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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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보리암의 꽃샘 봄날

남해의 보리암을 비롯해 동해의 홍련암, 서해의 보문사 등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는 모두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이를 두고 조용헌은 ‘능엄경 수행법의 한국적 수용’이라는 논문에서 바닷소리[海嘲音]를 관(觀)함으로써 아집을 털고 진리의 경지에 이르는 능엄선 수행을 위해 관음성지들이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리암 설화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역사성이 깃든 것으로는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다. 이성계가 왜구를 치기 위해 남해안에 왔다가 조선 개국의 뜻을 품고 이 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해서 역성혁명에 성공해 조선을 개국했다는 전설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읍내로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한적한 관음포(觀音浦)가 지나간다. 관음포는 강화도에 이은 제2의 팔만대장경 판각처로 알려진 곳이다. 고려가 굳이 이곳에다 분사도감을 두게 된 것은 해전에 약한 몽고군을 따돌릴 수 있고, 지리산 일대에서 구한 목재들을 섬진강을 이용하여 쉽게 운반할 수 있고, 바닷물이 드나드는 넓은 갯벌이 있어서 다량의 판각재를 갯벌 속에 묻어둘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관음포는 세계 문화유산이 판각된 유적지이지만, 세인들의 무관심 속에 이정표 하나 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30번 국도를 타고 앵강고개를 넘어서면 왼쪽으로 금산 보리암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산기슭 곳곳에 편백숲이 짙푸르게 자리하고 있다. 복곡저수지를 지나 보리암으로 가는 좌우 숲길도 편백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1세대 편백은 이미 사라지고, 지금은 20~30년생 2세대 편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리암을 중심으로 금산 탐방은 복곡저수지 매표소에서 출발하여 보리암을 돌아보고 상주로 내려가는 코스가 무난하다. 그 구간을 탐방 순서대로 셋으로 나누면, 아랫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 보리암 주변지역, 보리암에서 상주 매표소까지이다. 모니터링은 설정한 탐방 경로를 따라 좌우 20미터 범위 안에 들어있는 지역을 대상으로 했다.

아랫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는 걸어서 1시간 거리이다. 마침 도로 확포장공사가 한창이다. 그 바람에 도로변 나무들이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다.


이 구간의 키 큰 나무로는 곰솔과 편백이 곳곳에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참나무 종류로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가 많았다. 그 밖에 느티나무, 나도밤나무, 사람주나무, 노각나무, 비목나무 등 온대남부수종들이 혼효림을 이루고 있었다. 더러 노거수급 나무도 가끔 눈에 띄지만, 거의가 수령 30년 안팎으로 모두 고만고만하다.

금산은 화강암 암산(巖山)이다. 8부 위로 정상부까지는 온통 기암절벽들이다. 금산의 화강암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붉은 빛이 감돈다. 이 은근한 색깔은 화강암 속에 들어가 있는 칼륨장석 때문이다. 이것이 풍화되면서 은근히 분홍색을 띠는 것이다. 진달래와 철쭉이 필 때면 더욱 잘 어울린다.

이렇듯 주변지세가 온통 바위다 보니 보리암이 자리한 국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국지가 좁다보니 가람배치도 단순하고, 새벽 도량석도 보광전(寶光殿)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그만이다.

현재 종무소로 쓰고 있는 간성각(看星閣)은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전각이다. 옛날에는 노인들이 수명장수를 위해 남극성(南極星)을 보는 간성(看星) 풍습이 있었다. 일명 ‘노인성(老人星)’이라 불리는 남극성은 아르고(Argo) 별자리에서 광도가 가장 높은 카노퍼스(Canopus) 별이다. 이 간성각이 바로 그 옛 간성 풍속의 유산이다.

보리암이 자리한 고도는 약 600미터로, 금산 전체 고도로 볼 때 8부 정도에 해당된다. 이 구간의 키 큰 나무들로는 소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있다. 이대와 조릿대를 비롯해 식재된 것으로 보이는 4~5종의 대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변의 토양유실을 막아주고, 수분을 머금게 하며, 새들에게는 더 없이 아늑한 보금자리와 은신처를 제공해준다.

보리암 경내의 식생조경은 국지가 좁아서 별로 특기할 만한 것이 없다. 이씨기단 앞에는 해송과 돌배나무가 눈에 띄고, 경내의 함박꽃나무는 탐방 구간 내에서 한 그루만 관찰된 것으로 봐서 식재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시 사람 손으로 심었을 차나무들은 제멋대로 키가 자라 덥수룩하다. 산신각 앞 종려나무는 산의 고도 때문인지 난쟁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요 며칠 사이 꽃샘추위로 동백은 꽃망울이 누렇게 얼었고, 조경으로 심은 긴잎회양목과 황록사철나무도 눈길을 끌지 못한다.

긴잎회양목은 이름 그대로 잎의 생김새가 일반 회양목에 비해 좁고 길다. 관악산 등지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원산이지만, 근래에는 원예종으로 육종되어 조경목으로 나간다. 황록사철나무는 일반 사철나무와 비슷하지만, 잎에 황색 또는 연두색 무늬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며칠간 계속되고 있는 꽃샘추위 탓인지, 야생화는 현호색과 개별꽃만 꽃을 피우고 있을 뿐, 다른 초본은 땅속에서 아직 고개를 내밀지 않고 있다.

진달래가 필 무렵이면 애호랑나비 등 성충으로 겨울을 난 몇 종류의 나비들이 보일 터이지만, 아직은 때가 일러 관찰된 곤충들이 없었다. 남쪽 바닷가 지역이라지만, 고도가 높고 바람이 강해서 곤충출현 시기가 내륙에 비해 빠를 것도 없다.

보리암 주변에는 박새류와 딱다구리류, 붉은머리오목눈이, 직박구리, 노랑턱멧새, 까마귀 등이 서식하고 있다. 어느 마음씨 착한 보살이 겨우내 굶주렸을 산새들을 생각해서 좁쌀과 옥수수를 싸들고 와서 놓고 갔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공양이 어디 있을까…. 무량자비행이면 기도가 따로 없다.

보리암은 어디에서나 전망이 좋다. 남해의 망망대해와 크고 작은 섬들이 일망무제로 보인다. 가까이로는 승치도, 삼서도, 목도 등이 보이고, 좀 멀리로는 전설의 세존도가 보인다.

발아래로는 금산 자락이 바다와 맞닿은 상주가 있다. 상주는 한자로 ‘尙州’라고 쓰지만, 본래는 관음보살 진신이 상주한다고 해서 ‘常住’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발아래 곰솔 방풍림(防風林)이 아름다운 숲띠를 이루고 있다. 방풍림은 마을로 불어닥치는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소금기로 인한 농작물의 염해(鹽害)를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건축물에도 염해를 끼치기 때문에 바닷가 사찰에서는 반드시 방풍림이 필요하다. 방풍림은 나무 높이의 약 30배 거리까지 바람의 속도를 늦춰준다는 보고가 있다.

보리암에서 국립공원 상주리 매표소까지 하산하는 데는 1시간 남짓 걸린다. 금산 팔경 가운데 풍광이 으뜸이라는 쌍홍문이 그 길로 5분 거리에 있다. 쌍홍문에 서면 멀리 발아래로는 부처님이 돌배를 타고 건너가 머물었다는 세존도가 아득히 건너다보인다.


세 번째 구간 역시 곰솔과 활엽수의 혼효림이다. 사람 손에 식재된 곰솔은 이 구간의 허리 아래쪽에 집중되어 있다. 금산은 남해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지만, 난대수종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겨우 송악, 보리밥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자금우 정도가 손에 꼽힐 정도이다. 해발 681미터라는 고도 때문이다.

쌍홍문 주변 절벽에 송악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상록덩굴나무인 송악의 고향은 바닷바람이 닿는 따뜻한 남쪽지방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송악을 ‘담장이’로 알고 있지만, 외모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두 나무이다. 담쟁이는 잎이 지는 떨기나무이지만, 송악은 사철푸른 나무다.

숲길 옆에 자리한 사선대는 4개의 큰 기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자로 ‘四仙臺’라고 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영어로 ‘four, hermit, bench''라고 해놓았다. ‘대(臺)’란 전망이 좋은 높은 언덕이나 바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의자’를 가리키는 ‘bench’보다는 높은 언덕을 가리키는 ‘uphill’이나 바위를 가리키는 ‘rock''이 어떨지….

중국의 <사기(史記)>에 진시황이 서불[徐市]이라는 신하를 우리나라에 보내 불사약(不死藥)을 구해오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곳 금산 상주리 거북바위에 ''서불과차(徐市過此)’가 각서 되어 있다. 서불이 불로약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이다. 그가 구하고자했던 불로약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금산에 올라 생사가 없는 최상의 보리를 증득함이 더 시급한 일이 아니었을까 ?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 temple-e@hanmail.net
2007-04-12 오후 2: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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