘물
대흥사는 숲이 깊고 흙이 많은 육산이어서 물이 좋은 샘을 많이 품고 있다. 산내 암암 곳곳의 샘물이 좋은데, 그 중에서도 대흥사 산내암자인 진불암의 샘물이 손에 꼽힌다. 진불암 샘에는 비바람을 막을 문까지 해달아 놓았는데, 물맛이 맑고 입안에 스며드는 것처럼 부드럽다.
▷ 깊고 그윽한 봉선사
남양주 운악산 봉선사에는 샘이 둘이 있다. 하나는 대웅전 뒤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는 샘이 있다. 춘원 이광수가 봉선사 다경향실에 머물 때 이 곳의 물을 길어다 차를 마셨다고 한다. 또 하나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 뒤에 있다. 이 물을 종무소 앞 샘으로 흐르게 해 이웃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마실 수 있게 했다. 물맛이 깊고 부드러움 차를 우렸을 때도 차맛의 깊이를 더하고 향이 그윽하다.
▷ 물맛 좋은 지리산 샘물
지리산의 샘들은 장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수준급의 물을 품고 있다. 쌍계사 팔상전 오른쪽에 위치한 두 샘은 ‘음샘’과 ‘양샘’으로 이름 붙여져 있다. 각각의 샘물의 맛이 미묘하게 차이나고, 성분 또한 차이를 보인다. 칠불사 샘물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물맛이 청량하고 탄력성이 있는데, 차를 우려 마셔보면 나무랄 데 없이 뒷맛이 깨끗하고 맑다.
▷ 맛과 향이 풍부한 보림사 샘물
보림사 샘은 절의 뒤꼍이 아닌 마당 한 가운데서 솟고 있다. 우물처럼 깊은 것이 아니라 자갈이 깔린 바닥에서 샘이 흐르고 있다. 물을 길어가는 사람을 위해 주차장 한 쪽에는 따로 약수터를 준비해 두었다. 물은 다름 샘에 비해 무거우나 물맛은 입안에서 가볍고 유순한다. 차를 우려 마셨을 때도 찻물이 부드럽고 맛과 향이 오래 남았다. 한국자연보호협회가 ‘한국의 명수’로 지정하기도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